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방인- 무감각에 대한 혐오, 사회가 낳은 폭력

글 입력 2018.09.0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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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방인

무감각에 대한 혐오, 사회가 낳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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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선언을 했다.

사실 잠수를 탈 것이라 선언을 하고 잠수를 탄다는 발상 자체가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이 공연을 보고 나서 정확히 일주일, 고작 7일 간의 시간이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에 적응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기숙사를 정리하고, 그간 만나지 못했던 동기들, 친구들, 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듣고, 학기 중 아르바이트를 찾고, 고학번이라 광탈이 예상됐지만 대외활동도 기웃거려봤다. 하루에 2개씩 약속을 잡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묵혀온 회포를 알차게 풀어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벅찼다.

사실 수업 자체는 정정기간이기도 하고 이전 학기들에 비하면 널널한 편이라 큰 스트레스는 없었는데 물리적인 위치가 멀어지고 통학거리가 늘어나면서 시간에 많이 쫓기게 됐다. 더불어 어떤 형식으로든 '회사'라는 공간을 다니며 규칙적인 루틴을 반복하던 삶에서, 오만가지를 스스로 컨트롤해야하는 대학생의 삶으로 돌아가려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정해진 루틴이 있다면 스케줄 관리가 쉽겠지만, 그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할 일과 약속들이 밀려들어오니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 돌연 결심을 했다. 더 이상 약속을 만들지도, 할 일을 만들지도 말자고. 그저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나를 되돌아보는데 집중하자고.

그리고 지난 토요일, 처음으로 느긋하고 게으른 주말을 맞았다. 알람없이 눈을 떠지는 대로 일어나 본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잠수 선언을 한 뒤 이미 짜여진 스케줄을 끝내자마자,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였다. 그래서 그 날은 정말 침대에 누워, 바닥에 앉아, 책상에서 유튜브를 보며,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감정 동요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무감각의 늪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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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겨울잠을 자고 싶다고 말한다. 그저 커다랗고 어두운, 그렇지만 아늑한 동굴에 들어가서 아무런 생각없이 넘치게 잠을 자고 싶다. 딱 그것뿐이다. 그 행동에 대한 의미도, 의도도, 특별한 동기도 없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특히 인생에서 특정한 시점이 마무리 될 때,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일정을 시작할 때 나는 꼭 이런 '동면기'를 갖는다. 꼭 겨울은 아니지만 나는 이 무감각의 시기를 항상 겨울잠, 혹은 동면기라 부른다. 나이가 들수록 이 동면기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 존재는 나에게 강렬한 영향을 끼친다. 삶을 의미를 맹렬히 좇는 사람일수록 무감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니까.



