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인생 자체가 맨땅에 헤딩이다, <맨땅에 헤딩하기>

글 입력 2018.11.0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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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 자체가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계획대로 흘러갔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들이 즉흥적이었고, 예측 불가능으로 살아왔다. 하루하루가 처음으로 가득하다. 어제처럼 똑같은 하루를 제공받으면서도 생소한 하루로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 자체도 굉장히 다이나믹하다. 상고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대학교를 문예창작학과로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도 낯선 이들에게 나의 그 과정들을 소개할 때면, 나 또한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 전, 대학 동기와 같이 졸업소감을 작성하는데 서로 무슨 말을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며 한참이나 고민에 빠지곤 했다. 10년 전에 나는, "아마, 10년 후에 대학교에서 낭만을 즐기고 있을거야."라고 행복한 상상을 그려나갔었지만. 이젠 그 10년 후를 경험해봤으니, 나도 '나의 10년 후'를 전혀 예측 못하겠다. 멀게만 느껴지는 '36살'의 숫자와 나의 '36살의 꿈'은 또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내일을 맞이한다.

문화의 불모지인 좁은 대구를 벗어나, 수도권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움 투성이었다. 우선 전국 각지에서 모이다 보니 각양각색의 문화를 언제든지 접할 수 있다는 게 한껏 신이 났다. 또한 서울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지옥철을 경험하는 것도 행복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틈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점점 두려움이 밀려왔다. 쉽게 내어주지 않는 나의 '공간'과 허송세월 보내지는 '시간'들에 갇히자 나는 문득 바다에서 살고 싶어졌다. 복잡함없이 여유있는 하루를 가지고 싶어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것에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고, 넘치는 생각들에 예민해지는 내가 점점 싫어졌다. 남들과 '같은' 일상을 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때로는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성공'보다 '여유'있는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열심히 쌓아왔던 스펙들을 일시정지하고, 대구에서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기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길은 또 나타나게 되는 듯하다. 그저 길이 안 보인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 보다 뭐라도 시도하면 그것에 따른 길이 생성되는 게 인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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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호밀밭

지은이 : 고금란

분야 : 산문집

면수 : 256쪽

가격 : 13,800원

출간일 : 2018년 8월 19일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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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듯,

세상 모든 타자들에게 건네는 뜨거운 안부와 축원
 

소설가 고금란이 두 번째 산문집 <맨땅에 헤딩하기>를 펴냈다. 곱고 차분하면서도 한편으론 묵직한 결기와 내공을 느끼게 하는 문장이 가득하다. 산전수전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나이를 먹으면 이런 글이 나오는 걸까. 우리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정성스레 꾹꾹 눌러써가며 살아오신 이야기,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기분이다.

우리는 저마다 각박하고 무거운 현실을 짊어진 채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살던 집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지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이층 주택이 공기업인 토지주택공사에 수용된다. 다시 집을 지을 곳을 찾아 도시를 헤매지만 땅을 구할 수 없어 결국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하면서 삶과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된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여유롭고 한적한 공간이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살이의 다양한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평생 살아온 도시를 떠나 ‘맨땅에 헤딩하듯’ 시골 생활을 시작한 저자에게 시골은 결코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남편과 네 탓이니 내 탓이니 싸우기 시작했고 지인들은 이사를 잘못했다거나 집터가 세다며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갈 거라고 쑥덕거렸다. 저자는 이런 모든 얘기들이 기우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지만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어느 날 야반도주를 하듯 인도로 떠난 저자는 결국 그 모든 고통들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시골로 돌아온다.

     

삶은 정답 없는 각자의 여정,

굳은살 박인 이마를 쓰다듬고 낡아가는 몸을 안아주며 다시 일어서기
 

저자는 된장을 담그고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고 닭을 키우면서 풀숲에 낳아놓은 달걀을 찾아다니는 여유를 누린다. 그리고 햅쌀밥 한 그릇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면서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봄이면 지인들과 어울려 화전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가마솥에 끓인 동지팥죽을 나누며 자신에게 주어진 호사를 주변과 나눈다. 무엇보다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살기 위하여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


‘삶은 정답이 없는 각자의 여정이다.

