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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독약을 물려라, 그러나 선택은 빼앗지 마라 - 2026 서울시향 수산나 멜키의 슈베르트 ‘그레이트’

버르토크는 편지를 남기고, 슈베르트는 사건을 시작한다

by 장유진 에디터
2026.07.20 17:47

 

 

당신이 이 악장의 ‘작가’로 임명되었다고 생각하고, 주인공의 첫 번째 행동을 지시하라. 나라면 입 안에는 독약을 물고, 품 안에는 단검을 숨긴 주인공이 위험한 도박을 시도하는 장면을 상상하겠다.

   


 

 

19일 오후 9시 41분, 버르토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세 번이나 푹 잤다. 아침에 한 번, 점심 무렵 두 번째, 그리고 저녁 9시에 세 번째로. 왜 이리 잠이 왔더라.


공휴일이었던 금요일에는 평일과 비슷하게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정말 즐겨 듣게 된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함께했다. 다시 되돌아가 봐도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이런. 토요일에는 무척이나 잠이 쏟아졌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힘이 빠졌을까. 곰곰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해 봤는데, 그냥 무언가를—글이든, 말이든, 사진이든—많이도 내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표현하는 즐거움은 늘 내가 잊고 있던 자유로움을 되찾아 주지만, 내 눈동자에만 담겨 누구도 대신 꺼내 줄 수 없는 이야기를 내보내는 일에는 언제나 고됨이 동반되는 것 같다. 하얀 바탕 위에 서는 일이 이제는 그리 두렵지 않지만, 발을 동동 구르면서까지 글자가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던 나를 이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안다.


예전에는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문장을 얻게 될지 대체로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얹어 보기 시작했다. 예측 불허의 짜릿함보다 익숙함 속에서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일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작곡가 버르토크도 그렇다.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 아주 어렴풋이나마 귀로 눈치를 챌 수 있지만, 그것도 바이올린 선율 위에서만 그렇지 피아노 협주곡 안에서 그의 이름을 만나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특유의 민속적인 울림, 마치 이명처럼 귀에 남는 특정한 부분이 피아노라는 악기 안에도 담겨 있을까? 나는 서울시향의 7월 정기 공연 목록에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 있는 것을 보자마자 다른 무엇보다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유튜브로 이 곡을 재생하기 전, 서울시향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프로그램 노트를 읽어 보기로 했다.


아……. 나는 몇 문장을 읽자마자 이 곡을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없겠다고 느꼈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디터 파스토리를 위해 작곡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버르토크 부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고, 버르토크의 백혈병도 악화되고 있는 상태였다.


버르토크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내가 이 작품의 연주와 저작권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협주곡은 아내의 마흔두 번째 생일 선물로 준비된 작품이었지만, 버르토크는 마지막 17마디의 관현악 편성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친구이자 제자인 티보르 셸리가 버르토크가 남긴 초안을 토대로 관현악 편성을 완성했다.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제3번



 

 

1악장


내가 알던 버르토크가 바이올린 위에 있었다면, 나와 굉장히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반이 오케스트라와 조금 거리를 둔 채 걸어가기를 택하더라.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 법한 걸음이 있다.


어디로 가는지는 여전히 비밀이다. 여전히? 언제 또 그랬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모르겠다. 일단 내가 만났던 그는 연주가에 따라 자신의 행선지를 좀처럼 자세히 일러 주지 않았다.


굉장히 진취적으로 단원들을 이끌어 나가면서도 공중에 떠 있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놀라울 정도로 ‘소년미’가 있다. 그러니까 굳이 재미있게 살 수 있는데 성숙해지는 길을 택하지 않은, 고도의 완숙적인 ‘날뜀’이 있다고 할까.


다만 이번에는 얇은 현 위가 아니라 건반 위에서 그와 먼저 인사를 나누어 보니, 꽤 낮은 고도로 비행하고 있다. 우리와 완전히 거리를 둔 채 일차원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한 장난기와 리듬감을 갖춘 채 이쪽으로 다가와 주고 있다.


피아노와 함께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이 악기의 곁에서는 우리가 꽤 많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신발에 작은 날개가 달려 있기도 하지만, 푹신한 밑창도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언제든 그 신발의 크기를 바꾸어 우리를 가지고 놀지도 모르겠지만……. 이 악장의 마지막 부분만 보아도 그렇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저 혼자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쪽에는 언질 한 번 주지 않고, 정적 안으로 가라앉는다.

 

2악장

 

우리는 플라네타리움에 닿았다.


무대에서 내뱉은 소리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나는 그 소리들이 천장을 향하고 있다고 상상했다. 무릎 위에 놓인 손에서 시작해 앞쪽으로, 또 대각선 방향으로 말을 건넨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버르토크는 이 악장을 꾹꾹 종이에 눌러 담을 때 어떤 시간 속에 있었을까. 아주 짧게 주어지는 정적, 그다음 피아노 건반에 귀 기울여 보자. 가사가 들릴지도 모른다. 작곡가가 이 곡을 쓰게 된 이유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다.


