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의 공간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문화 공간]

글 입력 2018.08.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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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인 전쟁. 그 전쟁 속에서도 약자는 존재한다. 총과 칼보다 ‘강간’을 두려워하며, 비인간적인 성적 폭력 속에서 오랜 시간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꾹 참고 여성들은 버텨왔다. 그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함부로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시기를 넘어 시간은 흘렀고, 2018년 광복 73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쟁 속에서 침해받는 여성의 인권과 폭력을 기억하고 해결하기 위해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시되는 이 박물관은 전시 내용에 있어서도 박물관 자체의 특성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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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인연


내가 방문한 날의 박물관 주인공은 바로 故‘강덕경’ 할머니셨다. 피해자분들은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박물관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의 테마로 자리 잡는다. 표의 뒷면과 다양한 영상에서 그 날의 피해자분의 모습과 자료, 유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한 날, 마치 ‘인연’처럼 한 분의 피해자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나가면 왠지 모를 유대감과 함께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 또한 전시물을 보면서 ‘강덕경’ 할머니의 말씀과 유품들은 더욱 가슴 깊이 와 닿았다. 특히, 그림에 소질이 많으셨던 할머님의 작품들을 보면서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관람의 시작에 앞서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주는 박물관의 운영방식은 관람객과 피해자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첫걸음이 된다.



전시물과 관람순서


입구에서 출구까지 단조로운 흐름이었던 여타 전시와는 달랐다. 관람순서는 지하 1층에서 2층, 다시 1층의 순서이다. 동선의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실내에서 야외로, 다시 실내로 공간이동 또한 다양하다. 같은 층이라도 전시는 여러 공간으로 분화되어 진행된다. 이러한 동선과 공간의 다양화는 관람객들이 전시를 수동적으로 본다는 느낌보다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이어주는 문과 계단도 전시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시의 시작은 무겁고 큰 철문을 여는 것 그 자체부터이다. 철문은 첫 번째 전시물로 이 철문을 나서면 돌밭이 펼쳐진다. 포성과 군화 소리를 들으며 돌밭을 걸으면, 마치 일제강점기 시대로 돌아간 듯 착각을 불러일으켜 희생자들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포스트.jpg
 

계단의 양옆 벽에 전시된 작가들의 그림은 당시 일본군에 끌려가는 피해자들의 두려움과 아픔, 상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빼앗긴 순정’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아직 기억에 남는다. 나무로 표현된 일본군 옆에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면 나도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호소의 벽’이라는 주제로 피해자 할머님들의 고통의 목소리가 쓰여 있다. 특히 ‘내 청춘을 돌려다오, 내가 바로 증거인데 왜 증거가 없다고 하는가.’와 같은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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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은 사실 전시공간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이동 경로 또한 하나의 전시 장소로 만들면서 공간을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술적 자료뿐만 아니라 일제의 탄압과 폭력을 상징하는 ‘철문’을 하나의 전시물로서 기능하게 배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교육의 장


2층의 전시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적인 기능을 한다. <역사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용어의 해설과 설립목적, 주체, 운영방식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다양한 그림 자료와 표, 그래픽 지도들은 복잡하고 많은 내용을 최대한 간결하고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위안소의 운영방식을 상세히 살펴보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우발적인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닌 국가에 의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진 ‘기관’이었다. 군인마다 정해진 이용시간이 다르고 성병에 대한 검사도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다.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운영된 ‘위안부’는 일본 정부 소유의 ‘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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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관2>는 광복 70년을 맞이하여 2015년에 개관한 전시실이다. 해방 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을 우리나라 정치적 사건의 흐름에 따라 연표로 정리하여 전시했다. 광복을 맞이했지만,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해방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자궁이 굳고, 남자에 대한 불안증이 생기고, 자식에게까지 병이 유전되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빠져 살아왔다. 고향은 일본군 ‘위안부’ 시절이 생각나서 방문할 수조차 없었다. 세월호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끝이 난 2017년 연표에서도 아직 피해자들의 진정한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대적 순서에 따라 배치된 피해자들의 일생을 한눈에 들여다보니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면서도 그 아픔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박물관을 방문한 날은 중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온 날이었다. 주로 학생들이 많은 관람객이었는데 이따금 어르신 분들도 진지한 눈빛으로 관람하시는 것을 보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교육은 학교 역사 시간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부분은 단편적일 뿐이다. 심지어 교육 과정상 역사를 배우지 않는 학생들도 많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할 수 있는 창은 적어진다. 박물관의 교육 기능을 통해 많은 국민적 관심이 고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항


