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통풍이 원활한 자아 [여행]

글 입력 2019.02.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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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사연과 이유 모를 속내의 굴곡 사이, 자신의 감정을 진상 규명해내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특히나,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부정적 감정일 경우 위 생각은 더욱 극심해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자신을 분석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내색하지 않는 쪽에 힘을 쏟는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가고, 자극적인 상황 이외의 것들에는 둔탁하고 무감각한 반응을 보인다. 정서를 은폐하는 것에 노련한 달인들이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삶을 유지시키고 지속해야 하는 것에 지나치게 바빠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과정은 어른이 되어가는 맵시라 칭했기 때문에. 그것은 나보다 인생 경력이 2배 이상 되는 이들의 흔한 문장이라 어느 정도 신뢰할만한 믿음으로 굳어져서. 색다른 생각은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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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번한 무기력, 자주 찾아오는 탄식과 흔한 불만족 사이 아주 가끔의 흡족함이 존재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내던 시기를 기억한다. 이러한 극사실적인 삶일수록 감정의 ‘건강한 배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고. 기본기 없이 제대로 살아가지 않았던 때가 존재한다. 그러다 문득, 타인이 강조한 일종의 속박된 인내만이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단계라면 완벽 등반하고 싶지는 않은 기분이 든 적이 있다. 자연스럽게 경로 이탈자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내와 해외의 단기 혹은 장기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많이들 나에게 왜 그리 여행을 다니는지에 관하여 물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단순히 ‘마음에 이끌려서 또는 그러한 행위들이 그저 좋아서’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들이 다소 진지한 질문으로 다가올 경우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곤 한다.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실망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것을 더욱이 피부로 깨닫기 위해서.’ ‘내가 경험하는 순간들 중에는 어느 하나같은 순간을 겪을 수 없기에, 현재의 내 감정들에 최대한 솔직해지며 흠뻑 적셔가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여행을 몇 번이고 다녀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행은 마냥 충족감이나 흡족할만한 행복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정을 빡빡하게 짜거나 우연찮게 꼬이는 노선이 생기는 경우, 하루 종일 혹은 며칠씩이나 고생길을 쫄딱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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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여행은 살아가는 과정, 그러니까 우리들 네의 일상의 모습과 꽤 비슷하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일을 실행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 둔다. 뜻대로만 풀리지 않을 미래를 어느 정도 예지해본다면 역설적이게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나의 유한한 순간들을 시큰둥하게 보내지 않게 되니까. 그것이 경이롭거나 환희할만한 상황이든, 불쾌감과 우울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것은 잊고 지내던 여러 감탄사를 자연스레 남발할 수 있게 한다. 늘어진 오디오 테이프와 같이 게으름에 허덕이는 나의 모습 또한 그대로 인정해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 자신을 획일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경험하며 살도록 한다. 이성과 더불어 감성과 본능의 선동 또한 환영해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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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의 생을 재생 중인 나는 여러 타인들의 영향이 쌓여 표현의 축소 또한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록 내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여행하며 끊임없이 사진과 글이라는 매체로 찰나를 기록하는 행위는 나의 세계를 환기시키기 위함이 되겠다. 말하자면, 앞으로도 어김없이 희미해져갈 감각을 조금이나마 붙잡아두기 위해서. 자신을 건실히 표출하는 각자만의 방식을 터득해나가는 것은 삶과 잘 지내볼 수 있는 나만의 위로가 되기 때문에.

사람마다 인생이라는 명제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어디에도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말을 인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구절을 하나 알리고 싶다. ‘인생이라는 것은 수많은 선택들의 귀결점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마지막 호흡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도처럼 유동적인 예술이다.’ 라 쓰인 어느 책의 문장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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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자신의 태도와 무드에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앞으로 겪어야만 할 풍파가 조금이나마 무던히 흘러갈 수 있을 것이므로.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삶이 주는 모든 주파수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떠한 것들에 관한 본질을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기도 하기에. 과거에서 비롯된 행위들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순간, 잘못 들어선 것 같은 길에서도 자신을 숨 쉬게 하는 순간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훗날에도 끊임없이 요동칠 ‘인생’이라는 파동을 있는 힘껏 환대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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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밀도 높은 성숙이라는 것은 감정 혹은 욕망을 빈틈없이 절제할 수 있게 된다기보다는, 조금 더 선명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색을 토해내가며 단단히 갖추어 나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류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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