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씹고 뜯고 맛보는 ‘먹는 음악’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2.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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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食) 방송이 인기다. 누군가는 단지 먹으러 다니는 것이 식상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또 쉐프가 나와 만드는 거냐며 투덜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은 요즘 방송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기 컨텐츠이다. 음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먹을 것으로 따스함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나의 예로 일본에서 유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팬을 보유하고 있는 만화이자 드라마 ‘심야식당’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결핍을 충족시킨다. 밤에 여는 그 식당은 단순히 먹거리를 제공하기만 하지 않는다. 주인인 ‘마스터’와 그 안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그들의 관계를 드러내며 그 속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따스한 눈길로 그려낸다. 지친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은 심야식당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위안을 얻게 된다. 그렇기에 요즘에 먹는다는 건,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식(食) 방송의 인기에 편승해 맛으로 즐기고, 소리로 즐기는 공감각적인 음악을 몇 가지 골라보았다. 이 속에서 심심한 위안과 공감을 느낀다면 더 없이 좋겠다. 

 가볍게 즐기는 샐러드로 시작해 과일과 따뜻한 핫초코로 마무리하는 음악 풀코스세트를 맛보러 떠나보자.


소란 리코타치즈샐러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음식들
제일 좋아하는 건 라면
삼겹살 You know that 설렁탕 You know, Good 감자전

이랬던 나
내가 너를 만나고
신세계가 
새로운 날 발견해

리코타 치즈 샐러드
버터 갈릭 브레드, 쉬림프 파스타
너 없이도 좋았을까

알리오 올리오
에그 베네딕트, 스모크 살몬
Have a glass of wine from France

맛있게 식사를 하면
떠오르는 Some dessert
제일 좋아하는 건 콜라
누룽지 You know that 쭈쭈바 You know, Good 캔커피

이랬던 나 
내가 너를 만나고
신세계가 
내가 촌스러웠지

쇼콜라, 마카롱
블루베리 수플레, 레몬 타르트
너 없이도 좋았을까
플레인 요거트
뉴욕 치즈 케익, 키위 셔벗
Have a cup of coffee or tea

 먼저, 에피타이저로 샐러드이다. 온갖 음식으로 유혹을 하고 있는 이 노래는 알고 보면 솔로 저격 커플들의 염장노래이다.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여자 만나서 취향이 바뀌었다는 얘기. 그리고 그 취향은 너 없었으면 나는 평생 촌스러웠을거라며 다행이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소란의 노래는 이렇듯 직설적이게 내뱉는 음식 속, 사랑을 적절하게 드러낸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내 입맛을 바꿀 정도로 위대하며, 신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사랑의 빠진 남자의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급스러운 리코타 치즈 샐러드부터 시작해 알리오 올리오, 스모크 살몬에 디저트 역시 무려 마카롱과 수플레라니. 설렁탕과 누룽지를 아직까지 좋아하고, 감자전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지극히 외국취향의 음식들이 약간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명백한 먹송(Song)인 것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고기반찬
고기반찬 고기반찬 고기반찬이 나는 좋아
고기반찬 고기반찬 고기반찬이 나는 좋아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라면만 먹고는 못 살아 든든해야 노랠하지

 짧다. 그리고 강렬하다. 이어지는 음식은 고기반찬이다. 46초의 짧은 음악으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정말, 홈런을 쳤다. 2010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그는 오랜 생활고로 힘겨워하다가 결국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음악을 보면 그래서 아리다. 고기반찬을 좋아하지만,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상황. 좋아하는 것을 하지만 세상이라는 현실 속에서 때로는 고뇌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길이 맞을 거야, 자위하기도 하며 그는 또 다시 라면을 먹는다. 그래서 고기반찬을 갈망하는 그의 노래는 세상에 던지는 투정이다. ‘내가 이렇게 외치고 있잖아, 여기 고기를 먹고 싶은 내가 있어. 한 번만 쳐다봐줘.’ 라며. 


장미여관 마성의 치킨

나 너를 처음 본 순간 두 눈이 멀고 말았네
달콤한 그 향기까지 (마성의 매력)
부드런 너의 살결은 우윳빛 눈이 부시고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지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자꾸만 숨이 너무 막혀서
너에게 다가가는데 (오늘밤)
이제는 참을 수 없어 제발 날 허락해줘요
마성에 빠져버려 오늘밤은 제게 그댈 맡겨줘요
손이가 너의 다리에 가슴에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밤도 너를 찾네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은 참아야 하는데
하루도 참을 수 없는 매일 밤 치킨의 유혹

난 네게 빠져버렸어 하루도 참지 못하고
아무런 일도 못 하네 (마성의 매력)
퇴근 시간만 기다려 널 보는 그 순간만을
오늘 난 칼퇴하고서 널 보러 달려갈거야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자꾸만 숨이 너무 막혀서
전화길 들고 말았네 (오늘밤)
이제는 참을 수 없어 망원동 파란 집 대문
아저씨 반반이요 하얀 무는 두 개 그리고 콜라 큰 거 주세요
손이가 너의 다리에 가슴에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밤도 너를 찾네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은 참아야 하는데
하루도 참을 수 없는 매일 밤 치킨의 유혹

