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이 스물 하나의 나에게, [여행]

글 입력 2017.09.0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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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스물 하나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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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럽여행은 내게 있어 일종의 도피처였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공 수업에, 과외, 동아리, 무엇보다도 기숙사에 살다 처음으로 2시간 가량의 거리를 통학하게 된 1학기에는 매일매일을 어떻게 버텨낼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작년 겨울방학 때만 하더라도,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시간이 지나는 것을 아까워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이게 소위 말하는 ‘대2병’인지, 아니면 내가 대학생활에 벌써 질려버린 것인지, 고민의 연속인 시간들이었다.

이런 나에게 그나마 즐거웠던 시간은 여행을 준비하는 일뿐이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조금만 있으면 다가올 시간들을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행복을 미루고 미뤘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번 여행은 내게 ‘즐거움’보다 더 높은 차원들의 감정들을 안겨 주었다. 힐링도 힐링이었지만, 여행은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한층 더 새로운 방향들을 제공해 준 것이다.



수많은 걱정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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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여행을 막 시작한 나는 온갖 불안과 두려움에 가득 찬 상태였다. 사실 꼭 이번 여행이 아니더라도, 나는 평소에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무엇인가를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까지 걱정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 달 동안 타지에서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여행을 온 이유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나는 여기 쉬려고 왔지,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미처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많은 환경에서, 무엇인가를 걱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여행을 와서야 그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자 항상 다음에 일어날 일만 생각하던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었다. 나를 붙잡고 있던 모든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것, 이번 여행이 내게 조금씩 알려준 행복이다.



놓치기 쉬운 것들에 집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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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바쁜 일정에 쫓겨 다니던 생활에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낯설었다.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이 끝나고도 뭔가 계속 공부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복잡한 생각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다가, 여행을 하며 어느 샌가 주위를 살펴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보아야 하나, 하루를 어떻게 잘 보내야 하나.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던 시각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 나갔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고양이들. 매일 색깔이 바뀌던 하늘까지. 그 어떤 것도 내게는 즐거운 대상이었다. 나만의 세상에 조금씩 자리를 내어 주니, ‘여유’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여유라는 게 별게 아니었다. 그냥, 내 옆의 존재들에 한번 더 눈길 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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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무엇보다 감사했던 점은, 내가 조금씩 ‘초연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스물 하나가 되는 1월에 적어 내려간 목표 중 1순위가, ‘모든 일에 조금만 더 초연해질 수 있도록’이란 것이었다.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한 달 간의 여행 중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예상했던 바와 달리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비일비재했다. 나의 물건을 소매치기 당했고, 인종 차별적 발언들을 들었다. 기차표를 잘못 끊어 큰 액수의 벌금을 내기도 했고, 아파트 문을 열지 못해 버스를 거의 놓칠 뻔 했다. 그 밖에도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을 아무렇지 않게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일들에 초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으려고 온 여행인데, 사소한 일들에 집착하지 말자는 생각은, 결국 내 사고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생각을 하나하나 놓는 법,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방법을 터득해 간 것이다.



여행을 갔다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음 여행 계획을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이번 여행은 20대 때 가장 잘 한
결정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여행은 내 생각에 긍정적 자극을 준 계기이자
잊을 수 없는 친구와의 추억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모든 준비 과정과
여행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앞으로의 매일이 여행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 마음은,
여행 중과 같지 않을까:)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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