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Episode 3-2. 눈물

천천히 나를 침식시키려는 노력과 나를 건져내려는 노력을 겹쳐 간다.
글 입력 2018.07.0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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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를 침식시키려는 노력과
나를 건져내려는 노력을 겹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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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angle}
Episode 3-2. 눈물



[4월 25일]

오늘은 기분이 좋다. 푹 자서 그런가. 오늘 시험이 있었지만 몸이 많이 망가지고 있어서 과거에 공부하던 나를 믿고 10시간을 푹 자버렸다. 눈 뜨니까 비 오고 바람 불던 하늘은 어디가고 햇빛과 파란 하늘만 가득했다. 다시 찾아온 햇빛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한가로이 흰 벽을 배회하는 그 순간의 온도가 너무 좋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말이다.

4월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4월 동안의 항해가 거의 끝나간다. 그러니까 정말 폭풍 같았던 나의 우울함과의 대화 말이다. 지금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이 그 항해의 일부를 투영하고 있다. 눈물의 존재, 그리고 사실 그것이 너무 소중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리고 있는 이 그림.

지금의 나는 배에서 내리며 우울함과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그 아픔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림에 담긴,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그 끈을 파고들고 있는 꽃의 가시를 보며, 아프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풀어내려 했던 눈물이 가지던 힘을.

선명해 지기 전, 더 어루만질 곳을 찾아본다. 가장 중요한 끈과 꽃의 줄기를 더 다듬어 보기로 했다.
기분이 좋지만 계속 떠오르는 기분을 잠시 딱 멈춰본다. 잠시 여기서 머물자.


*


줄기를 더 선명하게 칠하고, 물을 더 많이 흘렸다.
아마 펜으로 그릴 때 더 본격적으로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많이 손대지 않았다.
아 그리고 가시도 그렸다. 뾰족하고 날카롭게, 몇 개는 처음부터 마음잡은 대로 끈에 찔러놓았다. 괜히 따끔거림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 끈은 뭘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묶고 있는 건 확실한데,

라고 생각을 하자마자 샤프를 놓고 고개를 들었다. 잠시 한숨을 쉰다.
어젯밤 나를 진단했다. 아프기 시작하면 무조건 멈추라고.

끈. 사실 처음부터 끈이라는 표현도 단지 처음 떠오른 표현 그대로를 말한 것이었다.
뭔가를 계속 해야 한다는 부담? 죄책감? 계속 생각나는 고민들? 떠오른 대로 나열해 보지만 딱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신이 드는 건 이 끈은 이 많은 것들이 꼬여져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손수 내가 꼬고 내가 묶었다. 숨 쉬듯이 내가 이러고 있는 줄도 오랜 시간 나는 모르고 있던 것이고. 이 끈을 손에서 놓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보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모습을 발견하면, 끈을 또 다시 꼬아 만들고 있는 나의 손을 잡아 줄 수 있겠지. 그 때는 좀 더 나를 빠르게 안아줘야지.



[ 4월 26일 ]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거기에 더운 날씨라니. 레몬에이드를 입에 꽂으며 힘을 내보았다.
여름에는 아인슈페너 자리를 레몬에이드가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좋았다.

이 글과 그림을 이어가기 위해 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 그래도 고맙다, 이렇게 힘내서 글로 남기고 있는 내가. 나를 울리는 글을 내가 쓰고 있다. 긴 시간이 흘러 내가 이 글과 그림을 다시 마주 할 때도 여전히 너는 마음 한구석이 울리고 있을까.

샤프를 미뤄두고 펜을 들기로 했다. 선명해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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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그리는 건 내 그림에서 제일 중요한 작업이다. 
그림의 방향을 결정짓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을 면으로 인식하며 그리려 한다. 공간을 구분하는 면. 펜촉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며 번지는 정도도 조절해야 한다. 숨마저 죽여야 하는, 그림 그리는 시간 중에 제일 조용하고 치열한 시간이다.

중요한 부분이 많이 얽힌 부분이라 손을 어디부터 댈지 고민하다가 가운데에 있는 꽃부터 선을 긋기로 한다. 더 풍성했음 하는 마음에 꽃잎 세 장 정도 더, 소심하게 더해주었다. 줄기를 그리고 나서 나를 묶고 있는 끈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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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를 침식시키려는 노력과
나를 건져내려는 노력을 겹쳐 간다.
 
