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화하는 '예술'의 속내에 대하여 :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영화]

글 입력 2017.08.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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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현재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지만, 본래 미술을 전공했었다. 스무 살의 나는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틀에 박힌 입시미술의 장벽을 넘지 못해 결국 미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게 들어간 과는 적성에 잘 맞았고, 미술을 전공하지 못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현재 전공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주에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과, 지금까지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가볍게 만난 자리였는데 그곳에서 예술에 대한 뜻밖의 열띤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입시 미술의 흐름과 문제점, 성악과 기악의 연관성, 통기타 음악에서 힙합음악으로 변화한 길거리 음악, 장르별 음악 속에 담긴 의미와 그 진정성-따위에 대해 토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술에 대한 대화였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과, 한 때 미술을 전공했던 나, 그리고 지금까지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친구는 입을 모아 현대 미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미술은 점점 불친절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작품 설명을 읽지 않으면 그 작품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고, 그마저도 설명이 안 되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메시지나 감정의 전달, 소통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 하며, 어떤 것을 담고 있던 제작자가 '이것은 예술이다'라 말하는 순간 그것은 예술이 된다. 정말 알 수가 없다. 항상 그에 대한 고민을 해오던 나는 한 영화를 보고 더욱 깊은 고뇌에 빠졌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shop)



1. 티에리 구에타와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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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구에타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를 손에 들고, 모든 순간을 화면에 담아내는 티에리의 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단 한순간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 티에리는 별 의미 없이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영상을 찍고 또 찍었다. 티에리는 LA에서 구제샵을 운영하는 탁월한 사업가였다. 그는 50달러에 옷을 사들인 후, 재봉선이 다른 옷을 디자이너의 작품이라 말하며 400달러에 팔곤 했다. (간혹 이러한 방식으로 5000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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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invader의 작품

 
그래피티 : 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필요에 따라 스텐실, 스티커, 포스터, 설치물 등을 이용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의미를 거리에 남겨둔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시적으로 남겨지던 스트리트 아트 작품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펑크 문화 이후로 가장 거대한 반체제적 예술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그래피티를 하는 사촌을 만난 후 삶이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 사촌의 닉네임은 space invader로, 모자이크 조각을 합쳐 space invaders의 게임 캐릭터를 만들어 도시 곳곳에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그래피티에 흥미를 가지게 된 티에리는 사촌이 작품 활동을 하는 모든 순간을 따라다니며 촬영하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아트, 그래피티는 건물 외관을 해치는 불법행위로 여겨져 주로 인적이 드문 밤에 작품 활동이 이루어진다. 티에리는 그 밤거리를 누비며 스트리트 아트에 더 깊게 빠지게 되었으며 그간 의미 없이 찍어온 영상들을 토대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고 영상의 방향성을 잡은 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 티에리의 촬영은 새로운 움직임, 스트리트 아트의 탄생을 진솔하게 담겠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LA를 위주로 더 많은, 더 다양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현재를 찍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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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Banksy)의 작품


 그러던 중 티에리는 운 좋게 뱅크시를 만나게 되었다. 뱅크시는 정치, 경제, 사회면의 무거운 주제를 담은 그래피티로 유명하며 종종 대중매체에 보도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작업을 하고,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을 걸어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그는 얼굴을 비롯한 모든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베일에 싸인 존재였다. 숱한 위험과 고비를 함께 이겨내며 티에리는 뱅크시의 신뢰를 얻게 되었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뱅크시의 모든 족적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진행했다.



2. 뱅크시의 전시, Barely L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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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ely Legal'에 전시된 코끼리


 뱅크시는 LA의 폐쇄된 창고를 갤러리로 만들어 첫 메이저 전시회 ‘Barely Legal’을 열었다. 그곳에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뱅크시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전시회의 가장 큰 이슈는 거대한 코끼리의 외관을 12리터의 아동용 페이스페인팅 물감으로 덮어버린 것이었다. 그 파격적인 시도는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작업했는가, 동물권리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그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방송사에서 몰려들었다. 유명 인사와 거대한 코끼리, 그에 대한 수많은 관심과 논쟁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그 결과 엄청난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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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전시회 'Barely Legal'에 대한 뱅크시(Banksy)의 인터뷰
 

 전시회가 끝난 후 항상 수배 명단에 올랐던 공격적인 스트리트 아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유명한 메이저 경매회사들이 갑자기 스트리트 아트 작품을 사고팔기 시작했으며, 길거리 어디에나 있던 작품들의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미쳐가고 있어요. 예술이 갑자기 돈이 되어버렸어요. 이건 돈에 관련된 게 아닌데 말이에요.”

