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금호악기 시리즈,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on 과다니니 크레모나 1794

글 입력 2019.03.0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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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3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봄이 시작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손꼽아 가고 싶은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난 7일 목요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목요일의 금호악기 시리즈로 무대를 꾸민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의 무대였다. 피아니스트 박진형과 함께 무대에 서서 과다니니 크레모나 1794년산으로 연주할 이 무대는 정신 없었던 2월을 견디게 해 준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사실 연주 당일에는 조금 걱정이 됐다. 미세먼지가 심하면서 기온이 많이 포근했던 다른 날들과 달리 3월 7일 목요일은 꽤 쌀쌀했다. 그런데 이전에 따뜻하던 날들 기준으로 옷을 입었다보니 공연을 기다리면서 몸 상태가 많이 가라앉았다. 기운이 너무 떨어진 상태여서 내가 이 공연을 즐겁게 만끽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은 첫 곡부터 나를 잡아끌었다. 정말, 이수빈과 과다니니의 조합이 나를 '하드캐리'했다.





Program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8번 G장조, Op.30/3
Ludwig van Beethoven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8 in G Major, Op.30/3
Allegro assai
Tempo di Minuetto, ma molto moderato e grazioso
Allegro vivace
 
외젠 이자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슬픈 시 d단조, Op.12
Eugène Ysaÿe Poème élégiaque for Violin and Piano in d minor, Op.12
 
I N T E R M I S S I O N
 
벨러 버르토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제1번, Sz.86, BB94a
Béla Bartók Rhapsody for Violin and Piano No.1, Sz.86, BB94a
Lassú. Moderato
Friss. Allegretto moderato
 
카미유 생상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d단조, Op.75
Camille Saint-Saëns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1 in d minor, Op.75
Allegro agitato
Adagio
Allegretto moderato
Allegro molto





첫 곡은 예정되어 있던 그대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베토벤 소나타 8번이었다. 이 곡이 첫 곡이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에 아트인사이트로부터 이수빈의 무대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프로그램 중에서 이 곡이 가장 안정감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운된 컨디션 상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과 피아니스트 박진형의 연주를 들으니 오히려 내 컨디션이 끌어올려졌다. 우아하면서도 유머스러운 1악장의 서두가 시작되니, 그 두드리는 듯 통통 튀는 음들이 침잠해가던 내 마음과 몸을 두드려 연 것 같았다. 특히 1악장의 묘미인 그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익살스러움이 이수빈의 손끝에서 정말 잘 묘사되었다.


1악장에서 이수빈이 과다니니가 장난끼 넘치는 소년 같은 청아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면, 2악장에서는 차분하고 포근한 청년의 음색을 들려주었다. 1악장과 대비되어 그 차분함이 아주 따뜻하게 와 닿았다. 3악장에서는 다시금 익살스러움이 배가되었다. 재치 넘치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음들이 충만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기세로 이어지는 아르페지오들은 이수빈과 박진형의 베토벤 소나타 8번을 가장 아름답게 해 준 대목이었다.


이어서 두번째 곡은 외젠 이자이의 슬픈 시였다. 프로그램 북을 보니, '시곡'이라는 장르는 외젠 이자이가 자신의 작품에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만든 새로운 장르라고 한다. 그 중 첫 곡인 이 곡은, 시곡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의 작품답게 여러 표제음악 중 타이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를 그려낸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과 피아니스트 박진형의 연주는, 말과 글이 아닌 슬픔이 음악 그 자체가 된 연주였다. 이 작품에는 슬픔에도 있는 고저와 경중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표현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이수빈은 고조되어 감정이 폭발하는 그 순간도, 마치 심장처럼 슬픔이 고요하게 박동하는 것만 같은 그 순간도 너무나 능숙하게 그려내주었다. 과다니니의 소리 역시 베토벤 소나타 8번에서와는 다르게 더욱 더 깊어졌다. 그리고 어쩌면 긴장이 풀린 것일까, 피아니스트 박진형과의 호흡 역시 첫곡에서보다 더 좋았다.


