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로 혼밥러의 공감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기타]

글 입력 2018.01.0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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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혼밥’을 좋아한다. 이렇게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한 뒤였다. 처음에는 원해서 혼자 먹은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학창시절처럼 친구들과 모여 앉아 떠들며 먹으려고 점심시간에는 밥친구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날 어쩌다 보니 혼자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너무나 편하고 자유로운 것 아닌가! 혼밥러는 알 수 있는, 혼밥만이 주는 그 편안함이 있다.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껏 선택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려 줄 필요도, 다른 이에게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먹을 필요도 없다.

 혼밥의 시간에는 오롯이 나 자신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내 손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친구가 언제나 들려있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가끔은 친구들과의 수다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난 평소에는 제일 목소리 크고 시끄러우면서도 밥 먹을 때는 어차피 말수가 굉장히 적어진다. 거기에 눈으로 읽을 것만 있으면 쉽게 지루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프로 혼밥러’가 될 자질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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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최근 나를 훌쩍 뛰어넘는, 진정한 ‘혼밥력 만렙’인 드라마 주인공을 만났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이다. 그는 잡화 영업을 하는 직업 덕분에 일본 구석 구석을 돌아 다니며 열심히 혼자 밥을 먹고 다닌다. 드라마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방금 적은 게 거의 전부이다. 드라마는 고로의 일상에 끼어드는 몇몇 인물들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의 ‘먹방’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는 식사를 하는 동안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한다. 그렇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나는 아직 하수였던 것이다.

 음식과의 만남에 100% 몰입하는 고로야 말로 혼밥의 고수가 아니겠는가.

 그는 ‘혼밥’을 하며 쓸쓸해하지도, 씁쓸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경탄할 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음식들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 아마 고로만큼 흰 쌀밥을 맛있게 먹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밥공기를 들고 쉴 새 없이 입 안으로 밥알들을 밀어 넣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도 밥의 고소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요즘 영 입맛이 없는 분들은 이 드라마를 꼭 보시길. 저 멀리 집 나갔던 입맛도 순식간에 돌아오게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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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고독한 미식가’는 30분도 안 되는 짧은 길이에 내용이라고는 중년 남성이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담은 것뿐인데 어떻게 인기를 얻어 시즌6까지 제작된 것일까? 고로가 워낙 복스럽게 먹어서 그가 먹는 것만 보아도 흐뭇해지고 생소한 일본 음식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인 것도 그 이유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아마 혼밥을 통해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느끼는 그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시청자들은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혼자일지라도 어디서든 당당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줄 알고 음식 한 접시에도 만족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그를, 그와 같은 삶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내가 그렇다. 혼자서도 충만하고 싶고 어디서든 자유롭고 싶고 다른 이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망에 집중하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이렇게 된 이상, 고로를 나의 롤모델로 삼아야 되려나 보다.


[차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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