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대화는 없었다. - 연극 ‘붉은 매미’ [공연]

글 입력 2017.07.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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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 아이를 버린 엄마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외면 받았다. 소통만 연쇄되지 않는다. 단절 역시 연쇄된다. 두 남자는 자신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다퉜다. 남매는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못해 싸웠다. 부부는 서로 꿈꾸는 미래가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연극의 결말,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는, 그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붉은매미 두 남자 대립.JPG
 
붉은매미 남매 대립.JPG
 
붉은매미 부부 대립.JPG
 
 
  4개의 장 동안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다툰다. 몸이 아닌 말로. 내연녀와 아내로서 싸우고, 다른 환경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으로서 싸운다. 같은 환경을 공유했으나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 남매로서 싸우고, 다른 미래를 그리는 부부로서 싸운다. 발화는 끊임없이 이루어지는데 답답하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니, 갈등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본인들에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유 없는 고집을 유지하고자 이유 있는 논리로 포장한 말들을 얼마나 허망한가. 그 말들은 갈등을 해소하거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자신을 가리는 데 이용될 뿐이다. 상대에게 다가가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한다. 상대를 설득할 필요를 모르기에 말을 한다. 상대와 대화하고 싶지 않기에 말을 한다. 상대와 소통하지 않기 위해 말을 한다.

 
붉은매미 포스터.jpg



 ‘사건 자체의 재연이 목표가 아닐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환경, 세대의 틈바구니에 끼인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억눌린 현실, 감추고 있는 감정들을 통해 현대 인간의 잘려나간 정신 단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 인간은 늘 어딘가를 떠돌며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어 하지만 세상과 관계 맺기는 늘 요원함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속해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 소개 포스터의 말 중

 

 추상적인 기획 의도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굉장히 그럴싸해 보일수도 있고, 자칫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붉은 매미’는 아주 추상적인 기획의도를 구체적인 연극의 공간으로, 언어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연극은 뚜렷한 하나의 서사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 장에서 갈등을 촉발하는 사건 역시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 사건에서 느껴지는 인물들의 갈등, 감정만이 언어가 되어 발화된다. 설득이나 해소, 화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신을 가리고, 선을 긋기 위해 언어가 소비된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발화하지만 대화라고 보기 어려운 언어의 연쇄는 관객석 사이로 흩어진다.



지껄이다

1. 약간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다.
2. ‘말하다’를 낮잡아 이르는 말.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가끔씩 한 단어에 꽂힐 때가 있다. 예전에 ‘지껄이다’라는 단어에 꽂혔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껄임’에 청자는 고려되지 않는다. 청자의 듣는 행위를 고려하지 않고, 화자가 발화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많은 언어를 발화하며 살아간다. 그 언어들 중 얼마나 많은 말들이 ‘지껄임’이 되어 길바닥으로 가라앉았을까. 연극의 주인공들만이 언어를 불통의 수단으로 사용하겠는가? 우리 역시 그렇다. 모든 대화가 진지해야한다거나 거창한 의미를 가져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자를 고려한 발화가 전제되어야 우리는 타인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마주해야 공감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공감할 수 있어야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관계를 맺지 못하고 단절된 개인은 얼마나 슬픈가. 연극의 결말에서 버려진 아이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관계로부터, 세계로부터 단절된 현대인 모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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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단절을 이야기하는 연극 '붉은매미'는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7월 9일까지 공연되었다.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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