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같은 삶, 삶 같은 영화

영화의 심장소리2 Review
글 입력 2019.02.25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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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이 흥행하고 있다. 쉴 틈 없이 웃기다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한 극한직업은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라는 명대사와 수많은 패러디를 남겼고, 누적 관객 수 1,5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2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개봉 32일 만에 ‘아바타’와 ‘국제시장’, ‘신과 함께’를 뛰어넘은 엄청난 기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극한직업의 열풍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극한직업의 흥행으로 돈이 되는 한국식 B급 코미디를 우후죽순 양산해낼 영화계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의견에 공감하지 못했다. 내게 극한직업은 시원시원한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정신없이 웃을 수 있었던 즐거운 영화였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관객을 즐겁게 해 주었다면 그걸로 영화의 역할은 끝이 아닌가.


심리학을 공부한 시인이 쓴 ‘영화의 심장소리’는 이런 내 생각을 바꾼 책이다. 영화는 오락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영화에서 인문학과 심리학을, 그리고 삶을 보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자의 글에는 따뜻한 울림이 있다. 영화와 리뷰, 그 딱딱한 관계 속에 삶을 녹여낸 따스한 칼럼, ‘영화의 심장소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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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



‘영화의 심장소리2’에는 총 55편의 영화가 소개되고 있다. 내가 보았던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영화다. 하지만 저자의 생생한 묘사와 간결한 표현 덕에 나는 이 초면인 영화들과 내적인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그녀는 혼자다. 그녀가 쓴 철학 교재도 유행에 뒤떨어지고, 아끼던 제자도 조금씩 멀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이제는 정말 자유라고. 이건 낙원이라고. 밤에는 홀로 울지만, 또 학생들을 가르치고 바쁘게 걸어 다니고, 늘 그랬듯 책을 읽는다. 막 할머니가 된 그녀는 어린 손자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다가오는 것들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산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초라해져 가는 현실을 지혜롭고 품위 있게 받아들이며 늙어가는 나탈리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철학책과 글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 영화를 간결한 문장에 담아낸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영화의 분위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돕는다. 영화를 본 사람은 그 영화의 감성에 다시 젖게 해주고,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영화를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의 힘이다. 그래서 이 힘 있는 글을 읽고 나면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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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루미 선데이'


풍부한 인용구의 사용에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영화의 내용을 포괄하는 다양한 인용구를 사용하여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이해를 돕기도 하고, 영화의 의미를 더 넓은 곳으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가 겪은 아우슈비츠를 담은 소설 ‘운명’을 인용하여,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온갖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주인공 일로나의 인생을 설명한다. ‘자살곡’으로 악명 높은 ‘글루미 선데이’와 행복에 관한 인용구가 대체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극한의 비극 속에도 덫 같은 행복이 있다는 점에서 둘의 결합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삶의 희망을 선물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중년들이 모여 바실리타카를 횡단하며 성장하는 영화 ‘이탈리아 횡단밴드’에는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비밀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는 마르틴 부버의 말을 인용했다. 여행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얻은 아픔과 성장 같은 것들이 네 명의 중년 아저씨들의 비밀 목적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담긴 인용문들은 우리가 영화를 더욱 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의 풍부한 심리학적,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물 같은 명언들이다.


이토록 힘 있는 묘사와 선물 같은 인용구들로 가득 찬 저자의 글은 결국 삶을 말한다. 짜릿한 쾌감만을 선사하는 영화보다는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저자의 글에는 항상 자기성찰적 인식이 배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심장소리’는 영화 평론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심장 소리를 듣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는 어떤 의미를 주는지 탐색하는, 삶과 영화에 관한 에세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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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영화에는 항상 누군가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다. 적어도 우리의 삶과 인생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좋은’ 영화는 그렇다. 영화는 또한 가이드북이다. 영화에 담긴 누군가의 삶은 관객들의 삶에 각기 다른 형태로 자리 잡는다. 관객들은 어느 순간에는 불행한 현실 속에서도 ‘좋은 사람’이길 원했던 길버트 그레이프가 될 것이고, 또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러운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브리짓 존스가 될 것이다. 영화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삶의 심장소리를 들었던 관객이라면 말이다.


영화가 오락물 그 이상 또는 이하도 아니라는 의견을 이제는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심장 소리가 들려오는 생생한 삶이 아닌, 트렌드와 상업적인 계산에 물들어갈 영화계의 미래에 관한 걱정도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영화는 삶이다. 짧은 러닝 타임 안에 담긴 우리의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이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가 보고 싶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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