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팩(fact)일 수도, 션(fiction)일 수도 :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프리뷰
글 입력 2019.01.1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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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fact)와 픽션(fiction)


"역사적 사실로만 만들 거면 다큐를 만들지, 왜 드라마를 만드냐" 몇 년 전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어느 드라마, 도마 위에 올랐던 어느 배우의 발언이다. 당시엔 허구를 많이 가미한 사극, 더 나아가 퓨전 사극의 붐이 일었었고, '팩션'이라는 개념은 대중문화의 화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적되었던 것이 '역사 왜곡 논란'. 실제 있었던 일, 사료의 서술을 얼마나 바꾸고 재해석하느냐 역시 저 발언과 같은 담론의 장에서 이야기되었다. 실제로 위 드라마는 흥행리에 종영했지만, 아직도 '역사왜곡 드라마'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 중 하나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가 '팩션'이듯 결국 사'극'도, 역사 '소설'도 역사 '영화'도 허구가 주는 재미를 무시할 순 없다는 의견과 그럼에도 실제 있었던 일을 극심하게 왜곡하거나 뒤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격렬히 부딪쳤다. 이게 극단으로 점철되었던 게 상기 드라마인데, 특히 민족주의와 결부돼 인물 미화 논란, 매국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션'만 봤을 땐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끄덕일 수 있겠지만, '팩'을 고려했을 땐 지금 생각해도 아연한 역사 재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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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스틸 컷
 

실제로 있었던 시기, 실제로 있었던 인물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야기의 재미를 만드는 것. 어느 제과 회사 광고처럼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공공연한 작법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왕이 된 남자>는 조선 중기, 임금과 광대가 바뀐다는 설정으로 작품의 얼개를 꾸렸고 (임금 '이헌'이란 이름도 광해군의 본명 '이혼'에서 차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타임슬립물 등을 녹여 만든 사극도 한참 트렌드세터로서 드라마 부흥기를 이끈 바 있다. 역사서를 정말 그대로를 옮겨놓은 작품이 어디 있겠냐마는, 근래의 많은 드라마들은 '션'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역사, 창작뮤지컬의 보고

2018년 연말, 2019년 연시 공연계에서도 실존 인물의 실화가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시인 랭보의 삶을 다룬 뮤지컬 <랭보>가 큰 관심을 받으며 막을 내렸고,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뮤지컬 <1446>도 호평 어린 반응으로 초연을 마무리하고 재연을 준비 중이다. 또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의 삶을 다룬 뮤지컬 <마리 퀴리>나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등이 공연 중이다.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지컬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 역시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 중 하나다. 제작사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루드윅>은 베토벤과 그의 조카 카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팩션 드라마'다. 작품은 2018년 11월 27일에 초연으로 개막했고, 머지않은 2019년 1월 27일엔 막이 내리며 재연을 기약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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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 공연 사진 ㅣ (주)과수원뮤지컬컴퍼니


작품이 소스로 삼은 실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베토벤의 동생은 폐결핵에 걸려 죽게 되고, 남은 조카를 둘러싼 베토벤과 동생의 부인 요한나(조카 카를의 엄마)의 법적 소송이 진행된다. 베토벤의 동생은  형 베토벤이 아이의 유일한 후견인이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죽기 직전엔 요한나를 공동 후견인으로 인정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이로 인해, 그의 유언과 조카 카를을 둘러싼 베토벤과 요한나의 법정공방이 시작되었다. 베토벤은 요한나가 사치스러울 뿐더러 사기, 횡령의 전과도 갖고 있어 내켜하지 않았고, 조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양육권을 얻어내려 했다고 한다. (이 공방으로 요한나와 베토벤이 연인 사이였고, 카를은 베토벤의 아들이 아니냐는 속설도 돌았지만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이었다.) 공방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와중에 베토벤과 함께 살던 카를이 집에서 가출해 요한나를 찾아가는가 하면, 베토벤이 (공방 도중) 신분 도용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는 등, 고통과 고뇌의 연속이 그에게 찾아든다. 결국 베토벤은 오랜 싸움 끝에 승소하게 되지만, 생의 고통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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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칼 슈타이어가 그린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초상화 (1820)



