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otaku[御宅]
(명사) 한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사람. 또는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
나는 인생에서 절반이 넘는 시간을 소위 ‘오타쿠’로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된 일본 서브컬처 문화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 윤리와 저작권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시기였고, 인터넷 등지의 어느 곳에서든 자막이 붙어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일본어로 쓰인,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딘가 마음이 이끌리는 문장들과 수려하고 길쭉한 그림체도 놀라운데, 심지어 그 예쁜 그림들이 화려하게 움직이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로 참 많은 것에 푹 빠져, 참 많이도 집중했다. ‘보컬로이드’와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물론이고 점차 그 범위를 넓혀 한국 인디 음악, 미국의 하드 록, 흑백 만화, B급 공포 영화, K-POP 등 많은 문화가 내 삶과 함께했다. 마음 둘 곳 없이 흔들리던 시절을 나의 취향들이 지탱해 주었다.
십여 년 전에는 ‘오타쿠’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했다. 오타쿠들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어딘가 음침한 존재, 혹은 일본문화를 신봉하는 문화 사대주의자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현재, 훌륭한 퀄리티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모은다. 기업들은 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 만큼 깊이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즉 ‘덕력’이 있는 인재를 찾는다. 오타쿠라는 단어는 자신만의 취향과 감각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입었다. 나와 내 동지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오타쿠 기질은 글을 쓰고 창작하는 일에도 다분히 도움을 주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은 내가 한달음에 키보드 앞으로 달려가 앉게 만들었다. 오타쿠란 본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딱히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들을 신나게 나불대는 존재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 중, 가장 ‘오타쿠’로서의 자아가 강하게 발현된 글들을 모았다.
[Opinion] 18년 만의 귀환, 블랙 퍼레이드가 돌아왔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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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음악과 공연은 관객에게 콘서트장에서 같은 감정을 나누는 팬들과 함께 신나게 뛰고 소리치며 연결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무게가 내려앉고,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리는 해방감과 뻥 뚫리는 짜릿함이 함께 찾아온다.
이와 같이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2000년대 이모 록의 상징을 넘어, 한 시대의 감정과 정서를 공유한 밴드였다. 해체와 재결합을 거쳤고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가 오래 지났음에도 마이 케미컬 로멘스의 음악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기억되는 이유는,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가 단지 유행이 아닌 ‘경험’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이번 내한 공연은 그러한 기억과 감정을 다시금, 그것도 한국에서(!) 마주할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아트인사이트의 정식 에디터로서 두 번째로 작성한 오피니언이다. 열렬하게 사랑했던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내한 소식을 듣고, 짜릿함을 느낌과 동시에 무조건 이 주제로 오피니언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나 말고 다른 발 빠른 에디터가 먼저 이 소식을 전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매일같이 아트인사이트 누리집을 들락거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 정도로 오타쿠로서의, 그리고 에디터로서의 내 열정을 불태우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들의 대표적인 명반 'The Black Parade'에 대한 정보부터 그들 인기의 주축이었던 ‘이모(EMO)’까지, 2000년대를 살던 10대들의 심장을 저격했던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에 대해 즐겁게 떠들었다.
[Opinion] 마법소녀는 서브컬처를 입는다, 아일릿의 미학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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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릿은 풋풋한 사랑에 빠져 당돌하고 진취적인 면모를 보이다가도, 때로는 헤매고 우울하며 혼란스러운 양가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 감정의 수단으로 공포와 불안을 내포한 미학을 과감하게 활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아일릿은 현재 비주류에 속하는 이러한 미학들을 K-POP이라는 거대한 주무대 한가운데 당당히 세움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고 있다. 드림코어, 코케트 에스테틱과 같은 용어들은 대중에게 정확한 명칭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미 이미지로서 소비되고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Z세대는 이러한 ‘이미지 조각들’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매 익숙하다. 아일릿은 그 감각의 조각들을 정확히 잡아내서,K-POP 걸그룹이라는 형식 안에서 재편집하고 재조합한 독창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아일릿은 음악적 완성도 또한 뛰어난 그룹이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아일릿이 말아주는 서브컬처 미학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 본문 중에서
앞서 언급한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들의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와는 완전히 상반되게, 이번에는 레이스와 프릴을 잔뜩 매달고 춤추는 사랑스러운 소녀들이 등장한다. 바로 K-POP 걸 그룹 ‘아일릿’이다. 아일릿이 데뷔곡 ‘Magnetic’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은 후 여러 번의 컴백을 거치며 그들만의 독자적인 콘셉트를 구축함에 따라 ‘아일릿코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아일릿의 두 번째 미니앨범 ‘I'LL LIKE YOU’로 그들에게 반한 나는 아일릿의 디스코그라피와 뮤직비디오, 콘셉트 포토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일릿코어가 대체 무엇인지, 사람들은 아일릿에게서 어떤 모습을 발견했는지 궁금해졌다. 아일릿에 대해 이야기하는 패션 유튜브, K-POP 팬덤 커뮤니티, 온갖 미학으로 넘쳐흐르는 핀터레스트 등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나름대로 아일릿코어를 씹고 뜯고 맛보았다.
