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력은 결코 배신한다, 노력의 배신 [도서]

글 입력 2018.12.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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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성세대는 말한다. 한국의 청년문제가 이토록 심각한데 한국의 청년들은 이에 분노하지 못하고 너무 조용하다고. 그러나 이는 현재 청년들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과거 자기네 시대로 청년들을 바라봄으로써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현재 청년들은 조용하지도 않으며 분노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현재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노답사회, 헬조선, 벌레’등의 용어는 모두 청년들의 분노가 표출돼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청년들은 어느 때보다 분노하고 있다. 다만 그 방식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혐오’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청년들은 ‘분노’를 넘어 ‘혐오’라는 형태를 취할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노오력의 배신’은 이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옛말


취업대란, 청년 명퇴, 위계적 조직문화, 저출산, 취약한 사회 안전망, 사회 양극화 등 한국의 사회 문제를 통합시켜 만든 하나의 용어가 ‘헬조선’이다. 그리고 헬조선에서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력’이 아닌 ‘노오력’이다. ‘노오력’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 이상을 요구하면서 취업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취급한다는 것을 비꼬는 데에서 나온 용이다. 초경쟁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은 200%, 300% 성과를 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 ‘노력’만 하면 된다는 ‘노력의 신화’가 실제로 이루어진 시대가 있긴 있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신분에 의해서가 아닌 노력에 의해서 사회적 위치를 얻을 수 있었다.  부모세대는 자식들을 위해서 무작정 돈을 벌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등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노력의 신화는 노력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이런 노력의 신화로 인해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이는 곧 ‘학력주의 신화’로 나아갔다. 학력이 출세의 지름길이 되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사람의 생애 중 필수과정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학력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성취감을 중요시 여기는 ‘소비’가 중심이 되자 이제 학력만으로는 출세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사회는 개인에게 자기계발을 통한 자아 실현을 요구한다.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경쟁력만이 사회로부터 도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학력은 자기계발의 한 과정이 되었고 이제 개인은 높은 학력을 가지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투자의 대상으로 여겨 ‘스펙쌓기’를 위한 노력에도 몰두하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간 문제는. 벅찬 노력을 요구하면서 사회가 그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모순에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노력을 통해 기업에 취직해도 한국사회에 짙은 경향인 무임금 초과노동으로 인한 노동착취로 버티지 못해 또 다른 길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또한,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사회로 넘어오자 취업까지의 모든 과정이 자아실현의 준비과정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전공한 과가 원하는 분야에 부합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전공을 살려야 한다는 압박에 원치 않은 분야의 직종에 지원하게 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아직도 만연한 수직적 기업구조와 노동 착취, 그리고 실패를 자기계발의 실패로 치부해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행태. 이 모든 게 맞물리자 자아실현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막상 진정한 자아실현을 할 여유와 기회는 없는 너무한 모순만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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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또 다른 말, 노답


청년들은 현대 사회를 '노답사회'라고 부르며 그 사회 속 자신들의 인생을 노답인생이라고 칭하고 있다. 노답이란 문제를 해결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오답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으며 그렇기에 그 끝도 없는, 노답의 영겁회귀를 말한다.

이러한 ‘노답’의 느낌은 생존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우리의 구체적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체득되고 강화된 것이다. 노력해서 지식노동자가 되어도 연공서열과 금수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흙수저는 경제적 하층민뿐만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고 낙인찍힌 사회적 천민이 될 수도 있다. 청년들은 내부자 외부자사이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는데 사회는 가혹한 이중화의 잣대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곧 노동과 비노동 사이, 개인과 사회 사이의 중간 역시 용납하지 않음을 말한다. 니트족 역시 대부분 노력하다가 소진되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소진형 무업자인데도 불구하고 놀고먹는 백수취급을 당한다. 그러므로 사회의 중간자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내부자인 척 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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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답사회에서 끊임없는 불안감은 결국 화병으로 이어진다. 노답사회는 말 그대로 답이 없기 때문에 개인은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거나 엉뚱한 타인에게 돌리게 된다. 특히, 모든 걸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며 스스로에게 분노를 하다 보면 ‘화병’이라는 병이 개인을 파괴하는 데까지 갈 수 있다.

이렇듯 근본적으로 자신의 노력이 보답 받을 수 없는, 노력의 배신으로부터 나온 사회에 대한 분노는 사회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전망과 구제가 부재한 현실에서 청년들은 사회에 대한 감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이 포기는 곧 문제의 원인이 되는 구조와 제도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적 노력의 상실을 일으킨다.



처음으로 돌아가기 - 공동의 노력


현재 존재하고 있는 청년 지원 프로그램들(좋은 일자리 제공, 좋은 일터에서 일해보는 경험 제공, 직업과 무관한 활동 참여 유도, 무위의 경험들)은 본질적인 청년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일 경험의 부족이 아니라 나쁜 일 경험, 나쁜 사회관계의 경험의 과잉으로 인한 피로감과 소진현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너무 빠르게 진행된 한국 사회의 성장 과정을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다. 학교- 노동 이행 과정의 모든 단위들을 재검토하고 재조립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간자’를 사회적 천민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자’의 위치 그 자체를 인정하면서 ‘너는 살 가치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 대한 근거가 될 가치와 방법의 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

노오력의 배신 2장 ‘민호씨의 3년 후’ 이야기에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청년의 모습이었던 27살의 민호씨와 3년후 30살의 민호씨의 모습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7살의 민호씨는 사회문제에 매우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취업전선에 들어가고 3년 후, 취업관련 사회 이슈에 꾸준하고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 직접 경험을 해봄으로써 얻은 모습이었다. 계속된 사회로부터 시도의 좌절을 겪어보고 나서야 사회적 문제의 대상에 자신이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27살의 민호씨에게서 현재의 ‘나’의 모습을 보았고 아마 책을 읽지 않았으면 30살의 민호씨에게서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예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 말했듯이 인터넷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헬조선, 노답, 흙수저 금수저’의 용어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해준다. 또한, 뉴스, SNS, 학교 수업 심지어는 가까운 지인들의 소식을 통해 끊임없이 청년 실업난에 대한 심각성을 전해 듣는다. 그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긴 하지만 나의 문제로 느껴본 적은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취업을 걱정해도 ‘그래도 취업할 수 있겠지, 노력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아직은 현실의 청년 취업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받아들이기 싫어 사회로부터 오는 충격을 외면하는 감각마비 상태에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심리적인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의미의 생존을 위해 내가 직면한, 혹은 직면할 상황들을 외면한 걸수도 있다.

‘노오력의 배신’은 그런 현실감각에 대한 부재를 확실하게 일깨워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문제를 직접 직면해봐야 마비상태에서 벗어나 방안을 찾기 전에 미리 사회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대응해야 할 목표 지점을 발견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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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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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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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하는스누피
    •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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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량양
    • 2019.01.02 20: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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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하는스누피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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