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웃음으로 감정 에너지 분출하기, 연극 '레알 솔루트'

글 입력 2016.05.31 23: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287.jpg
 

[Information]

작품명 : 레알 솔루트
장소 :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날짜 : 2016년 5월 17일 (화) ~ 2016년 6월 12일 (일)
시간 : 화수목 8시, 금요일 5시 8시, 토요일 7시, 일요일 4시
관람료 : 3만원
예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터파크, 대학로티켓닷컴
작/연출 : 진용석


‘나는 이렇게 이 악물고 달려도 제자리, 아니, 뒤쳐지는데 왜 누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쌩쌩 달리는 걸까?’ 아무리 팔을 세게 휘젓고, 다리를 세차게 앞으로 내딛어도 나아가질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착취당하고 박탈당하며 크나큰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괴로움에 소리 지르고 싶을 땐 마음껏 소리 지르고, 울고 싶을 땐 울고, 남들에게 한 마디 할 때는 시원하게 해야한다. 글쎄… 나부터도 내 감정에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 시간표에 따라 다니며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집중하기만을 강요 받았으니, 내 감정을 에너지로 표출하는 방법을 모를 수 밖에. 인간은 자기 안에 갇혀있는 감정들과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실 우리 인간은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뜨거운 에너지를 냉정하게, 차가운 에너지를 뜨겁게 사용할 수도 있다. 

연극 <레알 솔루트>에서는 그 수단으로 웃음을 강조한다. 아무리 슬픈, 억울한, 불안한, 화가 나는, 죽고 싶은, 미칠 것 같은 감정도 한 걸음 물러나서 한번만 웃을 수 있다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그 후, 갇혀있던 감정 에너지를 보다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5월 17일부터 6월 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에서 창작집단 빛과돌이의 네번째 창작극 <레알 솔루트>가 진행된다. 연극 <레알 솔루트>는 오늘날 자본사회에서, 알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많은 걸 박탈 당하는 청년들에게 웃음이라는 긍정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 연극은 ‘슬픔을 농담하고 아픔을 웃어내는 공연’을 지향하며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분노]

우선, <레알 솔루트>에서는 내 친구들 중에 있었던 것 같은 인물 세명이 함께 한다. 그리고 각자의 분노를 가지고 있다. 위 아래 청-청 패션을 입고 나오는 ‘형석’은 현재 차압 딱지가 가득하게 붙은 주류백화점을 운영 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작고 옛스러운 주류” 백화점”보다, 길 건너 대기업이 운영하는 종합 주류 할인 “창고”가 더 크고, 인기가 많고, 물건도 많다. 알 수 없는 거대한 자본 앞에서 형석과 그의 주류백화점은 한없이 작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가 대출을 받고 (나름) 파격적인 할인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대형 자본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주류창고를 이길 순 없었다. 형석은 화나고 속상하지만 아무런 방법없이 그저 빈 가게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극장사진.JPG
 
빨간 수트를 입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민준’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 꿈나무다. 아니, 그는 아마 나무까지도 아니고 꿈”새싹”정도. 창의적인(?) 사고로 다양한 어플을 꿈꾸지만 돈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어플을 개발하고, 이전의 어플을 홍보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어플이 잘되면 돈은 들어오겠지만, 잘 되려면 홍보가 필요하고, 그러면 돈이 필요하고….. 결국엔 건달 형제들의 사채 돈에 손을 대고 마는데, 민준은 콩팥 적출 위기에 봉착했다. ‘꿈-아이디어-자본-콩팥’의 무한 순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준은 자본주의의 뒤꽁무니만 쫓아갈 뿐이다. 

세 친구 중 유일하게 기혼자인 ‘달구’는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다. 그와 어울리는 노란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서운 연상 아내에게 잡혀 사는 가장이자, 목욕탕 세신사라고. 모습과 행동으로 봤을 때 셋 중 가장 부족해보이는 달구만이 결혼했고, 아이가 있고, 직업도 있고, 돈도 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달구는 항상 성실했다. 심지어 아이가 연년생으로 넷이나 있는데 이를 보고 민준은 달구를 ‘모든 방면으로 성실하다’고 표현한다. 

형석, 민준, 달구 세 친구는 모두 보이지 않은 어떤 것들에 분노하고 있다. 사회 구조, 자본주의, 대기업, 대머리 관장님, 건달 형제들, 달구의 연상 아내… 민준의 어플 개발비와 형석의 대출금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고, 이를 화해하기 위해 달구는 ‘레알 솔루트’라는 좋은 술을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아 가져왔다. 



[웃음]

여기저기 모든 것이 다 분노투성이인 세 친구들은 ‘레알 솔루트’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며 즐거워한다. 사실 좋은 술인 ‘레알 솔루트’ 때문에 화해했다거나 분노를 삭혀 웃었다는 것이 중요하진 않다. 극 안에서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그들은, 현실에서 분노하는 청년 관객들이 <웃음>으로 아픔을 씻어내고 에너지를 발산하게끔 유도한다. 세 친구의 신분(?)으로 사먹기 어려운 고가의 술, ‘레알 솔루트’를 먹고 온 몸과 온 무대를 이용한 맛 표현. 술을 마시다 감정이 격해져 서로 셀프-슬로우모션으로 싸우는 장면. 각자의 성격과 성향을 드러내는 디테일한 의상 디자인. (달구가 신은 양말에서 작고 귀여운 병아리를 발견했다. 심쿵)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동네친구 셋이서 이야기하고 노는 듯한 언어사용까지.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분노에너지는 연극 <레알 솔루트>로 하여금 다 발산했고 쏟아냈고, 웃음으로 승화시켜버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언제나 승리만 하던 바둑기사 ‘최택’이 경기에서 지고 왔을 때 친구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그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욕 한번 안해본 택이에게 욕을 가르쳐주며 시원하게 외치고 풀자며 부추겼다. 곱디 고운 입에서 어색하게 욕을 하고 난 택이는 그동안의 부담감, 긴장, 분노 등을 다 털어낸 것 같았다. 그리고 연극 <레알 솔루트>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감정 에너지 발산을 강조한다. 화낼 땐 화내고, 웃을 땐 웃고. 



리플렛(1).jpg



[결국엔 우리도 해피엔딩]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사실 그 ‘레알 솔루트’ 술은 병만 레알 솔루트였고 내용물은 달구네 시골에서 직접 담근 담금주였다. ‘병만 레알 솔루트’술에 (이 역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다.) 세 친구는 갈등하고 싸운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 달구네 담금주가 사실은 경매가로 수 천만원에 팔린다는 사실이 들렸고,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미래를 계획하며 끝난다. 아마도 형석, 민준, 달구는 담금주 몇 병을 더 얻어와서, 형석의 예전 단골 고객들을 찾아가, 수트 입고서 정중하고 화려하게 방문판매를 할 것이다. 

레알 솔루트와 세 친구가 만들어내는 농담과 웃음은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 준다. 자본을 향한 억울함과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 꿈을 잃고 노동에 지친 육체를 깨끗이 씻어낸다. 현실적이고 유머러스한 연극 <레알 솔루트>를 보며, 시원하게 한바탕 웃어냈다. 왠지 모를 힘이 생긴다. 나도 이젠 분노를 쏟아내고 내 안의 감정과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예!



16004280-05.jpg
 



황지현.jpg
 

[황지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