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랑씨, 잘 듣고 있어요 [음악]

글 입력 2019.03.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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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랑씨, 잘 듣고 있어요




내가 감독 이랑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2017년 여름 즈음이었다. '신의 놀이'라는 노래였는데, 책을 좋아하던 나는 음보다는 가사에 끌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랑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가사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 신화와 종교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었고, 왠지 근원적인 신화라는 개념을 이 노래가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배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과 복수를 하려고 하는 사람
결국에는 모두가 집을 떠나면서 시작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단순한 영웅은 사람들을 대신해 제물로 바쳐져 죽음을 맞고 
사람들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요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좋은 이야기는 향기를 품고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죠
모든 이야기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비극
희극은 제물이 흘리는 피를 받는 입구가 넓은 모양의 접시

-이랑, 신의 놀이


'이야기'라는 것이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데에 필요하며, '이야기' 속 '주인공'은 '집'을 떠나면서 어떤 선택을 하며 결국에는 희생양이 된다는 비극과 희극에 대한 해석은 한 번에 이해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난해함은 오히려 계속해서 이 노래를 듣도록 해주었다. 묘하게 중독성있는 음은 그런 내 행동을 도왔다.

만약 가사가 단지 어렵기만 했더라면 아마 이해하려고 계속해서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들었던 까닭은, 이랑의 이 노래 속 가사가 어떤 진실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철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일종의 독사(doxa.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있는 것'이 '지식'의 대상이고, '있지 않은 것'이 '무지'의 대상이라면, '있는 것도 있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 '의견'의 대상이다. 즉, 의견은 지식보다 더 어둡지만 무지보다는 더 밝은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의견들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짐으로써 혼이 침침한 상태에 있게 된다고 말한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사라고 해서 어떤 진실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내 마음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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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는 정말 악마일 뿐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진실이란 어떤 것인지, 혹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하나의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물음들이 쏟아졌다. 독사(doxa)가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상식이라는 점은 나에게 일상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도록 했다. 그리고 일상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떨어졌다.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측면 외에도, 잘 듣고 있어요. 실은 '신의 놀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이 부분이다. 아마도 다정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나요
요즘도 무섭게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고 계시는가요
중년의 나이에도 절망과 좌절의 무게는 항상 같은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만난 것 같은 이야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들의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나요




2. 잘 듣고 있어요, 이랑




감독 이랑은 자신의 음악 '잘 듣고 있어요'에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인연은 과연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먼저 가사를 제시해보겠다.


바다의 왕이 큰 병이 나 고칠 방법이 없대요.
내 친구 해미는 얼마 전에 복강경 수술을 받았고 
바다의 왕을 고칠 유일한 약은 토끼의 간이래고
유리의 강아지 담이의 암은 완치가 되었다죠.
거북이는 용왕의 청으로 토끼를 잡으러 나섰고
한다는 세계를 떠돌아 다니다 내 옆에서 코를 골죠.
아이고, 토선생님. 이렇게 만나 봬 영광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당연히 잘 지내셨겠죠.
거북이 선생,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난 모르겠소.
내 평생 쫓기고 숨어 마음 졸이는 하루하루인데.
거북이와 함께 바다에 간 토끼의 간을 노리는 
용왕 앞에서 토끼는 꾀를 내어 이렇게 말을 하죠.
누나, 저 군대가기 전까지 재밌는 거 하고 싶어요
아이고, 미리 말씀하셨으면 간을 가지고 오는건데
누구는 목숨을 찾고 누구는 사랑을 좇는거겠죠.
잘 알고 있어요 듣고 있어요 기억하고 외우고도 있죠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려주고 싶어요
잘 듣고 있어요 잘 듣고 있어요 잘 - 듣고 있어요


가사로 봤을 때에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실제로 이 부분은 이 노래의 클라이막스이고 점차 고조되는 음에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들이 하나의 이야기 혹은 신화에 녹아 구전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어디선가 우리는 목숨을 찾으려 하는 용왕이고, 혹은 목숨을 찾으려 하는 토끼이며, 혹은 사랑을 좇는 거북이가 되어 서로 뒤엉켜 엉망진창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앞의 단락 내용이 이야기 속 일어난 사건에 대한 어떤 다정한 연민을 품고 있다는 두루뭉실한 느낌이 든다면,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진 존재들이 만나 나누는 발화를 따로 떼어서 보면 왠지 의미가 조금 명확해지는 느낌이 든다.


거북이 : 아이고 토선생님. 이렇게 만나 봬 영광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당연히 잘 지내셨겠죠.

토끼 : 거북이 선생,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난 모르겠소. 내 평생 쫓기고 숨어 마음 졸이는 하루하루인데


이 부분은 목숨을 찾으려 하는 자 A와 사랑을 좇는 자 B가 만나는 부분이다. 이때 나누는 대화는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목표가 다른 두 존재가 만나는 시간을 서술했을지도 모른다. 목표가 다르면 결국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특히 그 목표의 특성상 어차피 비극으로 끝날 이야기를 구성하는 두 등장인물이 처음 나누는 대화가 생각보다 상냥하다.

거북이는 어쩌면 토끼를 약재 같이 쓰임에 필요한 하나의 물건으로 보고 상투적으로 인삿말을 건네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 토끼의 대답은 슬프게 느껴지는데, 왜냐하면 진심이 없는 거북이의 질문과 달리 토끼의 대답에는 어떤 진심이 들어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 보잘것없고 현실 속에서 쫓기며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얼떨떨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 대답은 어쩌면 '잘 듣고 있어요'라고 화자에게 건네는 말에 화자가 대답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다. 왜 나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저 현실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일 뿐인데, 하고 말이다. 당신이 내 노래가 좋다고 하여도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래서 어차피 어디선가 서로를 해칠 거라는 슬픈 예견이 보이기도 한다.


누나, 저 군대가기 전까지
재밌는 거 하고 싶어요
아이고, 미리 말씀하셨으면
간을 가지고 오는건데


어쩌면 이 부분은 언젠가 과거에 사랑을 좇던 화자가 어쩌다보니 해치게 된 누군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이 기억을 '듣고 또 들려주고 싶은' '의미가 있는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누나, 저 군대가기 전까지 재밌는 거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은 일상적이면서도, 불안함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의 삶은 저 발화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서로 호감을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인연은 과연 행복한가? 혹은, 우리들은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화자의 대답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서로 해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이야기 속 토끼와 거북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들에 대한 연민 또한 품고 있다. 서로 어찌되었던 간에 누군가는 목숨을 찾는 것이고, 누군가는 사랑을 좇기 때문에, 그만큼 절박할 수밖에 없고, 그 행위는 결국 소중한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기억하고 외워져서 누군가에게 들려질 거라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노래에서 이 부분이 제일 좋다. 듣고 나면 하루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성채윤 (19. 03 ~ ).jpg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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