나는 키보드 위에 차마 얹기 어려운 슬픈 마음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돌려 말해야 할 것 같다.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편안함이 따르기를. 많이 외롭지 않기를. 길을 가다 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당분간 까만 밤을 지나야 할 이가 별들의 가장 태연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무엇보다 가장 큰 마음으로 당신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기를……. 내가 그릴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음표로 당신의 생을 축하할 수 있기를. 영원히 바라는 마음을 편지처럼 건네게 만드는 악장이 바로 이 2악장이 아닐까.


3악장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고 보아도 좋겠다. 활달한 마음이 다시 정신을 붙잡고 ‘전진’을 택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살아 있기보다, 저마다 방방 날아다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마지막 악장에 닿을 때까지 도착지는 좀처럼 알려 주지 않는다. 이 곡은 무엇을 이해해 달라기보다, 애써 붙잡지 말고 그대로 보내 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탄생 배경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설명보다 ‘염원’에 가깝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자. 그 생각을 하며 다음 곡인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9번으로 넘어갔다.

 

 

 

슈베르트,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


  

 

 

1악장

 

슈베르트에게도 교향곡이 있구나. 관악기가 제일 먼저 시작하네. 어디서부터 출발해 이곳에 닿으려나.


내가 예습하고 있는 음원의 재생 시간을 살펴보니, 이 악장은 대략 15분 남짓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받아 볼 수 있을까.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동행은 이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새로운 맵 위로 동—하고 떨어진 나는 어디에 서 있다는 감각을 받게 될까. 늘 실내악으로만 만났던 작곡가 슈베르트와 이 풍경 안에서는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서울시향을 통해서라면 일단 하늘색이 섞인 연보라빛의 바람 정도는 느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커다란 광경을 그려 내는 순간의 슈베르트는 굉장히 씩씩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음악이 이토록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씩씩함을 마냥 밝게만 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만나지 못한 세계가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멀리 가려 했던 것일까. 1악장의 넓은 풍경 아래에서 자꾸만 짧았던 그의 시간이 함께 보인다.

 

2악장

 

어둠이 자욱한 때, 통나무집 안에 모여든 이들이 목재 테이블 위에 놓인 길쭉한 흰 양초 하나를 둘러싸고 앉아 있다. 어이하여 촛불을 가운데에 두고 비밀스럽게 대화를 나누는가.


겉모양새만 보면 중요한 ‘대의’를 위한 자리임이 분명한데……. 과연 중요한 안건일까? 직접 귀를 가져다 대고 들어 보아야만 알 수 있겠다.


저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은 중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면서도 괜히 얽혀 들어갈까 봐 거리를 두고 싶은 양가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꼭 그리해야 하는가” 하며 난색을 표하는 이도 있다. 우리는 저 정체 모를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것인가. 반대표를 던질 것인가.


새벽이 다가오기 전에, 저 촛불이 다 타 버리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선택해야만 한다.

 

3악장

 

낮이다. 행동해야 할 때다.


2악장에서 어떤 ‘선택’을 했든,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춤’을 춰야 하는 때다. 비장한 표정을 지을지, 일단 지금을 즐기는 짧은 쾌락을 맛볼지. 그 또한 당신의 선택에 따라 갈린다.


무슨 사건을 만들어 낼 것인가. 당신이 이 악장의 ‘작가’로 임명되었다고 생각하고, 주인공의 첫 번째 행동을 지시하라.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할 것인가. 억울한 일을 당해 도망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을 품게 만든 운명적 상대와 조우하게 할 것인가.


나라면 입 안에는 독약을 물고, 품 안에는 단검을 숨기고 있는 주인공이 위험한 도박을 시도하는 장면을 상상하겠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은 어떤가.


4악장


개연성이 있든 말든, 클라이맥스와 결말의 순간이 다가온다. 모든 주저함을 뒤로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치닫는 순간들이다.


지금까지의 행동과 선택이 이 안에서 새로운 끝을 창조한다. 우리가 채워 넣은 무엇이든 우리를 밑바탕 삼아 날아오를 것이고, 광대한 하늘을 메워 나갈 것이다.


각자가 그려 낼 그림 안에 ‘완벽함’이 자리할 필요가 있을까. 글쎄,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채워 내는 것, 끝까지 나아갈 줄 아는 끈기만으로도 우리는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닌가.


일단 이 4악장에 닿을 때까지 졸지 않고, 이 곡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제 할 일을 다했다.


슈베르트는 이 악장에서 관악기를 이용해 여러 번 문을 두드리며 계속 우리에게 닿아오려고 한다.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이었나 싶어 마냥 반갑기도 하다.


그들은 과연 이 ‘그레이트’ 안에서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어디까지 닿아올 수 있을까.


아직은 그들의 도착지를 정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 무대에서 서울시향이 어떤 첫 번째 행동을 꺼내 놓을지, 이번에는 그 선택을 가만히 기다려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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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은 오는 7월 23일과 2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2026년 시즌 정기공연 〈2026 서울시향 수산나 멜키의 슈베르트 ‘그레이트’〉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수산나 멜키가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가 협연자로 나선다. 프로그램은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과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로 구성된다.

 


[프로그램]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제3번

Bartók, Piano Concerto No. 3 in E major, Sz. 119, BB 127


슈베르트,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

Schubert, Symphony No. 9 in C major, D. 944 ‘The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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