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만난 메리 포핀스 [영화]

나의 설탕, '메리 포핀스'
글 입력 2017.09.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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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에서
처음 등장한 메리 포핀스의 삽화

 
 누구에게나 떠올리면 그 때가 그리워지는 추억 속 캐릭터 하나 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캐릭터가 하나 있으니, 바로 '메리 포핀스' 이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사 주신 '네버랜드 클래식' 전집 중 열 네번째, 열 다섯번째 책인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와 <뒤죽박죽 공원의 메리포핀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첫 등장부터 소개장도 없는 채로 유모를 구한다는 뱅크스 씨의 집에 바람처럼 나타나서 계단 난간을 타고 2층을 오르는(내려가는 게 아니다!) 이 유모의 이야기가 어떻게 지루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도도하고 멋부리기 좋아하는 유모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서 몇 번이나 책을 반복해 읽으며 나에게도 메리 포핀스가 찾아와 주길 바랐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진 환상의 결말이 늘 그렇듯 메리 포핀스는 나타나지 않았고 여러 번 읽었던 책은 어느새 책장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먼지 쌓인 메리 포핀스 책들을 다시 꺼낸 건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게 된 한 장의 영화 스틸컷 때문이었다.


Mary-Poppins-1.jpg
 
 
 온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환히 웃고 있는 스틸컷 속 여자의 모습이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면서 마음에 들었다. 스틸컷이 1965년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어릴 때 메리 포핀스 책들을 보며 즐거웠던 기억들과 설레는 감정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나는 홀린 듯 영화를 봤다.

 영화 <메리 포핀스>는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이다. 노래는 감미롭고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러우며 결말은 더할 나위 없는 해피 엔딩이라 내내 행복하게 볼 수 있었다. 책이 메리 포핀스와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마이클, 제인, 존, 바브라-이 함께하는 일상에 초점을 맞추어 각각의 다른 에피소드가 묶인 형식이라면 영화는 아이들의 아버지인 뱅크스 씨가 변해 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늘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며 그 외의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 버리던 뱅크스 씨는 메리 포핀스를 유모로 들이며 점차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더 어릴 때 이 영화를 봤다면 메리 포핀스와 아이들이 겪는 마법같은 일상이 눈에 먼저 들어왔겠지만 지금의 나는 뱅크스 씨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틀에 박힌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는 그가 고리타분하다고 말하기에 어느샌가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삶에 더 들어맞는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진난만하게 노는 마이클과 제인보다 직장에 다니는 뱅크스 씨에게 더 공감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이의 엉뚱한 말을 듣기보다는 아이에게 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뱅크스 씨에게 메리 포핀스의 친구 버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참고 참고 또 참다보면
어느새 어린시절은
손안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아이들은 훌쩍 커서는 둥지를 떠나버리죠.

그 때는 주려고 해도 상대가 없어진 뒤랍니다.
쓰디쓴 약을 삼킬 설탕을 주려 해도 말이죠.
약을 달게 할 설탕을요.


 메리 포핀스는 늘 설탕 한 스푼이면 쓴 약도 삼킬 수 있다고 노래하며 버트는 메리 포핀스가 달콤한 설탕 한 스푼이면 빵과 물을 케이크와 차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뱅크스 씨는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 뱅크스 씨처럼 빵과 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케이크와 차는 낭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빵과 물만으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사는게 팍팍할까? 어른이 되어도 쓴 약을 삼켜야 할 순간은 수없이 많고 그럴 때 빵과 물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나는 쓴 약을 삼킬 수 있게 도와주는 설탕이 우리 모두가 지나온 어린 시절에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공부 외의 책을 읽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고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이들은 더 많이 놀고 상상하면서 어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을 '낭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추억을 방패 삼아 현실의 바람에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해 공부하라고 하지만 노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일인 셈이다. 현실에서 나는 메리 포핀스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 메리 포핀스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설렘과 기쁨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 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가 영화 <메리 포핀스>를 보자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팍팍했던 하루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자신만의 설탕을 많이 찾아 놓아야 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쓰디쓴 약을 삼켜야 할 때 꺼내 먹을 수 있는 설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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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메리 포핀스가 곤란할 때,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내뱉으라고 한 단어 '슈퍼칼리프레글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 처럼, 비효율적이고 엉뚱한 것들을 사랑한다. 메리 포핀스 뿐만이 아니라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내일은 단 케이크를 먹기로 한다. 몸에 조금 나쁘면 어떤가. 이렇게 달콤하고 행복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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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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