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찬 바람에도 사랑의 온기를 잃지 않기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로맨틱 크리스마스》 [공연]

한 곡 한 곡, 애정을 꾹꾹 눌러담은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선물.
글 입력 2017.12.31 19: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임지영 로맨틱크리스마스_최종.jpg
 

  12월 22일, 차디찬 거리에 캐롤이 울려퍼지며 어렴풋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연말 시즌의 한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무엇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티엘아이 아트센터로 향했다. 티엘아이 아트센터의 콘서트홀은 단촐한 무대, 작은 객석 공간, 클래식 음악에 최적화된 설계로 구성되어있었다. 객석 어디서나 음악회의 전부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기에 전석을 R석으로 구분한다. 이곳에서 만나는 공연은 설레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를 거머쥐며 앞으로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의 연주를 한 음 한 음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IMG_1931.JPG
 

  건반 모양의 의자가 있는 로비를 지나 콘서트홀 안으로 향했다. 오밀조밀 작은 공간인지라 과연 전 객석에서 연주자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앞에서 두 번째 사이드, 단 두 자리만이 붙어있는 객석에서 동행인과 나란히 앉았다. 곧 임지영이 무대로 올라왔고, 그녀가 바이올린을 조율하며 비로소 악기와 하나가 되기를 찬찬히 기다렸다. 채 준비가 다 되지 않았는데,  드보르작의 「4개의 로맨틱 소품」이 시작되었다. 귀에 익고 밝은 멜로디로 순식간에 공연 안으로 빨려들게 하였고, 앳된 얼굴의 그녀와 곡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조금 단편적이라는듯, 임지영은 신비로우면서도 열정적인 2악장, 부드럽고 이완된 선율을 자랑하는 그 다음 악장들도 완벽히 소화해내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전 악장에 걸쳐 펼쳐져있는 첫 곡의 연주를 들으며, 그녀가 나보다 채 몇개월도 빠르지 않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그만큼 임지영은 깊고 농축된 감성의 음악을 표현하였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음원으로 들을 때에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느꼈었는데, 무대를 통해 직접 접한다면 어떤 감각으로 다가올까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궁금했던 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지영은 한 층 더 바뀐 눈빛으로 연주를 시작하였다. 바이올린과 함께 호흡하는 걸 넘어서 그녀 자신이 악기가 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인터뷰를 접하고 콘서트에 오기 전까지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연주를 들려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연주 스타일은 비장미 넘치는 곡과 참 닮아있었다. 뛰어난 기교를 요하는 곡인데도 너무 비련하게, 또는 너무 격정적이게 연주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절제된 데서 나오는 가엾고도 덤덤한 비장함을 극대화시킨다.
   
  「바스크 기상곡」 역시 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곡이다. 귀를 홀리는 더블스탑,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처절히 반복되는 속주, 그리고 기타줄 튕기듯 현을 다루는 피치카토까지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기교를 최대한으로 보여주는 곡이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이를 완벽히 소화해내며 또 한번 경이로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1부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설마 내가 깜빡 졸았나, 할 정도로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지영 프로필3.jpg
 

  2부는 단 두 곡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차이코스프스키의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선율이라고 알려져있는 비탈리의 「샤콘느」. 앞서 뛰어난 기교가 돋보이는 두 곡으로 관객들을 압도해버렸으면서, 2부에서는 슬픔을 앞세운 두 곡을 또 다른 스타일로 연주해낸다. 매끄러이 곡선을 그리듯 떨어지는 멜로디와 그녀의 모션, 애수를 표현한 듯 트레몰로가 아닌 곳에서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그리고 절제된 비통함. 비탈리의 「샤콘느」가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유는 담담하게 그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지영의 연주는 이 곡에서 가장 돋보였다. 유려하고도 슬픈 주제부는 그 자체로 격정적이어서, 그녀의 깊은 터치는 좀 더 고차원적인 슬픔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절정으로 치닫는 후반부를 넘어서 다시 주제가 나타나고, 감정이 고조되며 곡이 끝나자절로 탄식이 일었다.

 
임지영 프로필4.jpg
 
 
  사랑의 첫 출발에서부터 긴장과 이완, 사랑이 끝난 뒤의 깊은 애상감까지 담아낸 선곡이 참 매끄럽고 듣는 이를 배려한 듯 싶어, 과연 그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의 따스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차디찬 겨울바람에도 촉촉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


웹전단.jpg


 
97d2bce182af6153b6f21cdc70ce0e5b_S5mdxZoXiJvUjtUwPHeAIP3CfTgqE.jpg
 

[최예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