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른 온도의 시선이 만나는 곳, The table [영화]

그곳에서 벌어지는 네 가지 에피소드
글 입력 2017.09.0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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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길가 한 켠의 카페 창가에, 테이블이 있다. 완연한 아침햇살 아래의 테이블 위에 싱그러운 꽃 두송이가 담긴 조그만 물컵 하나가 놓인다. 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둔 네 가지 이야기가 영화를 이루고 있다. 그 하루동안 인물들이 바뀔 때마다, 창밖의 온도가 바뀌고 무릎 맡의 잔 속 온도가 바뀌고 두 송이 꽃의 온도가 바뀐다. 말간 햇살이 피었다가, 따사로운 온기가 가득했다가, 어스름에 가까워졌다가, 온통 암흑으로 내려앉았다가. 이렇게나 달라지는 시간 속에서, 각각의 에피소드 속 두 인물들의 매개인 테이블은 그들의 상황을 나타내는 듯 보였다. 그들이 삼켜낸 한 모금의 커피로 한 번 영화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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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맥주 한 잔과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미적지근한 온도로 만난 둘, 그러나 곧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맨정신으로 그녀를 보기 힘들다며 맥주를 들이킨 그의 행동은 무척이나 실례스럽다. 무례하기 그지없고, 눈치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그녀와의 만남은 가십거리고 자랑거리일 뿐. 이미 지나쳐간 관계에 대한 허세로 가득차있다. 그녀가 내뱉은 속이야기들에 그는 '변했다'며 수응했다. 변했다는 말,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어릴 적 조금의 추억과 들리는 이야기들밖에 없으면서 그녀에게 변했다고 말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첫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가식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늘 그런 관계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매번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삼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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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아메리카노 두 잔,  그리고 달콤한 초코케이크

  유일하게 온전히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다른 디저트가 함께 놓여져있다. 여느 관계보다 달콤하다.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며 시작된 대화는 오해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된다. '좋은 거 보면 사진이라도 하나 보내줄 줄 알았다'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에, 그는 그녀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챙긴 선물들을 그녀 앞에 풀어낸다. 그리고 터진 웃음. 창밖으로는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가득하다. 물컵 속의 꽃들도 여느때보다 생생해보인다.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서로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카페에 들어설 때보다 조금 더 상기된 얼굴로 옅은 미소를 띠고, 카페를 나선 둘은 창밖의 길을 걸어간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어깨를 나란히 대었다. 담백하지만 입안 가득히 맴도는 아메리카노처럼, 그들은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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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부드러운 라떼 둘, 한 잔엔 각설탕 퐁당

  한 잔의 라떼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태껏 결혼식은 그녀에게 돈벌이 수단일 뿐이었지만 이번 결혼식은 조금 특별하다. 그녀에게 처음인 '진짜' 결혼식이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그녀를 조금은 안쓰럽게 바라보는 중년의 여성이 있다. 사심 한톨 섞이지 않은 채 시작된 대화였지만 어느새 그녀의 눈은 마치 딸을 바라보는 듯 따스하기만 하다. 중천에 뜬 해처럼 내리쬐지는 않지만 이미 공기를 가득채운 온기는 둘의 마음을 보듬어주기에 충분하다. 어릴 적 별명이 '거북이'였다는 말에 그녀는 진심을 전하듯 읊조린다. '우리 느림보 거북이는요...' 같은 라떼를 마시며 같은 온도를 공유하지만, 어머니의 모습과 같던 그녀의 커피엔 각설탕 한 조각이 더 섞여있다. 그녀의 마음은 꼭 설탕이 천천히 녹아들어 달콤해진 라떼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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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식어버린 커피와 홍차 한 잔

  남자는 카페에 먼저 와서 여자를 기다렸다. 그의 커피는 이미 차갑디 차갑게 식어버렸다. 조금 늦게 자리에 앉은 여자는 '홍차'를 주문했다.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던 둘은, 아니 어쩌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둘은 관계를 끊어내기 전 갈림길에 서있었다. 결혼이라는 선택을 앞두고, 카페에 늦게 들어섰듯 늦게서야 관계를 되돌려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잔 채 마시지 못한 홍차에 남은건 향도 다 날아가버린 쌉싸름한 맛 뿐이었다. 밖은 어느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해졌고 꽃은 한 잎 한 잎 끊어져 생기를 잃어버렸다, 마치 그들의 관계처럼.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분명 그 '선택'은 그녀, 혹은 둘의 몫이었건만, 그들은 미련이 묻어나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서자 카페의 문은 닫혔고, 둘은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마치 옴니버스처럼 독립된 이야기들을 붙여놓은 듯 보이지만, 화면은 러닝타임 내내 오로지 한 공간만을 비춘다. 뿐만 아니라 영상 곳곳의 요소들이 끊임없이 각 이야기들의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카페의 문을 열고 꽃을 가져다두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오고 카페의 문을 닫기까지 단 한 명의 인물이 하루 온종일 프레임 뒤편에 존재했다. 카페에 앉아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참 그렇다. 별다른 경계가 없는 명백한 공공의 공간이지만, 곧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만의 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주변 이들의 이야기는 웅성이는 소음일 뿐 나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하지만 제3자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 소음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바로 감독이 만들어낸 속 관찰자의 시선이 아닐까.




[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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