[Opinion] 텀블러,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첫 발걸음 [기타]

일회용 컵 규제, 그 이후
글 입력 2019.04.0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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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고 가면 머그잔 괜찮으세요?"


지난 8월 2일, 환경부는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플라스틱 남용을 막기 위해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내부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했다. 간단히 말해 손님이 매장 내부에서 음료를 먹으면 무조건 머그잔/유리잔에 나가야 하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점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 이후, 우리가 가는 카페에선 종종 위와 같은 안내를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시행된 법으로 인해 우리는 불편함을 느꼈다. 플라스틱 분해가 400년 이상 이루어진다 했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시간의 감각은 불편함을 크게 누그러 뜨리진 못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이 사진을 보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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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한 해양학자가 코스타리카 연안으로 탐사를 떠났을 때 만난 바다거북의 모습이다. 탐사 팀은 처음에 바다거북의 콧구멍에 무엇이 박혀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고 한다. 플라이어를 이용해 간신히 빼낸 물체는 바로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이 분해되더라도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뉴스를 이렇게 확인받게 될 줄은 몰랐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했던 위험, 나의 편안함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전가된 상황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순간이었다.

2016년 통계청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실제 텀블러를 사기 전에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었던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7개의 플라스틱을 버린 셈이었다. 또한 일회용품의 대부분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합성수지 재질이며, 그 종류가 다양해 분류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테이크아웃의 플라스틱류는 거의 재활용되지 못한다. 처리도 쉽지 않다. 매립하면 자연분해가 되지 않아 토양오염이 발생하고, 소각 처리할 경우 유해물질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규제와 반성을 계기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마시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카페 알바를 경험했던 나는, 알바생이 내 텀블러를 귀찮게 바라보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주문이 밀려들면 제 각각인 텀블러를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만약 손님이 내민 텀블러 내부가 더럽다면 세척까지 해서 나가야 한다. 노동이 이중, 삼중으로 드는 텀블러를 받아 들자니 당연히 기쁠 리가 없다. 알바생의 찌푸림을 나는 단박에 이해한다.

알바생을 더 고용하거나 식기세척기를 사면 되겠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대형 세탁기는 수도세와 세제값 등이 많이 나와 부담이 될 테다. 건물 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부담하려니, 점주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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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원, <일회용 하루>
청주시립미술관


하지만 아무리 연기적 세계관이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바다거북과 고래 뱃속에 있는 플라스틱을 보고도 일회용컵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인류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존재의 생을 고통에 몰아넣는 것은, '윤리'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일이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세상은 초록이 돼요"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환경 비용을 감당하는 일은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됐다.

6개월 정도 텀블러를 사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텀블러 계속 사용하는 일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예전엔 따뜻한 라떼를 텀블러에 마시면 세척이 번거로워, 다음 음료는 일회용 잔에 마셨다.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조금의 청결함을 포기하고 물로 대충 헹궜다. 그리고 새 음료를 받아 마셨는데, 괜찮았다. 지나친 깔끔함을 고수하며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텀블러를 아침부터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 손목이 꽤나 아팠다. 조금씩 음료를 여러 번 바꿔 마시기에 큰 텀블러를 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얼음이 잔뜩 든 무게는 부담이 됐다. 그렇다고 이디야에서 원 캐리어를 매번 받을 수도 없는 일. 드링크 백을 사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손목에 힘은 덜 들어가고, 걸어다닐 때 음료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어 편했다. 불편함을 또 다른 소비로 대체했나 싶었지만, 가족 4명이 한 개의 드링크 백을 여러 번 돌려가며 쓰니 아까움이 덜했다. 문제점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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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감수하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이리저리 보이는 일회용 물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일회용 비닐 커버에 재빠르게 씌우고 났을 때는 당혹감마저 느껴졌다. "또 쉽게 썼군." 그 이후로 커버가 있는 우산을 사거나, 집에 있던 비닐팩에 우산을 짚어 넣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나서 종량제 봉투를 살 수도 있었지만, 사실 집에 한 가득 사놓은 것을 알기에 그다지 필요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리저리 구겨진 봉투는 다시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동네 정육점에서 받은 장바구니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장바구니의 존재를 내 머릿속에 각인시키기까지 2주가량이 걸렸지만 말이다.

빨대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엔 빨대 없이 음료를 직접 마셨지만, 이리저리 휘저으며 먹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쌀, 실리콘, 스테인리스, 대나무, 종이 빨대 중에 내가 관리하기 가장 쉬울 것 같은 대나무 빨대를 골랐다. 쌀 빨대와 종이 빨대는 금방 흐물 해지고, 스테인리스와 실리콘은 촉감이 싫었다. 대나무가 물에 닿아 쉽게 갈라질 것 같지만, 오히려 세척하는 데 시간이 제일 덜 걸린다. 밖에서 사용할 때면 그냥 물에 헹구고 휴지로 닦아, 종이봉투에 보관하면 된다.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은 환경 앞에선 조금 접어둬야 한다.

물론 나의 작디작은 실천이 해양생물에게 당장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나 하나 변한다고 해서, 환경오염의 속도가 그리 늦춰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작은 실천을 유지하고 늘려가는 이유는, 일상 속의 작은 절제가 타인에게도 퍼져나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 대나무 빨대를 보고, 같이 구입했던 지인들에게서 그 힘을 느낀다. 우리의 행동은 이야기를 불러오고 더 나은 방향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환경을 위한 시작의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아도 된다.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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