무감각에 대한 혐오 -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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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뫼르소는 나와 닮아있다. 적어도 이 '무감각'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말이다. 소설에서도  충분히 묘사되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일에 무미건조하다(이 부분이 바로 나와 다른 지점이다. 나에게 무감각은 사회가 주는 압력에서 잠시 벗어나는 휴식의 개념이라면, 뫼르소에게 무감각은 사회에 지쳐 해탈하는 심정으로 도달하게된, 일종의 방어전략이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여자친구에게도 그닥 열정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물 흐르듯 살아가며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휘둘러도 그닥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그는 스스로의 삶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극에서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무감각이다. 생각없이 한 행동들이 모여 범행 동기를 만들고, 그를 범죄자의 심성을 가진 사이코패스로 몰아간다. 물론 그 기저엔 쏟아지는 태양 빛에 홀려 방아쇠를 당긴, 생각없는 살인 행위가 있었지만 말이다. 1부에서 그리 무감각하던 뫼르소는 2부에서 끊임없이 생각에 빠져든다. 죽음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이런 극단적인 변화는 사회에서 그에게 내린 벌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벌은 사실 살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이 벌은 무감각을 혐오하는 사회가 무감각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뫼르소에게 내린 처벌이자, 일종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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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흔히 사람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할 때, 쓰는 명언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극을 보고 나오던 내가 떠올린 저 문구는 평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을 주었다. 죽음 앞에서 갈라진 목소리로 발악하던 뫼르소는 떠올리던 나는 문득, 저 익숙한 말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삶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원동력을 주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런 숭고한 의미를 추구해나갈 필요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이 행복감을 느끼는 행위를 '삶의 의미'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일정한 틀, 그 속에 잘 짜맞춰진 사람만이 의미있는 삶을 사는 이이며, 그 의미있는 삶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한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의문은 아마 뫼르소가 가지고 있던 의문과 똑같을 것이다. 극중에서 그가 말하길 '자신도 한 때는 그런 열정을 가진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를 잠식한 건 무감각이었다. 아마 '의미'를 추구하던 과정에서 얻은 상처와 고통에 지쳐버린 젊은 뫼르소에게 저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의 무감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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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뫼르소를 몰아가는 사회가, 법정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삶'에 집중하던 그의 모든 행동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자신들이 정한 시나리오에 그를 어떻게든 끼워맞추려던 사회의 모든 움직임에 구역질이 났다. 관계없는 어머니의 죽음까지 사건에 끌어들여  그를 추궁하던 검사와 사람들, 뫼르소를 돕는 듯하면서 은연중에 그를 비난하는 변호사, 뫼르소의 평소 행적에 대해 증언하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아니꼬았다. 사실 이 때는 사회 자체가 뫼르소를 그리 무감각하게 만든 주제에, 의미없는 삶을 산다고 그를 몰아세우는 소설의 상황 자체에 많이 화가 났었다. 이 상황 자체가 무감각에 대한 사회의 혐오가 만들어낸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고, 다시 소설을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여전히 지나치게 의미만을 좇는 사회에 의해 감각을 잃어버린 피해자고, 그 무감각한 행동으로 인해 과도한 처벌을 받은 희생자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과연 그가 순수한 피해자인가'하는 의문이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조금 더 사회생활을 하고, 1인칭 시점이 아닌 3자의 입장에서 그를 보아서 그런지 이유가 어쨌든, 과정이 어쨌든 그는 살인자였고, 사회는 그를 처벌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 이 사건이 현실이라면, 나 역시 사회가 엮어내고 전달하는 대로 뫼르소의 무감각했던 사생활과 사건을 엮어 생각했을 것이고 검사의 주장에 동의했을 것이다. 애초에 현실에선 살인자의 내막에 대해 알려고 들지도 않았을 거다. 그냥 얼른 살인자가 사회에서 사라졌으면, 그렇게 바랐을 거다. 결국 지금의 나에게 뫼르소는 마냥 순수한 피해자는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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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결론은 아니지만, 사회와 뫼르소 두 측에 모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건 중용의 미덕이다. 무감각과 의미추구의 사이, 뫼르소와 사회는 모두 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했다.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가치만을 추구하게 훈련시키고, 그 레이스에서 떨어져나간 이들은 '무감각'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이 '낙오자'들을 사회는 단죄한다, 의미없는 삶을 산다는 이름으로 말이다. 뫼르소는 이런 '낙오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무감각하게 살았고 결국 무감각하게 살인까지 저질렀다. 문제는 그가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속세의 모든 가치에서 해탈했다면, 그는 사회를 떠나야했다. 아니면 적어도 스스로 함정에 빠질만한 단서는 만들지 말아야했다. 살인 같은 것 말이다.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죽음으로 추궁을 당할 일도, 교수형을 당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만고 진리의 정답은 적당히다. 사회 역시 가치 추구에 대해서 한 사람의 감각체계를 무너뜨릴 만큼 관여해서는 안 된다. 구성원 역시 사회의 규칙을 깨버릴 만큼 무감각해서도 안된다. 인생을 살수록 정답은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이방인은 그동안의 시간만큼이나 사회에 익숙해져버린, 변화한 나를 만나게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안다. 그저 내가 나이가 들었고, 변했다 그 사실 자체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적당한 무감각도 적당한 의미추구도 존중하기에 뫼르소와 사회.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소설에서 연극으로 - 풍부했던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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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소설 자체를 모티브로 한 만큼 소설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극의 연출에 대해선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소설과는 다른 색다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분위기 묘사를 소설의 문장을 이용한 독백으로 대체한 점이다. 작은 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 때문에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자연의 소리, 강렬한 태양, 바람, 안개, 풀벌레 소리 등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극은 소설을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주인공의 독백으로 넣음으로써 그 풍부한 감정들을 대체한다. 심지어 뫼르소 역의 #전박찬 배우의 목소리는 관객들을 극으로 몰입시키는데 충분한 힘을 가졌기에 이 부분은 나에게 아주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부분이 소설을 미리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같이 공연을 보러간 동생은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봤는데, 이런 부분에서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리 책을 접한 관객의 경우엔 소설을 읽으며 느꼈을 풍부한 감상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장치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약간은 뜬구름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이외에 눈에 띄었던 점은 곳곳에 드러나는 '한국적인 분위기'였다. 극의 배경은 식민지 하 프랑스 령인 알제리다. 강렬한 태양, 바다, 프랑스의 흔적들... 굉장히 이국적인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무대에선 한국 사회의 단면들이 얼핏 얼핏 스쳐지나갔다.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든지, 욕을 실감나게 표현한다던지, 밀크커피를 마신다든지 하는 작은 부분들. 일명 한국 패치가 너무 잘 되어서 가끔씩 프랑스를 떠올리는 단서들이 나올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한국적인 작은 부분들은 작위적이기 보다는 익살스러웠고 크게 극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어 감초처럼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줬다.
 
이외에도 배우의 섬세한 목소리 연기 - 특히 죄수복과 양복을 입었을 때의 묘한 갈라짐의 차이는 뫼르소 심경의 변화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작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는 입체적인 구성, 강렬한 태양을 대신하는 조명, 신격화되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법의 심판, 풀벌레 소리, 극의 분위기 그대로 이어진 커튼콜까지 꽤 많은 부분이 좋았다. 특히 소설로 봤을 때보다 더 풍부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 깊고 그득해지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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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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