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아픔을 표현한 화가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25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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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겐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는 물체가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주는 것처럼, 그냥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 나에겐 큰 쇳덩이로 다가오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다만 그 상처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마음 속 응어리들은 아주 가끔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럴 때 마다 우린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우며 그 늪이 꽤나 깊고 진득하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의 크기가 우리에게 직접 다가왔을 때의 느낌을 네모 칸 안에 그대로 담는 화가가 있다. 바로 루마니아 출신 작가 아드리안 게니이다. 두껍게 칠한 물감 속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 다 보여주지 않는 그의 그림은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처와 닮았다. 또한 그의 그림은 사람을 압도하며 어딘가 섬뜩하고 낯설지만 마음 깊숙이까지 들어와, 섬뜩함 속에서 편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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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리안 게니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에 데뷔하였다. 그는 1977년도에 태어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정권 하에서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정신적 외상이 작품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마니아에서 철권정치를 펼치던 차우세스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차우세스쿠는 자신 스스로를 ‘루마니아의 아버지’로 지칭하며 1인 독재, 개인숭배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의 독재 아래서 루마니아 국민들은 비밀경찰에 의해 감시당하며 살아갔고 게니 또한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유의 억압과 탄압은 그의 미술 세계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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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is dead, 2009

 
사실상 그의 작품 대부분은 독재시절 루마니아 사람들의 아픔과 억압된 자유를 표현하고 있다. 라는 그림은 그림의 각도(모서리)와 한 가운데 서있는 늑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방의 모습, 어두운 색채들을 통해 생생하지만 어딘가 손상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제목을 통해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예술은 죽었다고 말하는 다다이즘에 대한 비판을 그림에 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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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 flight interio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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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e flight study 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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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 flight study, 2012


아드리안 게니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에 파이를 뒤집어 쓴 작품은 어쩌면 약간은 유머를 표현한 것으로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는 파이를 이용해 대상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대상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그들의 존재를 덮으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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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rain, 2009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은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으로 누군가에게는 거부감과 오싹함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둡고 낯선 모습을 잘 포착하여 그려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음 속 깊숙이 박혀 있는 감정을 그림에 그대로 표현한 그는, 우리들에게도 존재하는 마음의 흔적을 건드리며 묵직한 위로를 준다. 늦은 새벽 말없이 찾아와 이겨낼 수 없는 씁쓸함과 아픔을 주는 기억을 혼자서는 다룰 수 없을 때, 그의 그림을 통해 대신 표출해보는 것을 어떨까?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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