쓰던 펜을 놓고 더 얇은 펜으로 가시를 그린다. 찔린 곳에 자국을 새긴다. 허공을 향한 가시가 생각보다 더 크고 날카롭게 그려졌다. 그림에 보이지 않는 뒤편의 줄기에는 얼마나 더 크고 많은 가시가 있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눈물이 내게 얼마나 큰 흔적을 새기고 있는지 지금의 나조차도 가늠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움'과 '현실같지않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그어나간다. 현실이 아닌 공간에 애매한 자연스러움을 담는 극과 극의 관계가 아닌, 나만 아는 그 수식어 사이를 잉크로 밟아나간다. 그런 시간이 이어진다.

선 그리기를 마무리한다. 지우개를 들기 전에 잉크가 마르기를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오늘 하루 종일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해 안달이 난 질문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 4월 29일 ]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말에는 도무지 펜이 안 잡혀서 그림을 안 그리는데 오늘은 펼쳐 보기로 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두기에는 오늘은 마음이 조금 그랬다.

무엇인가를 오래 두고 그린다는 것. 나는 이것의 이유가 나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펜으로 지우지 못하는 순간을 건너는 그 때부터는 잦은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이곳에 긋는 선이, 이곳에 채우는 검은색이 혹시 나중에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망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아직은 그런 두려움이 남아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야 완성된 그림을 만날 수 있기에 매일 이겨내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섣불리 두려움을 판단하기 싫다. 조금 더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힘을 내고 두려움을 이겨 내어 도달해 왔다. 항상.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에 조금 선을 입히고 펜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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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밤을 조금 담기로 한다. 왼쪽에 크게 오른쪽에 작게. 과하면 안 된다.

어느 순간부터 그리고 있는 동그란 검은 원을 나는 밤이라고 부른다. 까맣게 차오르면 차분해지는 이 편한 느낌이 밤과 닮아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림을 그리다 방황하는 순간이 오면 동그란 밤을 하나씩 채우고 있었다. 왠지 그러면 방황으로 흔들리던 화면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서.

오늘은 많이 멍하다. 밤을 채우고 다음에 그리기로 한다.



[ 4월 30일 ]

두려움. 그리고 설득.

두려움의 크기와 나를 설득하는 목소리의 크기는 비례한다. 그게 지금의 모습이다. 오늘도 스쳐가는 바람처럼 이따금씩 숨구멍에 들어오는 두려움을 천천히 밀어내려는 설득의 목소리를 꺼낸다.

이 그림을 잡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완성하기로 했다. 오늘. 눈물, 위로, 아픈 대화, 머물지 않고 마구 흘러가는 그림 밖의 나, 많은 변화를 담아 버린 그림이 되었다. 그림 밖의 나는 이겨 냈다. 죽이는 대신 나를 건져내고 있었다. 괜찮다고, 조금 더 말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밀어내는 설득의 목소리를 읊는 법을, 그 시간을 조금씩 품고 있었다. 나는 또 언제 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달리 아픔을 이겨낼 거라 믿어본다.

다시 펜을 잡는다. 사실 끝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 됐음은 내가 이 그림에 토하고 싶은 것을 이미 다 풀어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다. 내 마음에 손을 기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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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달을 띄웠다. 가장 고요한 빛이 있었음 했다. 너무 밝지 않아도 좋으니까. 빛나려고 힘내지 않아도 되니까. 별 인지, 물방울인지, 허공의 먼지인지 낮게 조금씩 흩뿌린다.

제목은...제목은...

망설여졌다. 내가 너를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데 너의 시작인 눈물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늘 한 단어를 말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너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늘 걱정이다. 하지만 너와 함께한 이 글이 조금 더 이유가 되고 너의 목소리가 된다면 너의 그대로인 눈물이라고 부르고 싶어. 그리고 그게 맞는 것 같아.

아프고 따갑고 뜨겁고 차분한 그 조심스런 손길을 잠시 놓아본다. 네가 준 위로로 다시 한 번 혼자 서본다.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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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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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여전히 너는 울어도 괜찮은 존재다
앞으로도 그런 존재고,
사실 그 때의 너도 울어도 괜찮은 존재였다.

혹시
네가 이미 없는 이유를 따지며
또 다시 그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 때처럼 내가 가장 먼저 네게 나타나겠다.
나는 네가 나를 부정 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고 싶은 위로라는
모순적인 이유를 가지고서라도
너의 시선을 투명하게 흐리고서라도
꽃을 피워내겠다.

그 때 비로소 네가 나를 발견하고
언어로 피워 냈던 그 곁에서 하나 더 피워 내겠다.




*

next.

To Do List

안아 주기
입에 가득 찬 꽃들을 상상해 보기
혀에 닿는 보드라운 꽃잎 느껴 보기
현실에서 그것의 느낌을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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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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