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겨울궁전의 겨울 바람을 타고 온 감성, 예르미타시 박물관

글 입력 2018.01.30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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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겨울궁전의 겨울 바람을 타고 온 감성
예르미타시 박물관


 다양한 시대의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즐거운 점인 것 같다. 전시회는 시대 배경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조성했다. 우아한 하늘색, 영광스러운 노란색은 각 섹션을 나누는 기준점이자 시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큐레이터의 즐거운 시도가 되었다. 그림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가 되어있는 점도 재밌었다. 귀족들의 초상화 옆에는 긴 거울이 있어 10년후를 상상해보는 것이나, 단순히 전시하지 않고 작품에 들어가 보는 등 전시는 매우 친근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과 음악을 정렬한 방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전시회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않았는데, 전시관의 중간에서 책과 음악을 갑자기 만나자마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돋보였다.

 여러 화풍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흥미가 동할 수 밖에 없는 전시회였다. 관람객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이 없어도, 다양한 화풍을 구경하고 꽤 쉽게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전시관 자체가 흥미를 끌어당기는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도 많아 그림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의 동행자도 제법 즐겁게 관람했다. 이 날 전시장에는 유난히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많이 보였다. 전시의 구성이 잘 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지루하지 않게 미술을 소개할만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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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부셰, <다리 건너기>, 캔버스에 유채
1730년대 말,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The State Hermitage Museum, Saint-Petersburg, 2017


 개인적으로 로코코 양식을 좋아하는지라, 로코코 양식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로코코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로코코는 유희와 쾌락 추구에 몰두했던 루이 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과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동시에 부드럽게 내면적인 사교계 예술이다. 이들은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을 추구했다. 로코코 양식의 그림에는 거대한 주제보다 어떤 유쾌함과 사랑스러움이 묻어있다. 그 중 <다리 건너기>는 전원적인 장면을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얼굴이 빨간 처녀가 바구니를 안고 다소곳하게 말에 앉아 있는 모습은 다양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작품을 보면, 부드러운 색감이 캔퍼스에 녹듯이 발라져 있어 우리의 눈을 행복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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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 <죽은 말이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1730년대 말,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The State Hermitage Museum, Saint-Petersburg, 2017


 로코코 시대가 귀족가에 걸려진 우아하고 환상적인 느낌이라면, 혁명과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은 매우 실험적이다.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로코코 시대의 그림과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쿠르베라는 이름은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만 하다. 그가 바로 <세상의 기원>을 그린 작가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기를 크게 확대해 그린 <세상의 기원>은 쿠르베의 사실주의와 혁명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쿠르베를 그런 이미지로 기억하기 때문에, 전시관을 쏘다니다 발견한 <죽은 말이 있는 풍경>은 현실에 여러 무게추를 단 모습으로 다가왔다. 죽은 말이 중간에 배치된 <죽은 말이 있는 풍경>은 고독하다 못해 죽음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실제 작품을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눅눅한 초록색이 주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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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1886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The State Hermitage Museum, Saint-Petersburg, 2017


 마지막 세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연 모네의 그림이었다. '지베르니'라는 이름에서 오는 향수는, 프랑스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모네의 그림은 모네가 키우는 꽃들을 상상하게 한다. 바람에 고개를 흔드는 꽃들을 바라보는 모네의 모습은 쉽게 그려진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색과 빛으로 이루어진 꽃잎들이 차곡차곡 모여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인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 건초가 있을 뿐인데, 그림 전체에 향긋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모네이기 때문이다. 유독 나가려는 발목을 잡아 당긴 그림이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는다.
 
*

 러시아의 '겨울궁전'이라기에, 러시아의 추위를 떠올릴줄 알았는데 따뜻한 남부 프랑스의 바람을 잔뜩 느끼고 온 느낌이다. 사실 이번 전시회를 다녀오기 전에, 겨울궁전은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2월혁명의 임시 정부나 볼셰비키 혁명의 발단이었다. 퍽퍽한 정치사회적 맥락이 겨울 궁전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상상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런 편견을 조금 버릴 수 있게된 것 같다. 추운 겨울에 편안하고 즐거운 전시회를 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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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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