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빗 속의 암스테르담을 그리워하며 [여행]

익숙해질 것, 익숙해지지 말 것
글 입력 2017.10.0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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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빗 속의 암스테르담을 그리워하며
익숙해질 것, 익숙해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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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겨울 암스테르담은 우기다. 사실 네덜란드는 1년 내내 비가 꾸준히 와서 언제가 우기라고 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지만, 가을 겨울의 날씨가 봄 여름보다 별로인 것은 확실하다. (1년 내내 내리는 비는 네덜란드를 화훼 강국으로 만든 비결이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는다. 우산을 썼다면 관광객일 확률이 꽤 높다. 그보다는 무릎까지 오는 큰 판초 우비를 입거나, 혹은 모자를 쓰거나. 혹은 인상을 찌뿌린 채 금발머리에 물이 맺히도록 자전거 위에서 달리거나. 크게 비에 구애받는 사람들은 아니다.

*

   비가 오면 거리 위의 자전거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전거를 탄다. 비가 와도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자전거를 끌고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는 1분 간격으로, 혹은 시시각각으로 그 세기가 변한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쏟아붓다가 미스트처럼 은은하게 흩뿌리기도 한다. 처음 도착해서 비가 온 날에는 내내 우산을 쓰고 다녔지만, 이젠 그냥 눈 질끈 감고 걸어다니거나 실눈을 뜨고 자전거를 탄다. 빗물이 눈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얼굴보다 신경쓰이는 건 얼어붙는 손이다. 장갑을 빨리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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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비가 정말 많이 왔다. 하지만 미리 잡아놓은 약속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나와야 했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자전거는 적당한 길가에 세워놓고 트램으로 갈아탔다. 웬만하면 타려고 했는데 방수 외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마치 지붕 아래 처마처럼 뚝뚝 눈앞을 가려오기에 심한 욕을 몇 마디 내뱉고 내렸다. 더치 식당에서 주문한 매시드 포테이토는 소태처럼 짰다. 먹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의 음식을 같이 먹다가, 다시 한 번 나를 시험했지만 이번에는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렸다. 소태를 먹어본 적도 없고, 사실 그게 무엇인지도-먹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이 '소태처럼 짜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소태다.

   친구를 미술관에 데려다주고 나는 몸을 녹이러 카페로 향했다. coffee를 검색해서 back&black이라는 카페로 왔다. 별점 4.8. 좋은데? 도착한 카페에는 자리가 많지 않았지만 좋은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고 노트북들도 몇 보였다. 군데군데 꽃이 꽂혀있고 창문도 크다. 이 곳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외국의 언어들이 오가고 시나몬 향과 라디에이터의 은근한 온기, 채 마르지 못한 청바지에서 전해지는 한기, 주황빛 조명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커피를 가는 소리, 우유를 스팀으로 데우는 소리, 틀어놓은지도 가끔 깜빡하는 음악. 창문 밖 쏟아지는 비를 보며 고른 숨을 쉰다. 내가 그리던, 딱 그런 교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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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미래는 현재 한국에서 사진 정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구리구리한 날씨가 그립다고 했다. 최고의 사진 필터는 날씨라고 하지만 도저히 그 필터를 사용할 수 없는 이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이 곳의 자전거와 운하와 물냄새, 풀냄새가 그립다고 말했다.

   정말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 거지같은 하늘도, 잿빛과 녹색빛의 나무들도, 끊임없이 묻어나던 창문의 물기도. 다리마다 빼곡히 매여 있던 자전거들과 갈색 자전거 도로, 붉은 벽돌의 집들. 좁고 높은 운하 옆의 집들과 끊임없이 들렸던 경찰과 앰뷸런스의 경적음.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마를 날 없었던 자전거 안장도. 아슬아슬한 상황마다 내뱉었던, 그래서 하루에 5번씩은 말했던 sorry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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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현재를 과거로 말한다면, 그 때가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방금의 과거형 문단을 쓰며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 곳을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과는 다르게 나는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이다. 날씨가 안좋다면, 그래 이것도 괜찮아. 여행을 가지 못한다면, 그래 이것도 좋아. 공부할 것이 많다면, 그래 언제 이런 공부 또 해보겠어. 혹자는 정신승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승리하는 편이다. 정신승리라도 하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 패배할 뿐일테니까.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을 깊이 들이마시며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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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에 온지 한 달 반 정도가 흘렀다. 더이상 나 혼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주눅들지도 않고 계속해서 구글맵을 찾으며 자전거를 타지도 않는다. 자전거 도로로 다니는 일에 익숙해지고 길을 건널때에는 언제나 자전거가 나를 들이받을 수 있음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좌우를 살피고 느리게 뛰어 건넌다. 암스테르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이방인이다. 생김새도, 말도, 행동들도 '표준'과는 다른 이방인. 그리고 나는 사회학도로서,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너무 익숙해지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곳을 계속 여행하고 새로운 곳을 가보고 기록하며 행복하고 싶다. 새로운 공부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느끼고 싶다. 이 곳에 적응하며 익숙해질 것, 그리고 이 곳의 행복에 익숙해지지 말 것. 그러니까 지금 창문 밖으로 몰아치는 비바람도, 나는 정말이지 괜찮다. 음.. 곧 주춤하리라 믿는다. 괜찮을 거다.


사진, 글 김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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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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