[Opinion] 에반게리온이 뿌린 씨앗 -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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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카이계 작품들은 전쟁과 재난 같은 무겁고 중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작품을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중심축은 결국 관계의 대한 이야기이다. 거대한 세계의 붕괴나 인류의 멸망은 단지 배경에 머무르고, 인물들의 감정과 선택, 그리고 서로를 향한 연결이 서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세카이계의 ‘세계’란 실제의 지구나 사회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좁고도 밀도 높은 우주에 가깝다. 그래서 이 장르의 종말은 곧 ‘세상의 끝’이자 ‘관계의 끝’을 의미하며, 그 속에서 인물들은 사랑과 고립, 구원과 단절의 경계에 선다. 결국 세카이계는 ‘세계’라는 거대한 말 속에 숨은, 가장 개인적인 감정의 서사를 드러내는 장르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는 매일같이 전쟁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타인과의 갈등이든, 스스로와의 싸움이든, 그 전장은 언제나 마음 안에 있다. 세카이계가 말하는 ‘세계의 멸망’은 결국 우리 내면의 균열과 회복에 대한 은유다. 거대한 재난의 풍경 속에서도, 끝내 남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두 사람의 마음이다. 세카이계의 종말은 언제나 새로운 이해의 시작이다. 우리도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타인을 향한 새로운 이해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 본문 중에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종의 ‘오타쿠 바이블’로 불릴 정도로 많은 서브컬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2010년대 이후의 오타쿠들은 다른 애니메이션에 오마주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찾아 보기도 한다. 에반게리온의 특징들을 부분 물려받아 만들어진 새로운 장르를 부르는 ‘세카이계’라는 이름까지 존재한다. 나는 20대가 되고서야 에반게리온을 접한 늦깎이지만, 에반게리온의 팬으로서 이 독특한 장르를 탐구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시작하여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최종병기 그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까지.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세카이계의 대표 작품들을 되짚어보며 하나의 흐름으로 이었다.
[Opinion] 16개의 이름을 가진 음악 천재, 에이펙스 트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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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몇 예술가는 하나의 이름, 하나의 스타일에 갇히지 않고 여러 자아로 분화되어 살아간다. 그들이 가명을 쓰고, 여러 개의 얼굴을 만들고, 장르를 넘나드는 이유는 결국 하나의 정체성으로는 예술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아를 나누고 흩트리는 행위는 자신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에이펙스 트윈의 작업 방식은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처럼 보인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에 따라 자신을 규정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름을 지우고 얼굴을 뒤틀며 질문을 거듭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질문해 볼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앞으로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싶은가?
- 본문 중에서
이 글은 오로지 '에이펙스 트윈'의 음악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남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주저 없이 써내려 갔다. 우선 전자음악계의 레전드 '에이펙스 트윈'의 곡들 중 가장 내 마음에 들고 또 가장 유명한 곡들을 골라 간단히 소개하였다. 그 다음에는 에이펙스 트윈의 가장 아이코닉한 점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16개나 되는 활동명을 그때 그때 바꿔 가며 아주 많은 음악을 발표했다는 것, 그리고 항상 기묘하게 뒤틀린 자신의 얼굴을 앨범 표지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때. 이 두 가지의 특징을 두고 보았을 , 그가 단일한 이미지로 고착화되고 인식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예술가의 탈피 행위를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시켰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글이기도 하다.

오타쿠라면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게 된 것을 다른 사람도 함께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이 성향이 유독 강하다.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으면 친구들이 꼭 봤으면 하는 마음에 꼬박꼬박 SNS에 별점과 감상평을 남기고, 문득 흥미로운 주제가 떠오르면 굳이 몇 시간을 들여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도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열정을 쏟지는 못했을 터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오로지 애정으로 해내는 것, 그것이 오타쿠의 또 다른 정의가 아닐까?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하며 아무런 보상도, 의무도 없이 자신의 애정을 기록하고 나누는 행위. 어쩌면 그 행위야말로 오타쿠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즉 오타쿠의 궁극적 목표는 '사랑의 멋짐'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단 하나의 작품이라도, 단 하나의 관심사라도 여러분의 취향 목록에 새롭게 추가되었다면, 나는 한 명의 오타쿠로서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