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념이 실재가 되는 상상, 연극 '네더' [공연]

‘The Nether’가 존재하는 곳의 이야기
글 입력 2017.09.0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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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관념이 실재가 되는 상상
연극 '네더'


‘The Nether’가 존재하는 곳의 이야기


연극 네더_4.jpg
 
    
 
Prologue.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가 초대라는 말 덕분에 늘 설렘을 안고 응하는 것이지만, 연극 ‘네더’는 스토리가 궁금했기 때문인지 더욱 큰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하게 되었다. 극의 스토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쳤으며 각각의 인물들이 이루는 대립구도 또한 극에 몰입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토리를 소개했던 프리뷰에서처럼,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마저 그 경계를 허물게 할 정도로 흡입력 있었던 연극 ‘네더’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1. ‘The Nether’가 존재하는 곳의 이야기

네더_장면사진5.jpg


‘네더(The Nether)는 극에서 가상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을 떠올려보아도 그 세계관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러나 인터넷보다는 조금 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네더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동경할 만한 ‘아름답고 그리운 빅토리아 풍’으로 꾸며진 실내와 정원에서 더 오래 머물도록 현혹된다. 네더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마음 깊은 곳의 욕망까지도 해결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네더를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은신처’라 부르며 이곳에 머무는 시간을 점점 더 늘려간다. 이에 네더는 사람들이 욕구를 마음껏 표출하며 오래, 편히 머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하였다.

  
[규칙]
1. 현실세계에서의 일을 언급하지 말 것.
2.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지 말 것.
 
 
조금은 애매한 규칙이라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나름대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규칙 1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잊어버리게 하고자 설정된 것이었다. 완전히 네더에 빠져들어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채 순간의 느낌과 행위에만 집중하도록, 세계의 틀 안에 접속자들을 가두는 것이다. 규칙 2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결과를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네더에서 접속자들은 그들의 욕구를 어린 여아에 대한 욕망(소아성애), 강간, 살해 등으로 표출하도록 권유(혹은 강요)받는다.


네더_장면사진6.jpg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수차례 권유받은 대로 이를 반복할수록 그 행위와 감정에 빠져든다. 그리고 몰입감에서 오는 쾌락과 희열에 현실에서와 달리 책임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욕구를 죄책감 없이 계속 표출하게 된다. 현실에서라면 범죄였을 그 행동들이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학에서의 상황정의가 잠깐 떠올랐다. 말과 행동은 그 사회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각각 다른 것으로 ‘정의’되며 공유된다는 상황정의에 따르면 네더에서의 강간, 살해 행위도 범죄가 아닌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2. 세 사람, 어쩌면 세상 모든 이의 이야기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명이다. 형사 모리스, 네더의 창조자 심즈, 도일.

모리스는 현실 세계의 윤리가 가상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더에서의 강간, 살해 행위들은 모두 범법 행위이며 이는 인간 윤리에도 벗어난다고 주장하며 심즈를 취조한다. 그러나 심즈는 사람들은 상상에서만큼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현실과 가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그 행위들에서 문제점은 찾아볼 수 없으며 실재하는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일은 네더의 세상에 갇혀버리고 만다. 형사 모리스가 새로운 자신 우드너를 창조하여 네더에 접속했을 때, 규칙을 어겨버리고 파파에게서 많은 것을 알아내버린 나머지 충격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이들의 대립관계는 이렇듯 간단하고도 명확하지만 사실 세 인물은 모든 사람들의 성향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심즈처럼 두 세계의 완전한 분리를 말하며 비윤리를 윤리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혼란을 겪고 도탄에 빠질 것이며, 누군가는 하나의 윤리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인물과 내 의견을 나란히 할 수 있을까.
 

네더_장면사진3.jpg
 

 
3. 네더, 곧 현실의 이야기
 
어쩌면 네더는 현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웹상에서 또다른 자신을 ‘아이디’ 혹은 ‘캐릭터’로 창조하여 활동하고 있다.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또하나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은 더 이상 환상적이고 신기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해 또다른 자신 뒤에 숨어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일삼고서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시간이 갈수록 많아진다.
 
 
당신 영역에 사랑은 없어.
거긴 당신 이기심만 있을 뿐이야.
- 모리스 -

나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을 뿐이야.
누구나 상상 속에서는
자유로워야만 해.
- 심즈 -

 
가상세계에서의 윤리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극의 결말이 주는 잠정적 결론에서 그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도일과, 아이리스의 실재에 대해 알게 된 심즈가 두 세계에서의 분리는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으며 수사를 마무리하는 모리스. 극의 결말은 현실로의 복귀, 그리고 현실에서의 윤리가 가상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정의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만 결국 가상 세계가 현실을 장악하는 때가 올 수도 있다. 그것이 신체 혹은 의식일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네더가 위와 같은 결말을 택한 것은 관람객에게 현실에서의 안도감을 안겨주기 위함이 아니라 아직 떨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더가 지배하는 세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결말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네더_장면사진4.jpg
 

심즈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현실에서는 그 자유를 타인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라고 한정한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가상,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워도 되는 것일까. 곧 현실이 될 수 있을 네더의 이야기에 두려운 물음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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