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클래식을 수면 위로, '팬텀싱어' [공연예술]

글 입력 2017.04.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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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텀싱어 서울 콘서트 포스터


날이 좋던 29일 오후, ‘팬텀싱어’ 갈라 콘서트를 다녀왔다. 지난 1월 JTBC 예능인 팬텀싱어가 종영한 이후, 출연자들의 노래 음원을 매일매일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듣고, 심지어 자기 전 팩하면서도 듣던, 거의 팬텀싱어 덕질을 하고 살았던 나로서는 너무 기대되는 콘서트였다. 그 정도로 듣고 살았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양도 받은 R석 (1층 무려 8번째열!!!) 티켓을 보물이라도 되는 마냥 손에 꼭-쥐고, 경희대 평화의 전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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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를 조금 넘기자, 결승전에 진출한 12명의 싱어들이 부르는 오프닝 곡 ‘O Fortuna’를 시작으로 2월부터 기대하던 팬텀싱어 갈라콘서트의 막이 올랐다. 이어서 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인기 듀엣 무대들 – 이동신, 곽동현의 ‘Luna’, 고은성, 권서경의 ‘Musica’, 백인태, 유슬기의 ‘Grande Amore’ , 김현수, 손태진의 ‘꽃이 핀다’ – 들을 비롯하여, 결승전에 오른 세 팀의 명곡들 – 인기현상 팀의 ‘L’amore si mouve’, ‘I surrender’, ‘El triste’, 흉스프레소의 ‘Il tempo vola’, ‘Incanto’, 그리고 우승팀인 포르테 디 콰트로의 ‘Odissea’ ,’Adagio’, ‘베틀노래’ 등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외에도 경도중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노래인 ‘Il libro dell’amore’와 ‘Per te’ 그리고 싱어들의 개인 및 합동 무대도 선보였다.

 항상 음원으로만 듣다가 실제로 들은 것은 처음이어서, 정말 감동을 하면서 들었다. 개개인의 무대도 멋있었지만, 4중창이 주는 화음과 조화,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락밴드의 연주와 어우러지는 4중창이 주는 감동은 실로 엄청났다. 방송 당시 ‘Il libro dell’amore’라는 무대를 보며 프로듀서인 바다가 ‘공간을 소리로 꽉 채우는 느낌이었다’고 평한 적이 있었는데, 무슨 느낌인지 확 와닿았다. 싱어들이 혼신을 다해 부르는 노래는 평화의 전당을 소리로 꽉 채우고도 남았다.

음원을 실제로 들었다는 감동 말고도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클래식의 허물어진 벽’이다. 팬텀싱어 결승전에 진출한 12명의 싱어들의 출신은 다양한데 그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건 성악을 전공한 성악가들이다. 우승팀인 포르테 디 콰트로의 4명중 연극인 출신 이벼리를 제외한 3명은 성악을 전공했고, 인기현상 팀에서도 락커 출신 곽동현을 제외하면 3명이 성악가이다. 팀 흉스프레소에서도 뮤지컬배우 출신인 고은성 백형훈을 제외한 2명이 성악을 전공했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성악을 배우고, 맨하탄과 이탈리아 등지로 유학까지 갔다 온 그런 성악가들이 관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스피커에 발을 올려가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동안 ‘클래식은 정적인 분위기에서, 격식있게’ 라고 생각해왔던 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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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팬텀싱어에 출연 성악가들은, 출연 전까지도 그런 성역과도 같은 클래식계의 변두리를 맴돌았다. 성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성악 클래식계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단지 엄마 따라 성악 노래 몇 번 듣고 주변 성악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주워담은 것이 다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긴 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성악은, 그동안 일종의 ‘성역’과 같은 존재였다. 스스로를 품격화하고 특정 대학들 학연 위주로 돌아가며 그들 스스로를 가두면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클래식이 되겠다’고 외치며 스스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자처한 것 같아 보였다.

 이러한 클래식계의 정체된 분위기는 출연한 싱어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최근 스타십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으며 Duetto란 이름으로 듀엣을 결성한 한양대 성악과 동문 10년지기 백인태, 유슬기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4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백인태는 “소위 엘리트코스를 밟지 못했다. 설 무대가 없더라. 새벽시장에서 일도 해봤지만 주위만 맴돌 게 되더라. 이렇게는 행복할 것 같지 않더라. 5년 간 음악계를 떠나 있었다” 고 전했다. 윤민수의 보컬 트레이너를 하던 유슬기도 ‘군 제대 후 음악으로 설 자리가 없어 노래를 접고 사업을 할까 생각’까지 하다가 팬텀싱어의 존재를 알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출처)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테너 김현수의 강연을 통해서도 이러한 성악계의 분위기를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난 3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성악을 하면 무조건 유학을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여기에 유학을 다녀오면 교수까지 해야 한다. 반드시 이런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을 난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성악가는 많아지는데 무대는 적어지고 몇 없는 교수 자리를 놓고 다투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성악은 대중과 점점 멀어진다..(중략) 그때부터 지금까지 클래식 성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악계에는 가요를 부르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이 일부 있다. 최근 주목받는 팝페라, 크로스오버 같은 장르는 성악을 대중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우리는 무언가를 정의 내리고, 규정을 하지만, 되려 그 규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제한하고 만다. 음악적인 장르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성악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지 않을까. ‘성악은 이래야해’, ‘가요를 불러서는 안된다’는 이런 편견과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것은 아닐까. 성악을 비난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 가요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대중 음악은 어때야 한다, 이래야 한다 등의 생각으로 남들과 구분 짓고 벽을 쌓고 지내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음악의 여러 장르가 각자의 자존심을 세우고 자신 장르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각자의 음악을 추구하는 와중에 실력있는 음악가들이 도태되어 가는 상황에서, 크로스오버의 장을 제공한, 팬텀싱어는 그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음악계 신인이 설 무대가 부족한 국내 음악계의 현실에서, 무대의 변두리라도 찾아 맴돌던 이들에게 무대가 되어 주었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릴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대중들에게도 팬텀싱어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클래식과 성악이라는 존재를 좀 더 가깝게,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으니. 락(Rock)과 성악이라는, 별개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두 장르가 얼마나 잘 조화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장르의 벽을 허물고 오로지 ‘음악’ 자체를 선보일 수 있는 그런 ‘팬텀싱어’ 였어서, 더 가치 있었던 듯싶다.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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