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소통이다.”
나는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할 때마다 마주치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지난 주 화요일, 배리어프리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음성해설을 들으면서는 이 문장을 온전히 체감했다.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의 에세이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을 읽은 뒤 음성해설이라는 작업이 더욱 궁금해졌다. 마침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무아트센터를 찾았다. 상영작은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뮤지컬을 보러 자주 찾던 충무아트센터의 지하에는 아담한 영화관이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혹시 이어폰으로 듣는 방식일까 싶어 헤드셋을 연결하는 곳이 있는지도 찾았다. 하지만 별도의 장비는 없었고, 극장 전체에 해설이 울려 퍼지는 방식이었다.

음성해설은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나오는 제작사 로고, 협회 이름부터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눈을 감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에 장면을 그리고, 궁금할 때 슬쩍 눈을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계속 화면을 보게 되었는데, 해설과 실제 화면이 겹쳐지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남매의 여름밤>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영화다. 음성해설이 수록되면 내레이션이 이어지기 때문에 원래 영화에 있었을 침묵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감성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진다. 배우의 표정, 몸짓, 창밖의 나무, 방 안의 공기가 언어로 옮겨지면 평범했던 생활소음이 더 생경하게 들려오는듯했다.
사실 영화를 볼 땐 감독이 의도한 것을 보기도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때도 있다. 특히 독립영화는 설명하지 않는 여백이 많기에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른 영화를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내가 놓친 것들을 음성해설이 잡아줄 때가 가장 흥미로웠다.

상영 후에는 방금 본 영화의 음성해설을 쓰시고 책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을 집필하신 서수연 작가님과 진행을 맡은 이다혜 기자님의 GV가 이어졌다.
Q&A 타임 때 나도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이 있어 용기내 손을 들었다. 영화 후반, 아이들이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음성해설은 벽에 걸린 시계와 시간까지 설명한다. 나는 시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해설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또한 다른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었을텐데, 왜 시간을 설명하기로 결정하셨는지 궁금했다. 작가님은 오후 3시에서 4시로 넘어가는 여름날의 시간대를 알려준다면 관객이 그 시간 특유의 공기와 햇빛, 여름 오후의 향수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답해주셨다. 무척 감동적인 답변이었다.

이렇게 음성해설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상상력을 전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언어와 예술의 교집합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다.
<남매의 여름밤>이 수작인 이유도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도 쉽게 상상된다는 점에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옥주’는 자신의 감정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옥주를 둘러싼 세상이 묘사될 수록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짐작하게 될 뿐이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세상은 하나의 스릴러처럼 느껴진다. 이미 답을 정해놓은 어른들의 음흉함,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헤아리지 않고 중고거래에서 마음껏 윽박지르는 남자, 가짜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팔며 삶에 무뎌진 아버지의 모습. 어른들의 이기심은 아이들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했다. 마지막에 옥주가 끝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은 화면으로 볼 때보다 소리만으로 들었을 때 더 슬펐다.

해설을 듣는 내내 참 따뜻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영화 크레딧을 보고서야(듣고서야) 박정민 배우가 재능기부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해설을 녹음할 때, 여성 주인공에게 여성 목소리를 사용할지, 남성 목소리를 사용할지의 차원이 고민된다고 한다. 즉 음성해설은 단순히 화면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와 감정을 해치지 않는 ‘연출’의 영역까지 안고 있는 셈이다. 오늘 본 <남매의 여름밤>에는 영화를 감독한 윤단비 감독이 직접 음성연출에 힘썼지만, 모든 작품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과정은 무척이나 소수이고 감독과 소통조차 어려울 때가 더 많다는 답을 GV에서 들었다. 극장에는 접근성을 고민하는 과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영화 자체에도 접근성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접근성이 사후 작업이 아니라 창작의 마지막 단계까지 고려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작품을 함께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날 GV는 보다 넓은 의미의 접근성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 영화를 대부분 원어 음성에 한글 자막으로 상영한다. 그러나 해외에는 자국어 더빙 상영이 무척 활발하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이가 어려서, 혹은 너무 많아서, 난독증이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즉 배리어프리는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사람이 문화를 함께 누리기 위한 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이에게 보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언어는 얼마나 마법 같은 도구인가? 그리고 이 마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적인 것도 있지만, 결국 태도와 수용성에서 시작된다. 타인을 상상하려는 태도, 더 많은 사람을 기꺼이 초대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고, 조금 더 고민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나누는 일. 결국 문화는 소통이자, 함께 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