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얼굴 없는 빨래들의 섬뜩함, 그리고 쓸쓸함

글 입력 2017.05.2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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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소나 ‘가면’이라고 해석되는 이 단어는 영화에서 영화감독 자신의 분신이나 특정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칭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영화라는 울타리 밖에서 페르소나는 개인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원활하게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외적 인격을 말한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화장법이나 옷, 신발이나 머리스타일 뿐만이 아니다. 고정된 형태가 없는 이것을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매일, 매순간이 갖는 세밀한 차이에 맞춰 우리는 수없이 많은 페르소나를 만들어내고, 착용하고, 때로는 내던져 버린다. 이렇듯 페르소나가 무언가를 입고 덮어씀으로써 스스로를 감추는 행위를 표현했다면, 임솔아의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에 실린 <기본>은 무언가를 지움으로써 스스로를 벗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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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임솔아

흰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내일의 약속을 위해서

옷가게에 들어갔다. 흰 티셔츠가 흰 티셔츠끼리 
모여 있었다. 가슴에는 주머니가 없거나 있었다.

옆 가게에도 들어갔다. 흰 티셔츠가 다른 티셔츠와
무더기로 쌓여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옷은 조금 더 저렴했다.

얼굴 없는
마네킹은 어떤 옷이든 잘 어울렸다. 내 얼굴에
잘 어울리는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기본 티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죠, 점원이

말했다. 흰 티셔츠를 찾아다니다 집에 있는
흰 티셔츠가 기억났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옷장 서랍을 열어보았다.
흰 것들을 모두 꺼내보았다.
흰 티셔츠는 저마다 다른 얼룩을 갖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얼룩에다 치약을 묻혀
비볐다. 지워지고 있는 얼룩을 이목구비가 허옇게 바래가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오래 지켜보았다.

지워지는 얼룩은
지워졌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가장 자주 입어 가장 쉽게 얼룩이 졌다.

탈수된 티셔츠를 세탁기에서 꺼내어
탁탁 털었다. 창가에 걸어두었다. 티셔츠가
펄럭였다. 말라가면서 옷은 더 환해졌다. 내 방에는
얼굴 없는 빨래들의 환한 냄새가 퍼져갔다. 
내일은 약속이 있다.





 흰 티셔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지고 있진 않더라도 살면서 한 번 쯤은 반드시 입게 되는 옷이 흰 티셔츠다. 마치 속옷처럼. 그래서 흰 티셔츠를 ‘기본’이라 구분 짓는 걸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듯이 화자의 집에도 흰 티셔츠는 있었다. 하지만 흰 티셔츠를 찾아 이 가게 저 가게를 헤매다 만난 한 점원에게서 ‘기본 티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죠,’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화자는 자신에게도 흰 티셔츠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 길로 화자는 집으로 돌아가 ‘흰 것들을 모두’ 꺼내어 본다. 그리고 ‘흰 티셔츠는 저마다 다른 얼룩을 갖고 있었다.’ 화자는 왜 점원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에게 흰 티셔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가게에서 파는 티셔츠와 화자의 옷장 서랍에 있는 흰 티셔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모든 답은 ‘약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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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약속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자는 시의 앞부분에서 ‘내일의 약속을 위해서’ 흰 티셔츠를 찾아다녔다고 말한다. 시의 끝에서도 ‘내일은 약속이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약속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만남을 위해 화자는 이미 흰 티셔츠가 옷장에 개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일 흰 티셔츠를 찾아다녔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옷을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대충은 기억하고 있다. 특히 흰 티셔츠는 ‘기본’이라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그것의 소유 여부를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저 건망증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굳이 화자를 발 아프게 떠돌아다니도록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결국 흰 티셔츠를 향한 화자의 방랑은 자신에게 흰 티셔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흰 티셔츠가 ‘약속’을 위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자의 옷장에 잠들어 있던 흰 티셔츠들은 이름처럼 서로 다른 얼룩이 묻어있었다. 물론 약속에 나가면서 지저분한 옷을 입고 나가는 건 부적절한 것이 사실이다. 상대에게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고 싶다면, 그것이 지워지지 않는 심각한 얼룩이라면, 옷을 새로 장만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화자가 가진 흰 티셔츠의 얼룩이 그리 문제적인 것도 아니었다. 치약을 묻혀 비비니 대체로 사라지는 그런 얼룩이었다. 그럼에도 화자가 새로운 흰 티셔츠를 사러 돌아다니면서 얼룩덜룩한 본인의 흰 티셔츠를 짐짓 모르는 체 했던 건 얼룩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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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는 지워지고 있는 얼룩을 ‘이목구비가 허옇게 변해가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오래 지켜보았다.’ 내 방 한 쪽 벽면에는 그동안 전시회와 여행을 다니면서 한 장 두 장 사다 나른 엽서들과 세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걸려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 그 사진 속 친구와 함께 대학생이 되어 떠난 전주에서 찍은 사진, 남자친구와 대학 축제 때 행사 부스에서 찍은 사진. 겨우 세 장 뿐이지만 이 사진들은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는 다른 채취가 묻어난다. 시간의 습기를 고스란히 흡수해서일까, 갈수록 뿌옇게 번져가는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조금 덜 선명하고 조금 덜 그럴듯하지만 조금 더 아련하다. 두 손이 만들어낸 암실 속에서 탄생해 나와 함께 낡아가는 이들은 곧 나의 역사이자, 추억이자, 시간이다. 꼭 폴라로이드 사진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진들은 나의 일부이며 앨범은 나의 분신이다. 이렇게 보면 겉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얼룩과 폴라로이드 사진은 화자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옷이 가진 얼룩은 그것을 입고 먹었던 음식이나 그것을 입고 앉았던 장소, 그것을 입고 했던 행위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얼룩 역시 사진과 마찬가지로 나로부터 떨어져 나온 하나의 파생물인 것이다.

