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머핀을 먹을까? '미스터 노바디' [영화]

글 입력 2018.06.0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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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이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라는 가벼운 선택부터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라는 무거운 선택까지, 삶에는 너무나 많은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 개의 보기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한다. 한번 선택을 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선택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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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노바디 (2009)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서 선택이 어려운 거예요.
올바른 선택을 해야하죠.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가능성으로 남죠."


영화 속 니모 노바디는 더 이상 노화로 사람이 죽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는 이제 118세를 맞은 마지막 자연노화 사망 예정자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에게 노바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의 삶은 하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겪을 수 있는 삶의 모든 경우를 겪었다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어떤 사람과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니모의 인생, 그리고 다시 안나, 엘리스, 진, 세 사람 중 누군가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인생. 그는 그 모든 것을 경험해봤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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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택은 어려운 걸까? - '선택이 주는 무게'

어떤 선택을 앞두고 우왕좌왕 결정하기 못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결정 장애'라는 말을 쓴다. 단지 그 사람이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결정을 못 내리는 걸까? 한 가지를 선택하면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것들을 누릴 수 없다. 블루베리 머핀을 먹기로 결정했다면, 치즈 머핀은 먹을 수 없다. 같은 돈, 같은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하나다. 블루베리 맛을 먹으면 놓친 치즈 맛이 아쉽고, 치즈 맛을 먹으면 놓친 블루베리 맛이 아쉽다. 니모의 삶도 그렇고, 우리의 삶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이 어렵다.

하나를 선택하면 선택하지 못해서 내가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그 선택은 되돌리기 어렵고,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선택지 중에 무엇이 가장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선택한 뒤 그 결과를 직접 느끼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선택인 점신 메뉴를 결정하는데도 주저주저하게 된다. 점심 메뉴가 아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이라면 이야기는 더 심각해진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태어나고 죽기까지 그 사이에 우리 인생의 모습을 결정하는 건 우리의 선택이다. 무엇을 택하고, 그래서 무엇을 버렸는지. 내가 지나온 길은 모두 나의 선택이 만든 결과물이다. 내가 선택했다는 이유로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달라붙는다. 매번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선택이 주는 막중한 부담 때문에 '결정 장애'처럼 우리는 선택을 미루게 된다. 영화 속 니모의 말처럼 차라리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고 놔두면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는다.


"지금 말씀하신 삶 중에 어떤 게 진짜죠?"
"이 모든 삶들이 다 진짜야.
모든 길이 다 올바른 길이지."



잘못된 선택은 없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양 갈래 길에서 언제나 가보지 않은 길이 더 좋지 않았을까 떠올린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은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을 것이라 상상하게 된다. 니모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단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더 좋은 선택은 없다. 그저 그 선택이 서로 '다른 것' 뿐이다. 엄마를 선택해도, 아빠를 선택해도, 그 선택의 장점과 단점은 반드시 존재한다.

양쪽으로 난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 걸어간다. 처음에는 그 길에 펼쳐진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걷지만, 금세 다리가 아파지고 앉을 벤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가지 않은 반대쪽 길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지 않을까, 그 길로 가는 게 옳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꾸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가지 않은 길을 하염없이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 더는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핀 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지금 자신이 선택한 길에는 그 길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다른 길에도 그 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최고의 선택, 올바른 선택은 하나가 아니다. 모든 선택이 옳은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틀린 것은 없다. 어떤 길을 걸어도 내가 선택한 그 길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니모는 아빠를 선택한 뒤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한다. 엄마와 이혼한 뒤 나날이 무기력해지는 아버지를 보살피기 벅차다. 하지만 아빠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는 엘리스를 만날 수 있었다. 니모가 엄마를 선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관심한 엄마와의 불행한 생활이었지만 엄마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는 안나를 만날 수 있었다. 실패했다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 선택이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처럼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잘못된 선택은 그 어느 것도 없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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