어차피 태어나는 자체가 맨땅에 헤딩이고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길을 가는 일이다.

나는 고민이 짧고 일부터 저지르고 드는 기질이라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많았던 것 같다.

좋게 해석하면 가슴의 소리에 따랐다는 말이고

계산 없이 즉흥적으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굳은살 박인 이마를 쓰다듬고

낡아가는 몸도 한번 안아주자.’


- <책을 내면서> 中



< 목차 소개 >
    


1부. 고등골 편지
두껍아 두껍아 · 12
집들이 · 18
자수정의 땅 · 24
언양 장, 빈자리 하나 · 30
민물 매운탕 · 36
우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 42
나무를 위하여 · 48
상주들과 한판 · 54
사름하기 · 60
장닭을 키운 뜻은 · 66
 
2부. 내 자유의 크기
고통다루기 1 · 74
고통다루기 2 · 80
매듭 풀기 · 86
에드 윈 · 92
달아 밝은 달아 · 98
쌀밥 한 그릇 · 104
배추 농사 · 110
장 담그는 날 · 116
뱀 이야기 · 122
오카리나를 불다 · 128
 
3부. 사람, 사람들

그때 그 사람 · 136
지리산 명희 씨 · 142
안동역에서 · 148
푸른 별 김미혜 · 154
막내 이모 · 160
두미도를 아시나요 · 166
당초무늬 그릇 빚어 · 172
빈집 · 178
잃어버린 휴대폰 · 184
알 수 없는 세상 · 190
 
4부. 어느 갠 날의 기억
흉내 내기 · 198
되로 주고 말로 받다 · 204
이름 값 · 210
시절 인연 · 216
초록 공간 · 222
네스가 되다 · 228
낮은 목소리 · 234
사라지는 것을 위하여 · 240
발자국을 보태다 · 246
노세 노세 젊어 노세 · 252





지은이 소개



고금란

부산 영도 출생.

1994년 계간지《문단》겨울호에 단편소설 『포구사람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농민신문에 농촌 소설 『그들의 행진』이 당선되었다.

1995년 첫 창작집 『바다표범은 왜 시추선으로 올라갔는가』 이후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등의 소설집을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는 『그대 힘겨운가요 오늘이』를 펴냈다. 2011년 『소 키우는 여자』로 16회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으로 있다.




본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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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그들 대신 울어주어라.” 나는 그 소리에 떠밀려 사람들의 물살을 헤치고 나가서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저는 만덕1동 821-2번지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동안 저는 이 동네를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로 그 마음을 접겠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주민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15p
 

나는 남루한 이삿짐을 끌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겪었습니다. 첫 살림을 시작한 사글셋방에서는 자기 며느리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방을 비워야 했습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겁내던 액운들을 내가 모두 가지고 왔던지 궁핍한 생활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고 아이까지 태어나니 슬레이트 지붕의 단칸방도 감지덕지할 정도였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거나 돈 걱정이 가장 편한 고생이라는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금전적으로 겪는 불편 끝에는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절망과 두려움이 따랐습니다. 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뜻을 일찌감치 터득하였고 고단한 육신은 꿈이나 희망처럼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달랬습니다. -18p
 

“형수요, 엄마 아부지가 영 집에 올 생각을 안 하네, 오는 길을 이자뿟나” 우스개처럼 말하지만 시동생의 눈자위는 벌겋게 물들고 남편은 컥컥 헛기침을 합니다. 지난 장에는 동서가 남아도는 푸성귀를 들고 장에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앉았던 자리에서 채소와 잡곡들을 팔았는데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하다면서 재미있어하더랍니다. 다음 장을 기다려 찾아갔더니 동서가 억지로 검정 쌀을 한 되 넣어주었어요. 한동안 비어있던 그 자리는 이제 외삼촌을 닮은 아이를 셋이나 낳아 기르는 젊은 여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외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시동생은 아내가 팔 물건들을 오토바이로 실어다 주었을 것이고 파장이 되면 뒷좌석에 태워서 돌아왔을 것입니다. -34p
 

