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맨 땅에 외치는 목소리 [도서]

글 입력 2018.11.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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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란의 세상사는 이야기, 이 책은 정말로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이 향토적인 문체로 드러나있다.


주거, 환경, 가족, 관계, 고통 등 의식주를 비롯한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골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수필집이면서 인생 모음집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문장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마음이 왠지모르게 편해졌다. 사실 요즘 수필집이 유난히 많이 출간되기도 하고 지향하는 흐름이 비슷비슷하다고 느껴지는데, 그래서 느껴지는 느낌도 비슷하다. 결국 웬만한 에세이집은 서점에서 조금씩 읽어보기만 하고 소장까지는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맨땅에 헤딩하기는 소장의 욕구가 드는 수필집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 수필집이 특정한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지 않고 그냥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은 어떻게 보면 너무 포괄적인 주제지만 한 사람의 삶은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한 주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 '인간극장' 이나 '나는 자연인이다' 등을 즐겨보는데, 이 프로그램들이 장수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삶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체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나는 개개인이 어려운 상황들이 모여 이를 극복해보고자 연대하는 상황에 자주 마음이 동요하곤 하는데, 그런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거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고금란 씨는 만덕동에 집을 짓고 살던 때에 재개발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답이 정해진 싸움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려던 그 때 함께 울어주겠다고 말이다. 책의 극초반에 실린 이 이야기는 그녀가 어떤 태도를 지닌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나 또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주거공간과 주거문제에 관심을 가졌었고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의 하나여서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시공살이' 역시 나의 관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한창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고 귀농을 꿈꿨던 적이 있다.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늘상 살아오던 공간에서 생활양식도 인간관계도 해야하는 일도 모든 것이 다른데 그것에 적응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고금란 씨 또한 처음 겪는 시골살이가 어려웠다고 했다. 결국 만덕동에 집을 하나 더 짓고 시골집을 오고가며 두집살이를 한다.



"상업은 있는 물건이 다른 곳으로 옮아가는 것이고 공업은 원재료를 가지고 모양을 바꾸는 것이지만 농업은 없는 것을 몇 배로 만들어내는 일이니 농사야말로 진정한 창조 작업이라는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지금의 나는 농촌에서 뿌리를 내리고 농사짓는 삶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농사의 가치와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던 구절이다. 농촌봉사활동을 갔을 때도 블루베리 공장에서 블루베리 용기 뚜껑을 닫을 때와 텃밭에서 작물과 흙을 만질 때의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였던 기억이 난다. 5년 전부터 자연이 주는 풍경에 애정을 느껴서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 책을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카리나를 배웠다는 고금란 씨 처럼 우리 어머니도 시골에 간 후로 성악과 우쿨렐레를 배우셨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만난 어머니는 마음껏 노래하고 우쿨렐레를 연주하셨었다. 그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삶이 이름이나 별칭과 무관하지 않게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이름을 따라가는 것인지 이름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자기의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또한 틀림없는 일입니다."



책의 마지막 챕터 이름은 '어느 갠 날의 기억'이다. 살아온 기억을 본인의 문장으로 엮어내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생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멋진 사람같다. 간만에 좋은 책과 좋은 작가님을 알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된 책이어서 마음이 충만하게 기뻤다. 누군가의 인생으로부터 마음의 고통 다루는 법, 다양한 사건과 사물들, 음식과 동물, 악기에서 얻은 각종 생각과 깨달음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어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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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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