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열녀 춘향은 가라, 연극 '춘향'

열녀의 이미지를 벗어난 춘향 이야기
글 입력 2018.04.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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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열녀 춘향은 가라
연극 '춘향'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의 내용은 어떨까?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과, 월매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사랑에 빠진다. 임기를 마친 남원 부사는 서울로 돌아가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몽룡이 떠난 후 마을에는 신관 사또 변학도가 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 것을 강요하고 이를 거절한 춘향이 옥에 갇힌다. 그러던 중 이몽룡은 장원급제하여 어사가 되었고 어사 출두하여 춘향을 구하고 행복하게 산다.

춘향전 줄거리 요약


위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다. 그런데 여기, 춘향전과는 조금 다른 멜랑꼴리 버라이어티 연극 ‘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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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춘향'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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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공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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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춘향전의 스토리를 어떻게 멜랑꼴리 버라이어티로 바꾸었을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예술 공간 서울을 방문했다. 처음 강렬한 춘향의 등장의 매력을 느낀 것도 잠시, 기존에 알고 있던 등장인물들이 아님에 당황하고 말았다.

춘향이라는 여인이 뿜는 눈빛은 춘향전의 춘향처럼 처연했지만, 열녀에 버금가는 열정은 없었다. 뭔가 텅 비어버린 그녀의 눈빛에 적응할 때쯤 몽룡이 나타났다. 몽룡은 또 어떠한가, 바보온달에 버금가는 어벙함과 마마보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자기주장이 약하다. 말을 타고 암행어사로 등장하는 멋진 몽룡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저 사람이 몽룡이라고?’ 하는 물음을 떠올릴 만큼 어색했다. 그저 나쁜 놈으로 여겨지던 변학도 또한, 연극 춘향에서는 능글맞고 능숙한 척하지만 사랑에 서툰 남성일 뿐이다.

‘춘향’은 모든 관람객을 의문에 빠지게 할 정도로 모든 인물을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또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연극을 보다 보면 현실적인 인물에서부터 느껴지는 동질감과 나도 모르는 동정심이 마음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어딘가 부족하고 특별하거나 멋지지도 않은 인물들이 모여 시너지를 만들고,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우리의 머리를 때린다.

이렇게 인물 그 자체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한 데에는 연출도 큰 몫을 한다.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연주자와 최소한의 악기, 그리고 무대 연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심하고 부족했냐고 물으면 오히려 그게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춘향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무엇일까? 바로 그네를 타는 장면이다. 춘향에서는 그 장면을 춘향 무리가 몸을 양쪽으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해냈다. 단순한 몸짓이지만 이해하기 쉽고, 부족하기보다는 연극에 집중하기 편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크고 웅장한 연주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멜로디를 제공하고, 인물들이 여기에 또렷한 목소리를 더함으로써 창을 하는 듯 한국적이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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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장면 1, 향단과 월매를 포함한 춘향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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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의 장면 2, 변사또와 춘향


연극은 독특한 인물, 스토리와 연출을 통해 필자로 하여금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계속 언급했던 ‘인물’에 있다. 왜 떼아르떼 봄날은 무심하고 시크한 춘향을, 맹탕한 몽룡을 그리고 받는 사랑에는 익숙지 못한 변학도를 내세웠을까?

텅 비어버린 춘향의 눈에서, 그런 춘향을 완벽히 사로잡지 못하는 몽룡의 행동에서, 춘향에게 자신을 미워해달라고 종용하는 변학도의 마음에서 조선 시대 이야기인 춘향은 2018년의 우리네 삶을 완벽히 투영한다. 그 때문에, 연극이 끝난 후엔 그런 인물들을 한번 더 자세히 분석하며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길게 설명했지만 사실 춘향의 눈빛 하나 만으로도 이 연극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눈을 마주치기엔 뭔가 죄스럽지만 그렇다고 시선을 뗄 수도 없는. 아쉽게도 연극은 일주일이 조금 넘게 공연되고 끝났지만 잊히지 않는 춘향의 눈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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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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