언양은 한우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막상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민물 매운탕이 주류를 이룹니다. 남편 친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매운탕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는데 항상 느끼지만 사람들은 매운탕보다 추억이라는 양념을 더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개울에 어떤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으며 어떤 고기는 어떤 방법으로 잡아야하는지 과장된 정보들을 서로 나누는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것처럼 실감 나게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없어져 간다고 한탄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36p
 

다행히 물맛은 조금 떨어져도 양은 예전과 다름없이 풍부했습니다. 나는 마치 죽기 직전에 있던 사람을 살려낸 것 같아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우물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대숲은 조금 어두웠고 댓잎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눈이 부셨습니다. 세월의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초록색 이끼가 우물을 감싸 안고 있었고 주변은 성스러울 정도로 고요했을 것입니다. 손잡이가 달린 낡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셨을 때 나온 탄성에 작은 새 몇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물은 그때부터 나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을 두고 굴러온 돌멩이나 다름없는 내가 그 일에 앞장섰던 것을 보면요. 돌아보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었고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우물가로 모여들었습니다. 물의 성질이 낮은 곳으로 길을 만들며 가는 것이라면 사람의 근본도 이와 다를 것이 없겠지요.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우물은 그 원천을 담은 작은 그릇으로 계속 퍼 쓰지 않으면 썩거나 말라버리는 속성이 있습니다. 마치 아기가 빨지 않으면 젖줄기가 말라버리는 엄마의 가슴처럼 말입니다. -47p
 

잔디밭에 홀로 앉아있는데 이유 없이 무서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예전에 공룡에 쫓기던 누군가의 무서움일 수도 있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나가면서 느끼던 어느 원시인의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마인드에 저장되어 왔으며 지금도 오고 가고 있습니다. 다만 두려움의 대상이 호랑이나 사자에서 취업이나 급락한 주식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두려움을 경험하는 방식은 고대와 같지만 대응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달라졌습니다. 구조는 같으나 상황이 다르고 경험은 같으나 반응과 강도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이 통찰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나와 똑같다는 것을 알면 사랑과 연민이 일어납니다. -84p
 

어느 여름날, 치과에서 어금니 치료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볼이 부어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얘야, 내가 아무래도 치과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었어요. 나는 지갑에서 돈을 몇 푼 꺼내 주면서 혼잣말로 불평했습니다.

“월말이라 돈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하필이면 이럴 때 이가 아플까?”

어머니는 돈을 받으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웃었지요. 초록색 불이 들어왔지만 나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때는 치통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몰랐었다고, 그때는 자식에게 돈을 얻어 쓰는 부모의 심정을 짐작하지 못했었다고, 당신을 무시하고 원망할 때마다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 들었을지 정말 몰랐었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87p
 

그런 나에게 고등골 마당은 부담 없고 편안한 무대입니다. 마루에 홀로 앉아서 오카리나를 입에 물면 허리가 꼿꼿해지면서 숨결이 들고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가끔은 연주 소리를 신호로 감나무집 김 여사가 찾아오고 밭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리댁 아지매가 걸음을 멈추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럭저럭 오카리나를 손에 든 지 십 년이 넘으면서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곡도 제법 늘었습니다. -132p
 

다음 해 명희 씨에게서 장가간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주례를 좀 서 주시면 안되니껴?”

“됐다 마, 내가 주례를 서면 안동 양반들 난리가 날 끼다, 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한눈팔지 말고 살아라, 이런 판에 박힌 소리를 안 할 거거든, 신랑과 신부는 더러더러 한눈을 팔면서 이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겠거니 긴장하면서 살아라, 요따위로 말 했다가 안동 양반들에게 몰매 맞으면 어쩌려고?”

