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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눈에 축제를 안기는 상상 여행 - 파리의 작은 미술관 [도서]

화가의 내밀한 삶을 따라 걷는 파리의 작은 미술관

by 채수빈 에디터
2026.06.02 14:18

 

 

[파리의 작은 미술관] 입체표지.jpg

 

 

"현명한 여행자는 상상만으로 여행을 한다."

    

서머싯 몸이 쓴 이 문장은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이해하는 것 같다. 여행과 상상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최선을 다해 더듬어보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에 관한 책은 상상 여행의 제곱이 된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을 읽으며 직접 걷지 않은 골목, 들어서지 않은 문, 보지 않은 벽화를 따라가 보았다. 책 속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작품보다는 이를 그린 화가의 일생이다. 독자들은 화가들의 일기와 편지, 작업실의 냄새와 빛, 화가가 가장 좋아했던 본인의 작품 등을 함께 읽으며, 그림 속 담긴 마음을 함께 상상하게 된다.


나는 대부분의 책들이 초반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낸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파리의 작은 미술관>의 첫번째 챕터를 열어주는 화가는 바로 들라크루아다. 그중에서도 그의 작업실은 책의 후반부에서도 언급될 만큼, 다른 화가들에게도 연이어 영감을 주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작은 정원과 작업실의 분위기가 늘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한다”라고 메모를 쓴 바 있다. 그가 얼마나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들라크루아는 생쉴피스 성당의 벽화 작업을 거의 끝냈을 무렵 이런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사실 그림은 까다로운 애인처럼 날 천 가지 방식으로 힘들게 하고 괴롭힌다. 넉 달 전부터 새벽이면 도망을 치듯, 사랑하는 애인의 발밑으로 향하듯이, 날 매혹하는 일을 위해 달려간다. 멀리서 보면 극복하기에 쉬워 보이는 것들도 실제로는 험난하고 끊이지 않는 어려움을 가져온다. 그럼에도 그걸 끝냈을 때, 이 영원한 투쟁이 날 쓰러트리는 대신 다시 일어나게 만들고, 나를 좌절시키기보다는 위로하고, 내 순간들을 충만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쉴피스 벽화 속에는 야곱과 천사의 씨름 장면이 있다. 그들은 대치하며 싸움을 하고 있다기보다 춤을 추듯 그려져 있다. 저자는 병약해진 노년의 들라크루아가 예술가로서 자신이 싸워온 여정을, 야곱의 싸움에 투영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들라크루아는 죽기 두 달 전, 수첩에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회화의 첫 번째 장점은 우리 눈에 축제가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고집스럽게 싸우게 했을까. 또한 천재 화가에게도, 결코 닿을 수 없는듯한 장난에 놀아나는듯한 ‘창작의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위안을 주기도 했다.


진정으로 예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찾고자 했던 들라크루아를, 보들레르는 이렇게 평했다.


“열정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었으나, 열정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가능한 한 명료하고 냉정하게 결연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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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의 대표작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렇게 책을 통해 새로운 존경심을 품게 된 화가도 있었고, 내심 웃음을 주는 미술사도 알 수 있었다. 대부호 폴 마르모탕은 사후에 자신의 저택과 모든 수집품을 예술원에 기증하고, 이어 예술원 산하 재단으로 마르모탕이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얼핏 들으면 예술을 사랑한 아름다운 결말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마르모탕이 예술원에 전부 그의 재산을 기부했던 이유는 인상주의의 태동을 인정하지 않고 전통적인 예술을 유지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에겐 안타깝지만, 오늘날에는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작품들이 마르모탕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름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바뀌고 말았다. 책을 읽으며 웃음이 가장 많이 났던 부분이었다.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던 작가였을까, 이 미술관 너머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한 번쯤 품어봤던 사람들이라면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더없이 좋은 상상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 간다는 것이 좋지만 ‘어색할’ 때가 있다. 이것이 매우 무용하다는 생각이 들 때 더욱 그러하다. 이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 미술관에 가는 의미를 짚어주는 저자의 말들을 떠올리면 좀 더 마음이 가벼워진다. 언제부턴가 미술관 관람이 취향을 증명하기 위한 숙제나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은근한 의무감처럼 느껴져 발걸음이 무거웠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미술관은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딱딱한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마법 같은 세계임을 일깨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헤매고 싶게 만들 저자의 말들을 소개한다.

 

“1층의 철문을 밀어 닫으며 밖으로 나오자, 뒤에서 다시 철커덩 소리가 크게 울린다. 마치 방금까지 속해 있던 마법의 세계가 닫히는 소리 같다. 순간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현실의 좌표가 잠시 흔들린다. 모로가 말년에 미술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다리입니다. 여러분은 지나가거나, 혹은 지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 다리가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결국 그 길 위에 서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146쪽)

 

“미술관을 향하여 걷는 길은 물리적인 길을 걷는 것만은 아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작가들이 걸었을 길, 작품이 세상에 나온 후 지나쳐왔을 길, 예측이 불가했던, 오직 시간만이 새길 수 있던 흔적으로만 남은 길들을 찾아, 상상의 지도 속에 지표를 찍어가며 걷는 것이다. 안갯속처럼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길 위에 겹쳐진다. 길고 먼 과거의 시간 속에 흘러간 길을 지금 내 앞에 다시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그에 대한 호기심, 그러나 온전히 가지 못하리라는 예감, 이런 복잡한 흥분이 내 발걸음을 바쁘게 만들기도 하고, 더러는 주춤하게도 한다.” (75쪽)

 

“관람객은 그림을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그림 속 공간 안에 풍덩 빠진 것 같다.”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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