이 전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의 다양한 저항들을 보여주고 있다.

2층에 있는 <운동 사관> 전시관에서는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를 소개한다. 사실인정, 공식사죄, 법적 배상과 처벌, 교과서에 기록 등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영상물로 전시되어 그 생생한 현장의 역동적이고 강인한 외침에 감동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 밖에도 생존자를 위한 후손들의 지원 활동, 국제 활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저항 운동을 소개하여 history를 ‘her story’로 바꿔나가는 당찬 포부를 드러낸다. 박물관은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억을 넘어 기억하는 행위까지 담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 사관> 전시실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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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사관 전시실에는 이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가된 ‘평화비’가 있다. 다소 힘들어 보이는 소녀이지만, 눈에서만큼은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생존자와 희생자들을 이어주는 새를 어깨에 올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상의 옆자리는 언제나 이 역사를 잊지 않고 책임져 나가야 할 우리들의 자리이다.



우리는 또한 가해자이다


이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1층에 있는 <기획전시관 2> 전시관이다. 광복 70년 특별전으로 개설된 이 전시관은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담고 있다. 전시관의 규모는 작았지만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이라는 이름과 목적에 맞게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지 않고 전시함으로써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은 ‘여성’의 인권을 어우르는 멋진 전시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베트남 여성 380여 명은 TV에서 한국어가 나오기만 해도 아직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한국군 증오비를 건립하며 우리 정부에 응당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베트남 여성들을 향해 월남전 용사들을 모욕하지 말라며 진상규명과 사죄를 회피하고 있다. 사실 부끄러운 역사를 아직 ‘부끄러움’으로 인식하는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어둡고 창피한 역사인 ‘블랙 헤리티지’를 통해 가해자로서 우리를 돌아보는 이 전시가, 베트남 여성들에게 사과를 전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블랙 헤리티지는 적극적으로 공개되고 마주할 때 의미가 있다. 이 또한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Opinion


여성의 인권을 다루는 이 박물관은 설립부터 쉽지 않았다. 원래 박물관은 독립공원에 개관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독립유공자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좌절되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이 폄하되고 순국열사에 대한 존경심이 낮아질 것이라며 박물관의 설립을 강하게 반대했다. 전쟁 속의 여성 피해자들은 많은 독립지사와 자리를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남성’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만연하지를 엿볼 수 있다. 즉, 오랜 시간 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은 우리 ‘민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 하나 만들어지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이 박물관은 결국 마포구 성산동으로 위치를 옮겨 개관할 수 있었다.
 
박물관의 전시 내용을 떠나서 한국에서 여성의 인권을 다루는 박물관의 건립과 존립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권박물관은 인권교육을 통해 국민의 인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권’의 범주에 여성이 속하고, 특히 문화적 제도로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전쟁 속에서 여성이 성적 도구로 전락하고 폭력을 당한 사례는 어마어마하게 많고, 젠더폭력은 2018년인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문화적 제도가 많은 국민의 합의 속에서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박물관이 그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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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학순 할머님의 용기를 시작으로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할머님들의 아픔을, 모든 것을 고백한 용기를 잊지 않아야 한다. 허울뿐인 배상금도, 합의도 절대 그 해답 안이 될 수 없다. 일본은 사과하고 책임져야 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관심 갖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인권박물관이자 추모 공간으로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 건립된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더는 여성이 소외되고 배제되지 않도록 기억과 추모의 공간에 많은 발걸음이 남기를.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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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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