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의심하는 힘, 연극 < 비평가 >

메타 연극이 펼치는 언어의 향연
글 입력 2017.11.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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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중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평가>는 지금까지 본 연극에 비교해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극이 전달하는 정보량이 많아, 관람 중에도 쉬지 않고 생각할 거리를 제시했다. ‘메타 연극’답게 연극에 대한 근원적이고 풍부한 시각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다. 이같이 색다른 종류의 연극을 생생히 따라가는 긴장 속에서 나는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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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카리스마


연극의 시작을 알리며 조명이 환하게 밝아지면, 극이 끝날 때까지 막 전환은 없다. 오직 대화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작품은, 두 배우의 연기가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잘 마련한 듯 보인다. 두 사람은 링 위의 대치를 연상시키며, 밀도 있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각자의 논리를 펼친다. 이후 반박과 설득이 이어진다. 대화 중간 이따금 의도적으로 나타나는 휴지(休止)는 둘 사이 팽팽한 긴장을 체감하도록 한다. 진짜 같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의 압도에는 관객이 그들의 언어에 한껏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순간 이들이 지금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연기로 접근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진심으로 느끼기도 하였다.

막 전환이 없는 대신, 작품은 극중극을 충분히 활용한다. 관객은 이때 몰아치는 생각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익숙한 관람의 호흡을 찾는다. 극중극은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또 마친다. 각 시점에서 극중극이 펼쳐져도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언어로서 무대를 달궈 놓고, 그 결과 해당 역할을 충실히 하는 듯 보인다. 기존의 대화 흐름에 효과적으로 꿰차 들어간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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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서 글을 쓰다


극 중 냉철하고 고집 있게 자신의 글을 쓰는 비평가 볼로디아는 언뜻 보기엔 출중한 실력에도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는 훌륭한 직업 정신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에게 비평이란 삶의 일부이자 자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어쩌면 일거리라기보단 본인이 갖는 의지의 행위로도 느껴졌다. 그러나 모두가 그와 그의 비평에 신뢰를 형성했을 때쯤, 스카르파는 우리의 수면에 파장을 일으킨다. 볼로디아가 ‘가짜’라고 힘주어 단언한 스카르파의 극 중 여자가, 볼로디아의 떠나간 애인의 모습을 연기한 사실이 밝혀진다. 볼로디아는 자신의 철학과 그것을 바탕으로 말하는 비평에 한 줌 물러섬 없이 줄곧 응대해왔으나, 결국, 자신이 진정 사랑했다고 믿은 상대가 눈앞에서 재현되어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녀를 세우지 말았어야 하며, 순 가짜라고 맹렬히 비난한다.

이 순간 나는 볼로디아의 비평에 가졌던 신뢰가 흔들렸다. 물론 그는 극 중 여자의 대사를 똑같이 들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그가 보였던 태도를 봐라. 스카르파에게 그는 “한 번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고 몰아붙이며 그래서 이런 여자를 올리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동시에 자신은 마치 사랑의 진수와 아픔을 신실하게 깨달은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그토록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랑의 대상이라면, 그 여자의 연기에서 그녀를 확실히 떠올리지는 못하더라도, 혹은 익숙함을 느껴 동요하기까진 않더라도, 형편없는 가짜 배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 방을 먼저 떠나는 사람은, 충격을 받은 볼로디아다. 그는 매일 밤 공연을 보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비평을 썼다. 극에서 그 방은 동굴로 표현된다. 동굴은 비평가가 오랜 시간 형성해 온 삶의 철학이자 기준의 공간이다. 그는 하루하루 그 안에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며 동굴을 더욱 견고하게 굳힌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일에 대해선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는 애인이 떠난 이후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사랑을 대했고, 자신이 내린 결론을 믿으면서 사랑을 정의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것만큼은 비평 하듯 논리와 기준으로 단정될 수 없다. 그가 방을 나오는 행위는, 지금까지 형성해 온 그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을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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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연극인가

극 중 볼로디아는 스카르파의 연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극이 기립박수를 받은 건, 관객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거짓말을 지지해줬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진실을 올리면 관객은 불편해하고 나갈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땅히 그 불편한 진실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연극이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는 아무도 현실에서 내보이려 하지 않는 것들을 무대에 올리는 게 연극의 중요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상업적 연극은 연극으로 볼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관객 없는 연극이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 결국, 연극 제작의 이유를 관객에게 둘지, 연극 그 자체에 둘지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다. <비평가>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비롯해 연극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던지며, 관객을 ‘생각하게’ 한다.




메타 연극은 신선했다. 그 형태에서 오는 독특함이 무대를 기억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펼쳐진 주안점을 계속해서 맴돌게 만든다. 관객의 사고를 자극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성장시키는 힘이라고 말하겠다. 각자 혹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연극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거듭해야 할 것 같다.




사진 및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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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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