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광대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2017 전막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

글 입력 2017.07.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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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저주 받았다. 나는 꼽추로 태어나 조롱과 경멸, 힐난의 시선을 받으며 살았다. 죽음보다 끔찍한 삶을 살아낸 것은 딸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가면을 쓴다. 웃음의 가면을, 재롱의 가면을, 풍자의 가면을 쓴다. 우스꽝스러운 꼴을 하고 그들이 놀리던 꼽추의 모습을 이용해 분위기를 띄운다. 여자를 밝히는 공작의 뒤에 숨어 그 여자의 남편들을 조롱한다. 공작보다 지위가 낮은 남편들은 나를 증오한다. 나는 저주 받았다. 나의 소중한 딸은 그들에게 납치당했다. 공작에게 바쳐진 딸은 더럽혀졌다. 공작을 증오한다. 나는 딸을 데리고 킬러의 술집이 있는 숲으로 향했다. 공작을 사랑하는 딸의 마음을 돌리고, 살인을 의뢰했다. 비바람이부는 깊은 밤, 숲을 헤치며 공작의 시체를 받기 위해 다시 술집으로 향했다. 시체가 담긴 포대에 침을 뱉고, 발길질을 했다. 평생을 웃겨준 어릿광대의 발밑에 깔린 공작이라니! 웃음이 났다. 불안한 웃음이. 포대를 열었다. 차갑게 굳은 내 삶의 이유가 거기 있었다. 더럽혀진 내 삶의 이유는 밤의 어둠 속에 덮여갔다.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와 함께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리골레토’를 감상하고 왔다. 주요 인물은 꼽추 어릿광대 ‘리골레토’, 그의 딸인 ‘질다’, 리골레토가 모신 공작이자, 질다의 사랑인 ‘만토바 공작’이다. 자신의 딸을 더럽힌 공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인 ‘스파라푸칠레’에게 리골레토는 살인을 의뢰한다. 자신의 이름을 묻는 스파라푸칠레에게 리골레토는 대답한다.
 
“나의 이름은 형벌, 그의 이름은 죄악!”
 
  과연 그러한가? 리골레토에게 ‘형벌’을 자처할 자격이 있는가? 질다가 납치된 것은 리골레토가 증오를 샀기 때문이다. 만토바 공작과 정을 통한 여자의 남편들을 조롱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들의 증오는 본디 어릿광대인 리골레토가 아니라, 자신들의 아내를 희롱한 만토바 공작을 향해야한다. 지위에 눌려 반발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열등감 섞인 증오를 만만한 어릿광대에게 푼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리골레토의 잘못이 희석되지는 않는다. 어릿광대 주제에 주인의 유희를 소재삼아 그 희생양들을 조롱한 그의 행태는 타인의 증오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교회를 오가며 이미 만토바 공작을 사랑하게 된 질다는 그의 아버지에게 그를 용서하라며 애원한다. 리골레토는 그런 딸이 마음을 돌리길 바라며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며 노래하는 공작의 모습을 보도록 만든다. 질다는 이 순간 마음을 돌려 복수해달라고 하지만, 극의 말미에 자신의 변하지 않은 사랑을 고백하며 공작 대신 자신이 죽기로 결심한다. 희롱당한 후에도 공작을 용서해달라는 딸의 말을 리골레토는 왜 용납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과연 애처로운 딸을 향한 부정에 불과한가? 꼽추인 리골레토에게 딸은 유일한 삶의 이유였고, 어릿광대짓을 하며 그 아이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는 정체성의 확인이었을 것이다. 어릿광대짓으로 증오가 쌓였고, 증오의 화살은 애먼 딸에게 향했다. 딸을 지키는 것에 실패했다. 그것은 그의 정체성을 무너트렸을 것이다. 나는 공작을 향한 증오가 딸을 생각하는 부정이 아니라 리골레토라는 인간 정체성의 훼손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그의 복수는 그가 바라는 대로 완결되지 못하고, 그토록 사랑하던 딸의 시체만을 남긴 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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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는 만토바 공작의 궁정을 배경으로 리골레토가 증오와 저주를 받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배경이 배경이니 만큼, 화려한 장식과 무용수들, 귀족들이 많이 등장했고, 리골레토 역시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2막은 리골레토가 숨겨둔 숲의 집에서 질다가 등장하고, 신분을 속인 만토바 공작과 질다의 밀회, 질다의 납치가 이어진다. 사랑을 노래하는 질다의 아리아가 무척 인상 깊었다. 질다는 만토바 공작의 궁정으로 납치당하고, 리골레토는 복수를 다짐한다. 3막에 이르러 리골레토와 질다는 스파라푸칠레에게 살인을 의뢰하고, 스파라푸칠레는 동생인 막달레나를 이용해 공작을 꾀어낸다. 짧은 사이 공작에게 반한 막달레나는 다른 사람으로 시체를 위장하자며 스파라푸칠레를 만류하고, 맘을 바꾼 질다가 공작 대신에 죽게 된다.

  막 사이에 막간극을 삽입하겠다는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7의 언급대로 무언극이 중간에 등장했다. 오페라가 처음이었던 나도 수월하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3막이었다. 유명 아리아인 ‘여자의 마음’도 기억에 남지만, 리골레토, 질다, 만토바 공작, 막달레나 네 남녀의 4중창이 가장 좋았다. 공작의 유혹을 받아줄 듯 말 듯 한 막달레나, 그런 그녀에게 계속 추파를 던지는 만토바 공작, 그런 공작의 모습을 믿을 수 없는 질다, 그런 딸을 위로하는 리골레토. 같은 반주 위에 얹힌 네 개의 각기 다른 멜로디, 다른 감정, 다른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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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7’은 대중이 오페라를 조금 더 쉽게 생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6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 강동아트센터와 천호공원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증오와 복수에 얽힌 슬픈 오페라 ‘리골레토’를 내 생애 첫 오페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준 데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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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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