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벼움 속의 단단함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 - 키스해링展 리뷰
글 입력 2019.01.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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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추운 날씨에 롱패딩을 입고 들어선 DDP는 차가운 외관과 달리 따뜻한 공간으로 나를 맞이했다. 이젠 익숙해진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 키스해링전을 보러 왔다.


프리뷰에서 적었듯 현대미술과는 아직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는 관계인 나는, 거장 키스해링의 전시더라도 팝아트를 실물로 감상하는 데에 큰 기대가 없었다. 알고 있는 몇몇 작품의 컴퓨터 그래픽 같은 반듯함을 생각하며, 물성이나 손길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접고 감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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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앞에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은 블랙보드 드로잉이었다. 뉴욕 지하철의 빈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충동으로 시작된 그의 드로잉은 커리어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함부로 그리기 어려운 그림, 나에게 이런 그림을 공공장소에 내걸 용기가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림이었다. 그의 단단한 자아가 돋보이는 간결하고도 강력한 장면에 함께 전시를 관람한 친구는 벌써부터 영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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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익숙한 작품과 처음 보는 작품들 모두 장난스러움 속에 뼈가 있는 작품들로 전쟁, 차별, 질병, 사회에 대한 경고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내가 이 전달력에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보았던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의 비교글 때문인데, 오웰은  <1984>에서 억압과 공포가 디스토피아를 불러올 것이라 예견한 반면 <멋진 신세계>를 쓴 헉슬리는 쾌락과 자유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디스토피아를 불러올 것이라 예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양 쪽 모두 인류에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당대 미국 사회는 자유주의와 물질주의의 혜택과 폐해를 함께 겪고 있었다. 지금도 미국의 큰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 마약과 에이즈 등, 쾌락이 주는 고통은 경계하기 어려움이 사실이다.


또한 사람들은 경고를 싫어한다. 즐거움에 한껏 빠진 상태에서는 특히 더 경고를 무시하기 쉬워진다. 키스 해링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그림은 딱딱하고 거부감을 주는 경고가 아닌, 가볍게 보다가도 깨달음을 주는 경고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 보여주는 친절한 안내자로서 위험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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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기법적인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 포인트가 많았다. 미리 이미지 파일로 받아봤던 작품들도 종이를 엠보싱 처리해 시각적 효과를 개선시켰다든가, UV램프를 이용해서 독특하게 빛나는 그림을 제작하는 등 실크스크린이나 물감 사용을 넘어선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모두 재미와 집중을 함께 끌어내는 모습이었다. 일부 조각 작품들까지 감상할 수 있었는데, 평면적인 본인의 스타일을 입체로 자연스럽게 변환시켜 그 단순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확실한 조각의 느낌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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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반부는 마치 동굴에 들어선 기분을 줬다. 수평 수직이 맞춰진 일반적인 디스플레이와 달리 삐뚤빼뚤하게 걸린 대형 작품들, 특유의 픽토그램같은 화풍,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이 더해져 고대 동굴 벽화를 보듯 그림들을 감상했다. 블루프린트 드로잉이라 불리는 이 시리즈는 특별히 공을 들인 작품이자 본인이 다루었던 주제들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방향의 해석만을 지정해주지 않고 상상력을 품게 만드는, 매력있는 시리즈라 더욱 마음이 끌렸다.


만화 같은 이미지 안에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이집트 신화, 외계 미신이 뒤섞여 들어간 듯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잔인하거나 성적인 코드가 포함되기도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작가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키스 해링의 전시를 돌아보며 많고 많은 현대미술 중 대중문화를 '이용한' 작품은 많았어도, 대중을 '위하는' 것에 이토록 열중한 작품이 많았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미술이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능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까 싶다.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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