 화자는 말한다.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가장 자주 입어 가장 쉽게 얼룩이 졌다.’ 누군가에게 어떤 옷이 잘 어울린다는 건 순전히 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내적인 의미까지 포함한다. 몸매나 피부색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과 분위기, 이미지에 따라 어울리는 옷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어떤 옷이 가장 잘 어울렸다는 건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과 잘 어울렸음을 의미하며 가장 잘 어울려 가장 자주 입어 가장 쉽게, 많은 얼룩이 졌다는 것은 곧 ‘내가’ 많이, 진하게 묻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채취가 지워지는 모습을 화자는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 눈빛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왠지 쓸쓸한 것만 같다. 누군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지우고 싶겠는가. 얼룩이 지워진 채 ‘얼굴 없는 빨래들의 환한 냄새가’ 퍼져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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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라로이드 사진과 얼룩이 풍기는 아날로그의 향기에서 벗어나 다시 약속으로 돌아가 보자. 시에서 화자의 약속이 어떤 약속인지는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보통 ‘미팅’이랑 일컬어지는 직업적인 약속일 경우 정장과 같은 형식적인 스타일을 선호하기 마련이기에 흰 티셔츠를 찾는 화자가 내일 ‘수행해야 할’ 약속은 친한 친구나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하는 격이 없는 자리일거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룩을 지우는 행위가 주는 쓸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약속이 비교적 편한 만남이라는 사실 때문에 쓸쓸함은 배가 된다. 아무리 상대가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긴장을 풀고 나 자신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을 자리라고 해도 온전히 내가 될 수는 없다는 건 얼마나 지치는 일인가. 페르소나라는 표현이 나를 감추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갑갑함을 드러낸다면 임솔아의 시 <기본>은 소멸의 행위를 통해 그런 현실이 주는 외로움과 나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기본이 뭘까. 옷가게마다 한 장 씩은 걸려있는 방금 막 공정을 거쳐 태어난 흰 티셔츠일까. 얼룩을 지우고 또 지워낸 흰 티셔츠일까. 아니면 여전히 얼룩이 묻어있는 흰 티셔츠일까. 무엇인 기본인가. 나의 기본조차 모르는 나는 얼굴 없는 빨래들에 둘러싸인 채 한없이 쓸쓸하다.



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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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미지 발췌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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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에밀리
    • 우선 한 편의 좋은 시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시만 읽었다면 잘 파악해내지 못했을 의미들을 잘 정리해주시고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셔서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흰 티셔츠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흰 티셔츠에 묻은 얼룩은 '내'가 묻은 것이고, 그것을 지운 것은 '얼굴 없는 빨래'라는 말에서, 더러움과 깨끗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콜라병을 일부러 뒤집어 씌운 것처럼 나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깔끔하고 단정하게, 그러나 나 자신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옳은지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채은님의 글처럼 그런 나의 얼룩들을 미워하고, 묻어두고, 빨아내기만 해서는 안되겠지요. 채은님의 글을 통해 얼룩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시선을 바꾸는 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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