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증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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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은 어두웠다. <갈증>은 그런 과거를 짜증스럽게 되뇌며 썼다. 이는 고독과 증오를 견디지 못하고 질주하는 인간들의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 우애와 화합을 버렸기 때문에 심한 거부감을 갖는 분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소설의 세계에 공감할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애 가득한 세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찬란한 태양을 향해 침을 뱉고 싶은 사람이 나만은 아닐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도저히 끝까지 못 읽겠다.솔직히 완독을 고민했다. 나는 19금 딱지가 붙은 액션영화는 인생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잔인함에 약했다.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는 자체적으로 넘겨가면서 이 책을 다 읽을지, 말지 고민했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잔인함은 둘째치고 온몸이 더러워지는 불쾌한 기분을 씻을 수가 없었다. 어쩜 이렇게 적나라하게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게 '역시 인간의 본성은 악으로 뒤덮여있나.'라는 한숨 섞인 체념이 흘러나왔다.
취미를 즐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자적한 미래를 꿈꾼다. 이건 나의 상상일까, 현실일까. 반쯤은 현실이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상상일테다.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각양각색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고독함에 몸서리치고, 참을 수 없는 증오와 분노를 느끼기도 하며 살아간다. 단지 이런 감정을 시시각각 드러내냐, 마음 속 깊숙한 어딘가에 숨기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런 불온전한 감정을 느끼지만, 인간이기에 이런 감정을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간다.
마주하기 싫은 인간의 본성소설 <갈증>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인간의 본성을 온전히 전해준다. 매춘, 근친상간, 마약과 같이 단어만 들어도 거북해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비이성적인 소재들로 인해 속이 거북해지고, 계속해서 읽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이 계속되는 책을 통해서 한 번쯤 느껴보았던 분노를, 고독을, 증오를 다시 마주한다. 비인륜적인 사건 자체에 대해 메스꺼워하면서도 사건 속 감정들에는 공감하게 되는 마음, 또 다른 아이러니다.딸이 사라졌다.전직 경찰 후시지마는 어느 날 전부인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딸 가나코의 실종 소식. 가나코의 방을 뒤져보던 후시지마는 다량의 약물을 발견하게 되고, 이와 함께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건 대체 누구를 위한 수사일까. 수사가 진행될수록 후시지마의 추악함이 드러난다. 술김에 친딸을 겁탈하고, 다른 이의 아내를 겁탈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화목한 가정을 꿈꾸는 양심은 밥말아먹은 사람. 딸에게 모범생 프레임을 씌우면서도 정작 본인이 모범적이지 못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딸의 행적을 쫓으면서도 딸에 대한 욕정으로 가득 차 있던, 보면 볼수록 소름돋는 그는 필시, 악마였다.
딸 가나코는 망가졌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소년을 이용하고, 너덜너덜하게 망가진 모습의 소년은 차마 글로 표현하기도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다. 놀라운 것은 가나코의 태도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끔찍한 일들은, 어찌 보면 그녀가 공을 들여 계획한 거나 다름 없었다.
선이란 없었다.모두가 악마였다. 단지 모든 시초가 후시지마였다는 점에서 제일 가는 악마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올바른 부모 밑에서 자랐더라도 가나코가 악마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밀려오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매끄러운 문체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 기분 나쁜 불쾌함이 느껴지는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너무 현실적으로 쓰여져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담담하게 읽게 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사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더욱이 활기찬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연말연시에는 더더욱. 굳이 인간의 밑바닥을 들추기 보다는 희망찬 내용 속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흡수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추락이 어디까지인지 느껴보고 싶다면 마음을 단단히 (정말 단단히) 먹고 읽어보길 추천한다.
[유다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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