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로가 그리는 낭만, 베네치아 [여행]

그 어떤 섬도 이 곳보다 낭만적이고 아름답진 못할 것이다.
글 입력 2017.03.10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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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가 그리는 낭만, 베네치아



  작년 7월과 8월, 나는 더위로 녹아가던 서울이 아닌 유럽에 있었다.


  단기해외연수는 가본 적 있어도 해외여행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내가, 첫 해외여행으로 유럽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탈리아에 있었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 저 너머에, 중학생인 나는 세계 지리 수행평가로 이탈리아 여행 루트를 야심차게 짜갔다. 선생님은 내 아기자기한 여행 루트 카드를 반 친구들 앞에서 예시로 보여주며, 이탈리아의 특징을 잘 반영했다고 칭찬했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꼭 이탈리아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유치하지만 정말이다. 밤새 이탈리아 사진을 찾아보다 그 나라에 홀딱 반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탈리아’. 그 이름만 들어도 매우 매혹적이다. 꼬꾸라진 짙은 눈썹 같기도 한 그 나라는, 수많은 마피아의 천국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낭만이 된다. 나 역시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상하게도 나라의 수도는 로마인데, 내가 가장 가고싶은 도시는 베네치아였다. 영어로 베니스, 이탈리아 동부의 섬인 그 곳은 ‘물의 도시’라는 타이틀로 강하게 날 끌어당겼다. 어느 누구는 성수기인 7,8월에는 섬에서 물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한다며 베네치아 방문을 권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이 곳을 그렇게 지나쳐버릴 수 없었다. 어느덧 이탈리아에 여름이 찾아와 3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되었을 때, 나와 친구 Y는 다른 3개국을 돌고 베네치아에 당도했다. 첫 인상은 주황, 파랑, 그리고 보라를 넘나드는 노을이었다.





  우리가 베네치아에 머무는 날은 총 2박 3일이었다. 첫 날은 밀라노에 들렸다가 저녁에 도착해 바로 숙소에 가고, 마지막 날은 아침 7시 기차를 타야했으니 사실 거의 하루만 머물렀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하루 동안 나는 내가 지난 몇 년간 꿈꿔왔던 모든 낭만을 실현해야 했다.

  하루는 너무나 짧아 보이고, 낭만을 이루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이지만, 실은 베네치아에 숨 쉬며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낭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친 베네치아의 풍경은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을 잇는 약 400개의 다리들, 대운하를 돌고 도는 바포레토와 뱃머리가 멋스럽게 굽은 곤돌라. 작은 섬에 다닥다닥 붙은 골목골목들과, 수공예품과 가면들로 장식된 멋스러운 가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잔잔한 물결과 수많은 베네치아의 사람들. 어느 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우리는 숙소 호스트가 추천해준 명소들과,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위주로 하루 코스를 짰다. 하루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며 베네치아 수로의 한줄 긋기를 구경했겠지만, 우리에게는 고작 12시간뿐이었다. 대운하를 따라 걷다가도, 슬쩍 들어가 골목골목을 걸었다. 복잡한 골목 안에는 알록달록 베네치아만의 색깔과 벽들을 비집고 삐져나온 성당들의 탑이 즐비했다. 골목 구석에는 가게 주인들의 반려동물들이 따가운 햇빛과 건조한 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쨍하게 비추는 해님께 온몸을 드러낸 빨래들이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작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리알토 다리는 공사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이끌고 다리 옆에 서성이며 다리 주변,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물이 반사되어,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는 소리를 냈다. ‘베니스의 상인’을 쓴 셰익스피어는 실제로 베니스를 가본 적 없다는 ‘미스터리’ 글이 생각났다. 그가 상상한 리알토 다리의 풍경도 이러했을지 잠시 상상해보았다. 상인들의 목소리는 운하를 따라 정박된 배 하나 하나에 다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는 공사 중이었지만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찾은 부라노 섬은 관광객이 들끓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어느 가수 뮤직비디오에서 보았던 모습과 같았다. 숙소 호스트가 말하길, 부라노는 ‘crazy color’를 가진 섬이라고 한다. 정확한 표현이라며 친구와 웃었다. 부라노 섬 한 바퀴를 돌며 색색의 집들을 바라보았다.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건물을 다시 페인팅한다고, 지나가던 한국인 관광객이 말했다. 섬의 아름다움은 집 하나하나의 모자이크가 모여 더, 빛났다.