 뱅크시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낀다. 그 예술의 속내를 드러내기 위해 그간 촬영해온 티에리의 영상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예술이나 영상 편집에 대해선 문외한이던 티에리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아닌 1시간 30분짜리의 괴상망측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뱅크시는 그 영상을 보고 집중력 장애가 있는 사람이 리모콘을 쥐고 900개가 넘는 채널을 계속 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티에리에게 뱅크시는, 영상 편집은 본인이 할테니 직접 미술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3. 티에리 구에타의 작품 활동, Life is beautiful

 이때부터 이상한 흐름이 발견된다. ‘모든 예술은 세뇌(brainwash)로부터 이루어진다.’라고 말하는 티에리는 미스터 브레인 워시(MBW)라는 닉네임을 내걸고ㅡ지금부터 티에리를 미스터 브레인 워시라 칭하겠다ㅡ, LA에서 있었던 뱅크시의 전시회를 모방하려는 듯 대출을 받고 투자를 해 비싼 인쇄 장비와 풀타임 팀원들로 구성된 거대한 스튜디오를 만들어 전시를 기획했다. 뱅크시가 제안한 소규모의 예술 활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미스터 브레인 워시는 작품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당당히 말했다.

 ‘작품을 직접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방법은 알아요.’


 그가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기존에 있던 작품들을 골라 포토샵으로 약간의 변형을 주는 것뿐이다. 그 속에는 별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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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쥐고 있던 엘비스에게
장난감 총을 쥐어줬어요.
잔인해지지 말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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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배트맨의 할아버지예요.
1893년도라고 써있죠.
배트맨이 태어나기 전이예요.
이게 배트맨의 시작이에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해도 될까 싶지만, 정말 기가 찼다. 세뇌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는 약간의 변화를 준 '남의 작품'에 앞뒤가 맞지 않는 단순한 의미를 주입했다. 그렇게 그는 손쉽게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작품을 본 뱅크시는 이렇게 말했다.
 ‘앤디워홀은 유명한 아이콘을 아무 의미 없게 반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만들었다. 그것이 그가 작업한 상징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미스터 브레인 워시는 그것을 정말 아무 의미 없게 만들었다.’

 미스터 브레인 워시는 전시회를 홍보하기 위해 그간 만나온 아티스트들에게 홍보를 부탁했다. 그의 행보를 본 아티스트들은 언짢고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홍보 문구를 기고해주었다. (뱅크시는 ‘미스터 브레인 워시는 경이롭다. 좋은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구를 개인 사이트에 기고했다.) 그들의 홍보덕분인지 브레인 워시는 LA에서 가장 규모가 큰 주간지의 편집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으며, 그 인터뷰가 잡지의 메인에 기고되어 순식간에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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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브레인워시(티에리)가 전시회를 준비하는 모습


 필자의 전공 수업 중에는 전시기획이라는 과목이 있다. 그 수업 덕분에 미술세계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시 기획에 있어서 작품의 선정과 작품 위치의 선정, 동선의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종이 한바닥을 가득 채워 쓰며 알게 되었다.
 하지만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전시가 처음 세상으로 나오기 8시간 전, 빈 벽이 있다는 말에 ‘그냥 아무 유화 그림이나 걸어버려’라 대답했다. 벽에 그림들을 걸며 ‘좋아, 좋아, 잘 모르겠지만 좋아, 그냥 걸어버려, 좋아’라 말하며 아무렇게나 전시를 준비해나갔다. 고민하는 기색이 없었다. 엽기적이었다.
 그렇게 열린 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모두 유명 잡지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이었다. (첫날에만 4000명의 관객이 보러왔으며 입장하지 못해 문을 부수는 관객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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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 대한 아티스트의 인터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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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 대한 아티스트의 인터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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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 대한 아티스트의 인터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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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 대한 관객의 인터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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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 대한 관객의 인터뷰 (2)


 이 전시회에 대한 관객들과 예술가들의 엇갈린 평가를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 괴리감에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이건 마치 금광 같아요. 그냥 그림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이거 얼마예요?”라 물어오면 만 팔천달러, 만 오천달러라고 대답하면 되니까’

 미스터 브레인 워시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확실히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는 종이에 스프레이를 몇 번 뿌려 비싼 값에 팔아넘겼다. 앞서 등장했던, 50달러의 옷을 400달러에 팔아넘기는 사업가 티에리의 모습과 다른 점이 없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하는 것이 예술이라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단언컨대 그것은 예술을 표방한 하나의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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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Life is beautiful'에 대한 뱅크시의 인터뷰


 영화는 큰돈을 벌어들인 브레인워시(티에리)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미술. 상업성과 온전히 결합된 미술. 어떠한 기준으로 그것을 바라봐야 할지 더 머리가 아파왔다. 혹자는 그것이 새로운 예술의 흐름이라 말하지만, 본질을 잃은 채 그 깊이에 대해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묘하게 설득당하며 세뇌당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깊이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근 유행하는 여러 전시회에 가면 다소 신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바로 사진을 찍는 것. 수많은 사람들은 SNS에 업로드 할 사진을 촬영하고 작품들을 빠르게 지나갔다. 이상했다. 미술이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그곳에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 미술은 귀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져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이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대중화와 더불어 나타난 미술의 상업화,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미술을 보니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물론 예술은 개인의 감상에 관한 영역이니 어떻다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과 그 깊이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었다. 동시에 그 본질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미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흐름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와 관객 모두 그 예술의 속내와 깊이를 다시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미지 출처-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구글]


[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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