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한 입] 오늘을 보낸 당신에게, ‘심야식당’

맛으로 엮어가는 늦은 밤, 우리 이야기
글 입력 2018.02.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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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름 한 입
<심야식당>



야심한 시각, 잠은 오지 않고 슬슬 배가 고파진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잠에 들어보려 허기를 무시한다. 하지만 그런 밤이 있다. 배만 고픈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허한 밤. 그냥 잠들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이런 내 마음이 너무나 무력한 밤. 정성스러운 야식을 먹고 잠이 들어야 든든할 것 같은 밤. 아마 오늘도 그런 밤 중 하나가 찾아온 듯하다.

생각해보면 그런 밤도 자주 있었지, 어쩔 수 없이 밤이라는 시간을 온전하게 보내야하는 밤. 온통 어지러운 방 안에 잠과 일과 씨름하던 밤. 세상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한탄으로 천장을 바라봐야 하던 밤. 모두가 하루를 완성하고 잠이 드는데, 나 혼자서 미완성의 하루를 붙잡고 있는 밤. 그런 밤이라면 더더욱 정성스러운 야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럴 때 생각나는 여러 편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심야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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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삶의 희망과 절망을 다룬 옴니버스물이다. 매 회마다 새로운 요리와 메뉴를 바탕으로 손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기를 끌면서 영화로도 1,2편이 나왔는데, 드라마와 형식 차이는 없다. <심야식당>은 유명세를 타고 한국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TV와 스크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인기를 끈 이 <심야식당>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걸까. <심야식당> 속 ‘심야식당’은 도쿄의 번화가 뒷골목에 있는, 밤에 문을 여는 밥집이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메뉴는 주인장이 가능한 요리 모두. 손님들은 주인장을 ‘마스터’라고 부른다. 마스터는 늦은 밤, 굶주리는 손님들의 허기는 물론 지친 삶 속 마음을 달래줄 음식을 판다. 손님이 영 없을 것 같지만, 마스터의 대사를 빌리자면 “제법 많다”. 단골손님부터 처음 오는 손님들, 지나가는 방랑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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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저물고 모두들 귀가할 무렵
내 하루가 시작된다.”

-마스터-


심야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혹은 늦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도시 모두가 잠에 들었을 때,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모두의 삶이 그렇듯 손님들의 삶은 기구하고, 매일의 심정은 복잡하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하루를 풀어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마스터의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는 것. 마스터는 재료만 있다면, 그리고 본인이 할 수만 있다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은 뭐든 해준다. 엉켜있던 하루의 실들이 이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녹아내린다. 가끔 약간의 술을 곁들여주기도 한다. 물론 그 음식과 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잠시의 행복, 그리고 옛 추억의 회상, 허기의 사라짐 정도는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잠시를 위해 어김없이 이 심야식당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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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 늦은 밤, 정성스러운 음식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대화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 식당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스터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속속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하루의 짐을, 마스터는 묵묵히 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스터뿐만이 아니다. 매일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심야식당의 수많은 귀가 되어준다. 요리는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해주었고, 또 누구와 함께 있었고, 그 것이 본인에게 어느 시기냐는 것이다. 원하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정성스럽게 해주는 마스터와,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꽉 찬 도시 가운데 마음만은 텅 빈 것만 같은 밤. 맛이 없어도 가장 맛있는 야식일 수밖에 없다. 심야식당의 요리는 이런 의미에서 커다란 가치를 가진다.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타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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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도 심야식당도 없는 좁은 자취방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정성스러운 야식을 선물한다. 훌륭한 맛은 아닐지라도, 무기력한 내 마음을 달랠 정도면 되었다. 어쩌면 훌륭한 맛이 아니라서 더 소중한 야식인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약간은 심심하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다면 <심야식당>을 만나본다. 그저 들어주는 이야기, 늦은 밤이더라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 이 영화는 이런 이유로 나름 소중하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이 밤이 외롭지 않게 맛으로 촘촘히 엮어준다.

참, 이 영화는 식욕이 당겨지는 영화는 아니다. 안심하고 늦은 밤에 틀어도 괜찮다. 하지만 솟아나는 야식 욕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배가 부르든, 그렇지 않든, 마음이 고프다면 정성스러운 음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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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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