*


인터미션 후 2부의 첫 곡은, 내가 이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금호아트홀까지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였다. 바로 바르토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1번이다. 바르토크의 솜씨가 느껴지는, 오묘하기 그지없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광기어린 듯한 피아노의 힘있는 불협화음의 조화는 이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1악장에서는 이수빈의 그 오묘함과 박진형의 광기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강렬하게 객석을 강타했다. 강대강의 만남이었는데도 그것이 오히려 조화롭게 와닿는 건, 바르토크가 펼쳐내는 마성의 세계가 항상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수빈과 박진형은, 이를 정말 완벽하게 전달해주었다. 1악장은 그렇게 묘한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며 끝났다.


2악장은, 처음 듣는 사람들을 방심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수빈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선율이 1악장에서처럼 전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르토크는, 절대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음악가다. 이수빈이 그려내는 안정적인 선율 위로 박진형이 펼쳐내는 불협화음이 언밸런스한 듯 어울리게 끼얹어지기 시작했다. 아, 그 오싹한 아름다움이 어찌나 소름끼치던지. 이번 공연에서 나를 전율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감각이 더욱 극대화되어 이 곡의 묘한 아름다움에 완전히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곡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놀라운데, 이수빈과 박진형의 앙상블까지 완벽했다. 그야말로 브라보였다. 개인적으로는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었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곡은 생상스의 바이올리노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첫 곡이었던 베토벤 소나타와는 또다른 안정감을 주는 곡이었다. 이자이의 곡에서는 이수빈의 과다니니에서 폭발하는 감정이 많이 묻어났다면 생상스에서는 훨씬 정제되고 또 세련된 정서의 표현들이 이어졌다. 1악장에서는 이수빈의 선율과 박진형의 선율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이 이어졌다. 마치 점묘화처럼, 그 정서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일련의 과정이 격하지 않고 절제된 것을 보니 직전의 바르토크에서는 사실 느끼기 힘든 안정감 같은 것이 새삼 와닿았다. 특히 2악장은 아주 여유롭고 서정적이어서 마치 베토벤을 들을 때처럼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3악장은 1, 2악장보다 명료한 색채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 화룡점정은 4악장이었다. 3악장에서 물흐르듯 이어지는 4악장은 시작부터 이수빈의 화려한 기교가 눈과 귀를 만족시켰고 이를 뒷받침하는 박진형의 선율은 너무나 아름답고 고왔다. 오로지 이 4악장 하나만으로 생상스가 이번 무대의 마지막인 이유가 다 납득이 될 정도였다. 4악장의 시작에서는 이수빈의 바이올린 기교가 주를 이루었지만 점차 박진형 역시 쉴새 없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피아노 기교를 보여주었다. 점차 절정으로 치달아가면서 이수빈과 박진형이 같은 음들을 같은 빠르기로 휘몰아치듯 함께 짚어나가는 그 광경과 소리를 현장에서 목도하니 엄청난 고양감이 들었다. 그 끝맺음에서 결국, 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브라보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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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에 이어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은 피아니스트 박진형과 함께 다시 무대로 나왔다. 본인의 은사님과 부모님 그리고 금호재단에 감사를 표한 이수빈은 현재 미국 유학 중이라 공연 전날에 한국에 도착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박진형과 함께 연습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잘 맞춰준 박진형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대목에서 솔직히 놀랐다. 특히나 생상스에서 보여준 호흡을 보고 연습을 많이 했겠구나 싶었는데 사실은 시차적응도 제대로 못한 상태였고 호흡을 맞춰 연습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준 건 역시 이수빈과 박진형이,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연주자들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런 그들은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의 감상적 왈츠 F단조 Op.51/6을 연주했다.


*


이번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의 무대에는 유독 객석에 어린이를 대동한 부모님들이 다른 공연들에 비해 많이 보였다. 리틀 이수빈, 차세대 박진형을 꿈꾸는 아이들인 걸까. 3월 7일의 무대가 그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길 바란다.


음악 비전공자이자 침잠해가는 컨디션으로 무대를 찾았던 나에게도 엄청난 에너지를 전달해 준 젊은 비르투오소 두 명의 향후 행보가, 정말 기대된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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