우리는 전화기를 사이에 놓고 한참 웃었습니다. 명희 씨는 먹는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내려놓고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의 한명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지만 밥만 먹겠다고 이 땅에 오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도 살아가는 목적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다행히 장사가 잘되어 명희 씨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게다가 연년생으로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았으니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 번씩 여행길에 불쑥 식당에 들르면 “아이고 선생님요, 내가 묵고 사니라고 이렇게 사람 도리를 못하니더”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착하고 예쁜 마누라와 토끼 새끼 같이 귀여운 아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바쁘게 뛰는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고 고마운지요. -152p
 

내 차례가 되어 보트를 타는데 바닥이 쿨렁쿨렁 움직였습니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회색물빛이 엄청난 흡인력으로 내 몸을 빨아 당겼습니다. 처음에는 감탄사를 연발하던 일행들도 겁을 먹었는지 조용해졌습니다. 노 젓는 소리와 쩡쩡 울리는 메아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내 등에는 소름이 돋고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쥐가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틀쯤 지나서 신문에서 연합뉴스 기사를 읽었습니다. 새벽에 백두산 천지에 새끼 네스들이 나타나서 한 시간쯤 놀다가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네스가 나타났다는 시간과 보트를 탄 시간이 거의 같았으니까요. 그때 류 시인이, “혹시 이거 우리를 두고 한 말 아이가” 했습니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의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꼭두새벽에 천지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상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습니다. 그렇다면 건너편 초소에서 볼 때 꼬물거리는 우리들이 새끼 네스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거라 믿으며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231p
 

그들 부부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휴대폰을 돌려주었겠지만 금돼지를 발견하는 순간 잠시 갈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유혹을 떨쳐내고 돌려준 것은 그들이 평소에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달랑 물건만 가져오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때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열 번쯤 그런 경험을 계속한 뒤에도 남의 물건을 바로 돌려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본성에서 들리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행동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88p
 

‘논다’라는 말은 ‘놓다’에서 나왔으며 거기서 파생된 단어가 ‘노래하다’와 ‘놀이하다’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노는 것도 흥이 나서 노는 것이 있고 얼이 빠져서 노는 것이 있는데 잘 놀 때 나오는 것이 노래가 되고 엉뚱하게 하는 짓이 놀음, 즉 노름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바탕 놀아버리자, 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나게 놀다 보면 웬만한 걱정들이 사라지는 경험이 종종 있었으니까요. 그 끝으로 나는 잘 노는 사람이 잘 버리게 되어있고 세상을 떠날 때도 미련 없이 갈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논다는 것은 몰입하는 시간이 많다는 뜻으로 재미난 일을 하다보면 감정이나 근심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리고 그 속에 빠져버리는 것처럼요. -252p
 

지금은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입니다. 자의건 타의건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그들을 내 삶에 초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삶을 살아본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너무 일찍 늙어버리고 너무 늦게 철이 드는 데 있다고요. 하지만 늦게라도 이런 원리를 알았으니 그게 어디냐고, 지금부터는 여한 없이 놀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256p




추천사



소설가 고금란이 소설로 쓰지 못한 이야기들을 수필집에 담았다. 글은 매우 솔직 담백하며 맨 얼굴로 다가오는 저자의 모습들도 다양하다. 모든 걸 접고 시작한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업을 다시 벌인 남편과 싸우는 아내, 마지막 가는 길에 자존심을 지켜드리기 위해 치매로 입원한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오는 며느리. 국민보도연맹 울산유족회 단체사진 속에서 50년 전 막내 이모를 만나고 6·25전쟁의 또 다른 비극을 발견하는 작가. 그리고 재개발사업 반대 집회에서 주민들의 울부짖음을 듣다 자신도 모르게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 만덕1동 821번지 동민까지. 하지만 이 책에서 고금란이 하고 싶은 말은 오직 하나로 보인다. 우리 모두 늦기 전에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 특히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것은 기질은 물론 나이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그런 말이다. - 조갑상 (소설가, 경성대 명예교수)
    

고금란 선생님의 글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타자들에게 건네는 안부이자 안녕을 기원하는 축원문(祝願文)이다. - 김가경 (소설가,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저자)
    

고등골 집짓는 일을 맡으면서 고금란 작가와 인연이 되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건축가라 해도 좋은 건축주를 만나지 않으면 아름다운 집이 태어날 수 없다. 선생님은 사소하거나 잘못된 일도 긍정으로 돌려놓는 힘이 있는 분이었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삶의 색깔들이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 김태환 (건축가, 소설가, 『낙타와 함께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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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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