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나는 부정한다 >,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시각예술]

"모든 의견이 동등하진 않아요."
글 입력 2017.05.0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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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없는 싸움이 때로는 의미있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와 의견이 다른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데, 이 대화가 때로는 논쟁으로 이어져 매우 불필요해 보이는 소모적 논쟁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피하는게 더 나아보일 때도 있다. <나는 부정한다> 속 미국의 유대인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가 바로 그렇게 보이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홀로코스트 부인하기』에서 영국인 역사학자 '데이빗 어빙'을 '나치 옹호자이자 히틀러 숭배자, 사실을 왜곡해 홀로코스트 학살이 실재하지 않았다고 뒷받침하는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라고 표현했다.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8살 때부터 히틀러를 추종했던 어빙은 꾸준히 홀로코스트가 거짓이라 주장해온 악명높은 역사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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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립스타트의 강연에 끼어들어 소리치던 데이빗 어빙

 
  그는 명예훼손죄로 그녀를 영국 법정에 고소했다. 부러 영국에서 소송을 건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영국은 미국과 달리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당한 그녀가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증명해야했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철저한 관리 하에 직접적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생존자의 증언도 없이 증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의 주변인들은 그녀에게 괜히 휘둘릴 필요없다며 합의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민 끝에 싸우고자 결심했다. 합의를 위해서는 그녀가 신념을 굽혀야 했기에. 이 재판은 두 역사학자간의 명예훼손 소송이 아니었다. 홀로코스트의 진위여부가 달린 역사적 재판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이들이 홀로코스트가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알기에 의미없는 싸움처럼 보였을 지 모르지만, 극단주의자들은 여전히 상당수 존재했고 혹여나의 패소는 형식적일지라도 그들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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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이 맹신하는, 수많은 왜곡된 자료들을 지적하며 립스타트 변호팀은 오랜 시간 소송을 이어갔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었고, 판결문은 334페이지에 달했다. 재판이 모두 끝난 후 립스타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모든 의견이 동등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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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간히 '표현의 자유'라는 어젠다가 등장한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애초에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존재하지조차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할 수 있을까. 그 범주라는 것이 참으로 모호하다. 미국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1979년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포리송이 기소되었을 때 탄원서에 서명한 바 있다. 그는 결코, 전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 의제와 상관없이 오로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서명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당시 유럽에서 나치주의자로 낙인찍혀야 했는데, 촘스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데이빗 어빙과 같이, 진실에 대한 왜곡이 '표현'의 수준을 넘어설 때 이야기는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왜곡된 진실을 신념으로 믿는 자가 진실을 '부정'하려 들 때, 그에게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기는 어렵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반유대주의'라는 것이 유럽에서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기에 표현의 자유 하에서 논해지기 힘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유럽은 유대인 학살의 현장이었다. 몇 십명, 몇 백명도 아닌, 600만명이었다. 독일이라는 한 국가에서 비정상적 개인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에는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가 자연스럽게 팽배해있었고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지시에 침묵으로 합의한 셈이었다. 자유를 부르짖는 유럽에서 나치의 역사는 모두에게 부끄러운 아킬레스건과도 같다. 현재 유럽에서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을 비롯한 14개국이 '홀로코스트 부정'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렇게 입을 막는 식의 법적 조치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치못할 만큼 이것이 유럽에서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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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현재, 한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그자체로 꽤나 의미있어 보인다. 국외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기록이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조차도 그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귀를 막은 이들에게 더이상 두려울 것은 없다. 영화 속 학생들이 어빙의 주장에 흥미를 가졌듯, 당연한 거짓도 진실의 탈을 쓰기 십상이다. 설사 주장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거짓임을 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거짓이 진실을 가리려 하지 않도록 이야기하고, 또 투쟁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진실은 진실로서 세워질 수 있다.

  우리는 부정해야 한다. 거짓이 승리하는 것을, 진실이 침묵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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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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