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썅년으로 살기로 했다. [사람]
사람도 가려사귈 필요가 있다.
글 입력 2018.09.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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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아리에서 나왔다. 사실 예전부터 나가고 싶었는데 왜 성폭행 사건을 목격한 지금에서야 마음을 굳혔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이다. (동아리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 역시 당사자가 아니기에 사건에 대해 세세하게 언급할 권리는 내게 없다.)
싫은 사람은 이미 예전부터 몇몇 있었다. 그 사람들 때문에 동아리를 나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리에 눌러 앉아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가리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관념 때문이었던 듯하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잘 지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것이 좋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난 이제야 깨달았다.사실 나는 딱히 기억에 남을만한 인간관계의 갈등을 겪어본 기억이 없다.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온 편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이유는 갈등이 일어날 만큼 내가 가까이 다가가지도, 상대를 가까이 들이지도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인간관계와 주변에 (좋게 말하면) 크게 휘둘리지 않는, 혹은 (나쁘게 말하면) 별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야기’라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마음먹으니 이러한 성향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다.) 이야기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 것인데 애초에 사람이라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이 없으니 공감 가는 이야기가 나올 리 없는 것이다.하여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몇몇 동아리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곁에 있어보려고 한 것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사람을 함부로 좋다, 싫다 판단하지 말자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내 울타리 안에 들여 보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람을 끌어안으려고 하면 나의 정신건강만 해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은 더더욱 중요하다. 지금껏 나는 그 안목이라는 것이, 편견을 예쁘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감히 뭐라고 사람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냐고, 가당치도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 사람이 내게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정도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해가 됨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때 거리를 두려고 도망가는 마음을 억지로 끌어다 앉혔던 것이 후회된다.편견을 갖는 것은 분명 나쁘다. 하지만 아무런 편견도 갖지 않아서 스스로를 온갖 ‘개나 소’들의 놀자판으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나쁘다. 인간관계에서도 최소한의 소신이 필요하다. (물론 그 소신이 학벌, 재력, 외모 등과 같은 인간성 외의 요소들이 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 어떤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기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쾌함을 무시하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썅년이 되어도 좋다는 말이다.하여 난 결심했다. 사람을 가려 사귀기로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역지사지를 못하는 사람은 사귀지 않기로 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귀지 않겠다.
[박민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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