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영웅, 뮬란. [영화]

글 입력 2018.10.1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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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모험



문학 잡지 <릿터> 13호에서는 ‘여성-서사’에 대한 담론을 전개했다. ‘빨간 모자 소녀가 온다’라는 김지은 평론가의 글을 접하면서 아동 문학에서 ‘여성’ 주인공이 모험하는 서사는 매우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에 따르면, 빨간 모자 이야기는 드물게 볼 수 있는 ‘여성’ 어린이의 모험 이야기이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성취하고 성장하는 보통의 모험 이야기와는 달리 빨간 모자 속에는 ‘대결’이 보이지 않는다. 빨간 모자는 계속 ‘실수만 ’한다. 그녀의 실수로 결국 할머니와 빨간 모자는 늑대에게 잡아 먹혀버리고 만다. 이름도 없이 ‘빨간 모자’라고 불리는 소녀의 이야기. 그녀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은 피해자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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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사들에 익숙해진 내가 <뮬란>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뮬란은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마법에 걸려 신발을 둔 채 도망치지도 않았다. 뮬란은 ‘여성’이지만 ‘모험’을 떠난다. 그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나라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이 뻔한 서사가 이토록 반가운 이유는 디즈니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아시아의 ‘여자’ 영웅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뮬란은 ‘뮬란’이고 싶었다.



영화는 뮬란이 유력한 집안으로 시집가기 위해 간택을 받으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중매인의 눈에 들기 위해 목욕을 하고, 고운 옷을 입고, 화장하는 뮬란의 모습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온다.



 

여자가 가문을 빛내는 길은

좋은 신랑 만나는 것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예쁘고 얌전하며 순종적이고 일 잘하며
아이 잘 낳고 허리가 가늘어야 해
연꽃 같은 미인을 그 누가 마다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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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은 자신을 속이는 것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녀는 예쁘고,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다. 가는 허리를 만들고 예쁘게 화장을 해서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으로 가문을 빛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채, 훈족의 침입으로 징병을 가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터로 나섰다. 나이도 많고 다리도 아픈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사랑의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뮬란은 말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되기로 한 것이다.



영웅, 뮬란



이 영화에서 뮬란을 그려내는 방식이 좋다. 뮬란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낸다. 뮬란이 가문의 수치로 남는 것을 우려해 조상들이 보낸 ‘뮤슈’는 조력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뮬란이 ‘여자’임을 속인 것처럼 ‘뮤슈’ 또한 자신이 수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고백한다. 행운의 ‘귀똘이’도 사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조력자로 등장하는 이들의 도움 없이, 뮬란은 모든 것을 해냈다.


오히려 ‘뮤슈’를 수호신으로 만들고 ‘귀똘이’에게 행운을 선물한 것은 뮬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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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은 ‘영웅’이다. 그녀의 용기와 책임감은 분명 영웅의 면모이다. 자신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에서도 ‘샹’을 구해내고, 여자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버림받았지만, 끝까지 그들을 따라가서 ‘샨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훈족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목놓아 외치는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대비된다.



여자 영웅, 뮬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위험에 빠진 ‘남자’ 장군 샹을 ‘여자’인 뮬란이 구해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만나기까지 우리는 왕자의 ‘키스’로 저주에서 풀려난 얼마나 많은 공주를 지나왔단 말인가.


‘뮬란’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남자'가 되는 방식이 아니다. 뮬란은 다른 남자 동료들에 비교해 왜소하고 약해서 처음에는 동료들의 조롱을 받는다. 하지만 뮬란은 이를 노력으로 극복했다. 훈련을 열심히 받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결국에는 높은 나무도 오를 수 있었다. 동료들도 점차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또한, 힘보다는 ‘지혜’로 돌파구를 만들어낸다. 대포를 산에 쏴서 샨노의 수천만 대군을 물리치고, 후궁으로 변장하여 궁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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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샨노를 물리치고 자신의 공을 인정해주는 황제를 꼭 ‘껴안는’ 것도 정말 뮬란다웠다. 뮬란이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과 명예는 너 같은을 둔 거라고 말한다. 단순히 영웅의 서사를 ‘여성’ 주인공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뮬란이라는 ‘여자’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


영화 <뮬란>에는 미국의 오리엔탈리즘 적 시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나 또한 이러한 주장에 동의한다. 영화의 배경과 인물들은 중국, 일본 등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모습이 섞여 있으며 이것은 분명 제작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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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제는 더더욱 우리의 ‘여자’ 영웅을 ‘우리’가 만들어야 할 때이다. 누군가가 더 잘, 편견 없이, ‘우리’의 여자 영웅을 만들어 줄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다. 한자를 쓰고 중국식 옷을 입은 인물들이 영어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아이러니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더 많은 여성 영웅을 탄생시켜야 한다. 관객들은 이제 또 다른 ‘뮬란’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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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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