  베네치아의 수로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 바로 홍수다. 이 곳 저 곳 물길을 터놨으니, 비가 많이 내리는 때이면 홍수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다리는,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는 지하 감옥으로 가는 다리다.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면 어김없이 살아 돌아올 수 없으니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며 탄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카사노바가 탈출한 다리로도 유명하다. 다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리 안에서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깜짝 놀란 나는 덩달아 답장으로 손을 흔들었다. 지나가던 곤돌라에 탄 사람들도 놓치지 않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면서도 신이 나 있었다. 베네치아 낭만의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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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묘미는 의도치 않은 만남에 있다. 모르는 사람과 손인사도 그렇지만, 먼 타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은 정말 묘하다. 산 마르코 광장 앞, 산 마르코 대성당이 내준 그늘 아래서, 혼자 여행 중이던 친언니 J와 만났다. 각자 다른 여행을 계획했고, 각자 다른 루트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행지가 우연히 겹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행 중 첫 만남도 아니었다. 물론 약속 뒤 만남이었지만 반갑고 놀라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 가까운 곳에서 저녁을 하고, 쇼핑을 즐기는 여느 관광객들처럼 골목을 누비며 귀여운 수공예품들을 구경하다가 노을 지는 시간, 섬 전체에 시간을 알리는 종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저녁 8시, 베네치아 전체를 보기 위해 종루로 올랐다.

  이 종탑에서, 갈릴레이는 베네치아 총독에게 본인이 개발한 망원경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종루 사방에는 아름답게 노을에 빠진 베네치아가, 마치 그림처럼 걸려있었다. 그 것은 살구빛이었다가, 라벤더빛이었다가, 점차 붉게, 그러다 점차 어둡게 물들어갔다. 노을을 머금은 베네치아 전체는, 흰 지붕마저도 빨갛게 홍조를 띄었다. 섬 사이를 흐르는 수로는 지고 있는 태양의 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시간은 지나, 태양은 지고, 인디고는 하얀 반달을 들고 저 끝에서부터 천천히 하늘을 덮었다. 내 생애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까지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내가 보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우리는 종루를 내려와 산 마르코 광장 모서리에 걸터 앉아 광장이 하얀 백색광의 야경으로 덮일 때까지 지켜보았다. 베네치아를 떠날 시간은 성큼 다가왔고, 낮의 햇빛으로 반짝이던 수로의 낭만은 어느새 달빛의 것이 되어 있었다. 밤의 베네치아 골목은 곳곳이 가로등 없이 어둡고, 조용했다. J와도 다시 헤어져 Y와 나는 숙소로 향했다. 베네치아에서의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베네치아를 떠나기 위해 숙소에서 나온 우리는 어제 저녁 보았던 노을을 잊을 수 없다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 어떤 섬도 이 곳보다 낭만적이고 아름답진 못할 거라고, 물이 섬 사이로 흐르는 것인지, 섬이 물 사이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순 없어도 백 몇 조각의 섬들이 마치 하나의 퍼즐처럼 아름답다고. 엊저녁엔 머릿속에만 박아두었던 생각들을 떠나는 아쉬움에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토록 낭만적일 수 없던 베네치아는, 떠나는 새벽까지도 아름다운 아침노을로 우리를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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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떠난 날 저녁, 우리보다 하루 늦게 베네치아에 묵던 J는 어느 뮤지엄에서 하는 음악회에 갔다고 한다. 섬을 잇는 다리 수 백 개는 현악기의 줄이 되어 클래식 음악으로 흘렀을 것이다. 피렌체에 도착한 나와 Y는 베네치아와는 또 다른, 피렌체의 낭만에 취해 미켈란젤로 광장을 걸었다.

  14살의 나는 그런 낭만을 꿈꿨다. 한국의 낯익은 동네 골목을 떠나, 낯선 땅을 걸으며 낯선 문화에 취하고, 둥글고 뾰족한 성당의 건축양식으로 역사를 되짚으며, 함께 간 이와 함께 본 영화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 그런 낭만.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나에게 그런 낭만의 항상 우선인 도시였으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나만의 섬이다. 구글맵 전체를 키고 단 한 곳에 별표를 하라고 한다면, 14살의 나나 지금이 나나 단 한 곳을 뽑겠다. 이탈리아, 그리고 베네치아. 그 곳에 머물던 2박 3일은 무덥고 건조한 나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내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감동과 낭만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14살의 중학생처럼 이탈리아 사진을 넘겨보며 그곳에 매혹된다. 완공한 리알토 다리 앞에서 시끌벅적한 상인들 틈에 끼어있는 나를 종종 상상하며. J만 보았던 음악회에 나도 함께 하는 것을 꿈에 그리며.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항상 내 현재에, 그리고 내 미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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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모든 사진은 필자와 Y가, 혹은 J가 찍은 사진들이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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