뮤지컬 <루드윅>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꾸려낸다. '희대의 아티스트' 베토벤과 그를 '루드윅'이라고 부르는 작은 소년, 조카 카를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인데, 이때 마리라는 허구의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실화 위에 메시지를 두텁게 쌓으려 한다. "선생님의 음악이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인생을 다잡은 마리, 청력을 잃고 모든 걸 포기해가는 베토벤, 그의 조카 카를, 그리고 마리가 데려온 소년 발터. 베토벤의 인생과 조카를 둘러싼 실화 위에서, 이야기는 자신만의 행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팩션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소재로 새로운 즐거움을 안길 수 있다. 더군다나 실화는, 또 역사는 머릿속 상상의 세계보다 훨씬 더 스펙타클할 수 있는 소재의 보고가 아닌가. 다만 여러 우려처럼, 역사 왜곡 논란, 재해석 논란 역시 피해갈 수 없는 구덩이다. 그리고 단순한 역사의 재현, 실화의 재현으로 남지 않으려면 '이야기'로서 무대 위에 올라야 하는 당위 역시 갖춰야 할 테다.


뮤지컬 평론가 정수연의 지적처럼 "실존했던 예술가를 소재로 삼은 수많은 창작뮤지컬"들이 비슷한 구성과 분위기로 "예술가의 이름과 이미지를 내세워"왔는데, <루드윅> 역시 그 흥행 코드(정 평론가는 이 코드에서 긍정적인 징후를 읽어내지 않았다. 「퇴행하는 서사와 함께 사라지는 것들 <랭보>」, <더뮤지컬> 2018년 12월호)를 따를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주목해볼 만하다. 베토벤을 다룬 팩션 드라마. 우리는 공연을 본 직후 '팩'을 이야기하게 될까, 아니면 '션'을 이야기하게 될까. 혹여나 그 모든 걸 아우르는 담론의 장이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놉시스



모차르트의 천재성,
귀족사회의 우아함과 보수성,
이 모든 거부했던 한 청년.
폭풍과 같은 인생의 위기, 죽음을 유혹을 물리친
희대의 아티스트.

어느 날, 작은 소년이
그를 ‘루드윅’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오랜 친구에게 마치 유서와 같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펜이 종이 위를 지날 때마다
자신의 지난 시절을 환영처럼 떠올린다.

어린 베토벤이 혹독한 가르침에
힘겹게 피아노 앞에 앉아있고,
청년이 된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 또한 잃는다.
좌절의 늪에 빠져 죽음과 마주하던,
폭풍우 속 그날 밤,

낯선 여인 마리가
어린 소년 발터를 데리고 무작정 찾아와
발터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달라 청한다.

망가진 청력, 나락으로 떨어진 자괴감에 베토벤은
그녀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나, 마리는 그도 잊고 있었던
음악의 힘과 세상을 향한 강한 울림을 이야기한다.

“선생님의 음악이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도발적이고 당당한 그녀 앞에 당황한 베토벤,
거장 앞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마리,
그들의 열정은 충돌했고 달랐으나 어딘가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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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


공연기간
2018년 11월 27일(화) ~ 2019년 1월 27일(일)

공연시간
평일 오후 8시
(월 공연 없음)
토요일 오후 3시, 오후 7시
일요일 및 휴일 오후 2시, 오후 6시

공연장소
JTN아트홀 1관

프로듀서
허강녕 <베토벤심포니>, <리멤버>

작ㆍ연출
추정화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신인연출상 <인터뷰>, <스모크>

음악
허수현 제2회 더뮤지컬어워즈 작곡상 <라디오스타>, <아가사>

안무
김병진 <은밀하게 위대하게>, <알타보이즈>

출연
김주호, 정의욱, 이주광(루드윅 역), 강찬, 김현진, 박준휘 (청년 역)
김소향, 김지유, 김려원(마리 역), 임남정(마리 언더스터디)
차성제, 함희수(발터 역), 강수영(피아니스트)

관람료
전석 일반 55,000원

관람시간
110분

관람등급
만 7세 이상






<참고>
조병선, 『클래식 법정』, 뮤진트리, 2015. 
<더뮤지컬>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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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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