손이가 너의 다리에 가슴에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 밤도 너를 찾네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은 참아야 하는데

 이어지는 메인 메뉴는 치킨. 언제부터 치킨이 그렇게나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언제 먹어도 맛있고, 심지어 식어도 치킨은 진리라며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하루에도 몇 개씩의 치킨집이 문을 열고, 닫으며. 사람들은 번호를 눌러 주문을 하고 먹는다. 정말 장미여관의 얘기처럼 마성의 매력이다. 특히 밤에 먹는 치킨은 빠져들 수밖에.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에 꼭 치킨을 시키는 엄마와 동생을 보며, 안 먹겠다고 다짐하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단아한 자태를 내뿜으며 집까지 배달 왔는데 먹어줘야지. 망원동 파란 대문에서 반반무 콜라 큰 걸 외치는 육중완(장미여관)의 모습이 정말 생생하게 상상이 된다. 그리고 육중완의 그 모습은 또한 오늘 밤의 나의 모습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치킨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미로운 목소리가 이 노래의 또 다른 포인트가 되겠다.


재주소년 귤

오랜만에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좀 차졌다
생각은 했지만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이야
지난겨울
코트주머니에 넣어두고
먹다가 손에
냄새배긴 귤
그 귤향기를 오랜만에
다시 맡았더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나네
찬 바람에 실려
떠나갔던 내 기억
일년이지나
이제야 생각나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 했었나

 든든히 배를 채웠으니 상큼한 후식으로 떠나보자. 겨울의 필수과일 귤이다. 따끈한 방바닥에 드러누워 노트북에 잔뜩 받아놓은 미드를 보거나, 한 가득 쌓아 둔 만화책을 읽거나, 그리고 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귤. 한 박스를 사다 두었지만 어느새 반 이상은 까먹고, 손은 노래진다. 상상만 해도 좋다. 그래서 재주소년의 귤은 좋다. 귤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상상을 가능하게 하니까.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이 생각을 하게 된다면, 겨울이고, 한 살 더 먹는 시간이 성큼 가까워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찬바람에 문득 올해의 나를, 작년의 나를 생각한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막연함과 그리움들도 있지만 때로 나에게 다가왔던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짓궂고 고단했던 시간들을 버텨오면서, 나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과 나의 쓰렸던 기억들도 지난일이 되었구나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결국 지나가는 것이다. 2015년 겨울의 일로, 한 때의 기억으로. 덧붙여 이 노래 역시 생각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아마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테니까. 
 중간에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왁자지껄 급식을 받고 후식으로 나온 귤 하나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해 나 역시 괜스레 웃음이 난다.


좋아서하는밴드 인상은 알 수가 없어(핫초코)

핫초코를 찾아 떠난 커피숖에서 
마주친 카페라떼 
어떤게 더 좋을까 고민고민하며 
한걸음 다가간다 

주문을 하고 카페라떼를 마신다 
한모금 마신후에 불현듯 떠오르는 핫초코 

핫초코 초코 핫초코 
주문할걸 너무 섣부른 결정이었나 
핫초코 초코 핫초코 
집에가기전에 잊지말고 Take out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돌아간다 
기분이 너무 좋아 
네게 줄 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다 
따뜻하게 데우자 

주방에 가서 전자렌지를 찾는다 
눈앞에 들어온건 엄마가 사온듯한 핫초코 

카페라떼로 사올걸 
왜하필 오늘 우리 엄만 날 생각했나 
인생은 알수가 없어 
내일은 이런일 없을거야 Take out


 마지막으로 핫초코다. 돌아갈 때 뭐 하나 마셔 줘야 든든한 기분이 덤으로 딸려온다. 그러니까 따뜻하게 마무리를 해 본다. 이 곡은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다며 핫초코를 사 올 때 느낀 마음을 듬뿍 담은 상큼한 노래다. 인생은 아이러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겨우겨우 골랐지만 엄마는 내가 산 핫초코를 사왔다. ‘왜 하필 오늘. 아 진짜.’ 이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핫초코와 카페라떼는 오늘 잠깐의 기분을 좌우하지만 더 넓은 범위에서 제한된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선택장애’는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키워드다. 오죽했으면 선택장애를 위한 메뉴를 메뉴판에 적지만, 진정한 선택장애들은 그걸 택할지 말지를 또 고민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선택으로 책임을 져야하니까. 그리고 핫초코를 두 번 먹는 것 보다 더 큰 책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마 무서운 거리라. 그래도 ‘귤’ 노래 코멘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때의 그 선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일은 이럴 일 없을 거야,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의 또 다른 알 수 없는 단면이 아닐까. 오늘 후회하면 어때, 내일 카페라떼 Take Out 하면 되는 걸!

 지금까지 먹는 음악을 들어보았다. 보는 것만큼이나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듣는 음식들. 음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언제고 다시 마주했을 때의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과 그때의 상황이 확 떠오른다는 거다. 이 다섯 개의 음악들이 작지만 큰 울림이 되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먹송(Song) 소개를 마친다. 


[정주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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