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 냄새 나는, 제작자들의 천국 '을지로' [문화 공간]

무언가 제작을 원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을지로
글 입력 2017.09.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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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나는, 제작자들의 천국 '을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참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방학 숙제로 무언가를 만들었던 때를 생각해보자. 어른들 눈에는 마냥 귀엽기만 했던 우리들의 만들기 숙제도 정작 우리에게는 굉장히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쓸모를 가지고 원하는 외관이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많은 생각과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의 시작으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이 첫 번째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도출한 후 만들고 싶은 제품이 확정되면 목업(Mock-up)을 해보고, 모델링을 하거나 도안을 제작하여 실제 제작을 위한 공정을 생각해본다. 최종적으로는 여러 번의 시제품을 거쳐 마지막으로는 직접 제품을 만들게 되는데, 이때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바로 ‘을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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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ck-up 과정으로, 실물 크기로 만들어 사용해보고 개선점을 찾기도 한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제품을 제작할 때 금형을 만들어 제품을 여러 개 찍어내지만, 그 경우는 매우 큰 비용이 든다. 처음에 큰 돈을 들여 금형을 제작하고, 그 제품을 금형으로 여러 개 찍어내 이익을 얻는 구조다. 이는 하나의 제품을 대량생산하여 판매할 때에 적합한 방식으로, 소기업이나 학생들은 그 비용 때문에 접근이 힘든 방식이다. 실제로 필자도 플라스틱이나 실리콘 관련 작업을 할 때 거의 억 소리 나는 금형 비용 때문에 혀를 내둘렀던 적이 있다. 이때 자주 찾았던 곳은 을지로로, 가게를 직접 찾아가서 제품 제작이 가능한지 묻고 가능하다면 대부분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을 할 수 있다. 가게 사장님들은 대부분 장인이라고 불릴 법한 분들로 직접 용접을 하거나 자르고 깎아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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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형의 모습, 플라스틱이나 실리콘을 비롯한 재료는 이런 금형으로 찍어내 제작 가능하다. 


  이렇게 장인들이 모여있는 을지로는 흔한 풍경과 장소는 아니다. 그래서 예전 제품디자인 수업에서 교수님은 외국인 바이어가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이 을지로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몇 번 을지로에서 제품을 제작해보니, 을지로의 대단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을지로는 그 어떤 곳보다 많은 재료들과 가공방법을 가진 곳이다. 외국인들에게도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제작해 볼 수 있는 가게들이 집약된 곳은 생소하고 그만큼 대단하게 느껴질 것이다.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을지로는 잘만 살펴보면 작게는 천이나 종이 가공에서부터 철제 가공까지 다룰 수 있는 보물섬 같은 곳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지도에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니 꼭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야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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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가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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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 목록


  물론 을지로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만만하게 보고 찾아갔다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우선 원하는 가공 집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다. 원하는 모양으로 공정이 가능한 곳을 찾는 것도 힘들고 친절한 주인분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가 철제 의자를 만들기 위해 처음 찾았던 을지로는 너무나 어둡고 무서웠다. 동네는 낙후된 분위기가 감돌았고 아저씨들이 길가에서 철을 땜하고 망치질을 하는 굉음들을 들으며 자연스레 움츠러들어 걸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곳도 다녀봤지만 유독 철을 다루는 곳은 거친 느낌이 더 강한데, 그곳을 처음으로 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중에는 학생이 말을 거는 것을 무시하는 제작자분들도 있고 돈이 되지 않는 제작은 거부하는 곳도 있다. 실제로 필자가 철제 의자를 만들었던 곳을 후에 한 번 더 찾았지만 주인아저씨는 필자를 기억하지 못했고 질문을 잘 들어주지도 않으셨다. 아저씨에게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도 이렇게 무뚝뚝했던 아저씨와 벽을 허문 기억이 있기에 그때의 노력이 날아간 것 같아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또 가게마다 제작 비용과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야 원하는 형태를 최적의 가격으로 제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경험을 첨부하자면 스테인리스 컵을 제작할 때 약 1시간을 가게 찾는 데에만 쓴 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제작할 수 없어 다른 가게를 추천받고 또 그곳에서는 단가가 맞지 않아 다른 곳으로…. 한군데라도 제대로 시안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을지로를 뺑뺑 돌기도 했다. 그리고 크기가 작아서 섬세한 공정이 필요한 나무 조각을 깎기 위해 청계천 주변을 다 돌았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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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작품, 철제를 자르고 용접한 후에 도색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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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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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색을 원한다면 도색집에 찾아가, 원하는 팬톤 컬러를 말하면 된다.
팬톤 컬러칩을 사용하지 않는 곳은 그 곳의 컬러 칩에서 원하는 색을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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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 상가에서 레이저 컷팅으로 아크릴 판을 정원으로 잘라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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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형태를 나무로 조각하거나 심지어 도장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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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를 고생시킨 문제의 나무 조각, 재료는 월넛으로 섬세한 조각을 필요로 했다.


  지난 몇 년간 을지로를 다니며 찍었던 이 사진들은 그동안 다뤘던 재료들과 공정들을 보여준다. 그 당시에 바빠서 찍지 않은 사진, 찍었지만 찾을 수 없는 사진들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이는 을지로에서 얼마나 많은 재료를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얼마나 많은 공정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또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았는지, 그에 따른 고생이 보이는 것 같아 스스로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사진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을지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설도 낙후됐고, 어떨 때는 불친절한 제작자를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을지로는 보물섬이다. 공정을 파악하게 되면 제품을 구상할 때도 큰 도움이 되며 제작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또 처음에는 불친절하다고 느꼈던 아저씨가 제작을 맡기고 그 후에 서툰 말씨로 제작에 관한 것을 문자로 보내주실 때, 또 무뚝뚝한 천가게 아주머니가 부자재를 하나라도 더 챙겨주면서 살짝 웃음을 띌 때 그 모든 것들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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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챙겨주신 부자재들을 보며 정감을 느낀다.


  미래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주 쉽게 3D프린터로 만들어 내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아니, 이미 오고 있다. 실제로 여러 번 3D프린터를 이용해 봤는데, 오차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원하는 형태를 구현하는 점은 큰 매력이었다. 또한 그 덕분에 을지로에 가서 제작이 가능한지 알아보느라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 냄새가 나는 을지로의 투박함과 정감은 이길 수 없었다. 그 아무리 좋은 기계가 나온다 한들, 이러한 을지로의 정감은 재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무언가를 제작해 보고 싶거나 제작 환경과 과정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을지로를 한번 둘러보기를 권한다. 사람 냄새 나는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노다지이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장이다. 앞으로도 이런 을지로가 세상의 발전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정감 가는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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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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