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화 : 실천하는 이미지 [문화 전반]

평화라는 길 위, 예술의 역할
글 입력 2018.05.0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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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제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걸어오는 김정은 위원장을 맞은 문 대통령이 문득 “나는 언제쯤 갈 수 있을지”라는 말을 꺼내자,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월경’을 제안한 것이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잠시나마 북쪽 땅을 밟고, 다시 남쪽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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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같은 시간, 예상치 못했던 두 정상의 행동에 일산 킨텍스 프레스센터는 많은 외신기자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이들의 반응은 영국 BBC의 기자 로라 비커의 말처럼 두 정상의 행동이 “계획되지 않은 시나리오”였던 만큼 놀라움과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 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후 귀추가 어찌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장면은 마치 앞으로의 회담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알리는 가슴 벅찬 신호탄과도 같았다.
 

모든 예술은 2차화하기 이전의 언어,
바로 원초언어를 사용합니다.

탄생하는 순간 의미를 부여받는 언어,
창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언어,
그 언어는 사변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가 닿습니다.

원초언어이미지라고 합니다.

-책 <예술 수업>
(오종우 저 / 어크로스 출판) p.230
 

여러 ‘기획된’ 행사에서 두 정상의 ‘기획되지 않은’ 행동은 단연 평화라는 상징을 가장 극적으로 구현해낸 움직임이었다. 물리적으론 낮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 동안 더욱 더 높아진 것만 같은 그 ‘경계’를 넘어버린 두 정상의 발걸음. 비록 순간이긴 했지만 두 정상의 거짓 없는 의지가 만들어낸 이 장면은 곧 평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원초언어'로서 예술이었다.
 


이미지 실천 ①사랑 : 말로 다 할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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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매일 사랑한다 말해도 부족합니다.
어제의 내가 더 사랑스러운
오늘의 네가 되어서
결국 오늘의 너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말하는 사랑은
그 순간의 외침일 뿐입니다.
그래도 외치고 싶습니다.
오늘의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 워너원 옹성우

 
워너원 멤버 옹성우는 지난 2018년 3월 22일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서 자신이 팬카페에 시를 쓴 이유를 말하며 자신이 “표현에 서툰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팬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고민한 끝에 길고 긴 시를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특성상 시가 ‘오글거린다’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가 쓴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그가 말하고 싶은 사랑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 하다.
 

이미지는 시각적인 영상이 아니라
그것에서 유발되어 울리는
근원적인 사유인 것입니다.

-책 <예술 수업>
(오종우 저 / 어크로스 출판) p.233

 
"표현에 서툴기" 때문에 시를 썼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기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말한 ‘표현’이란 흔한 소통 수단인 ‘언어’를 뜻하는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예상하건대 "사랑해"라는 말이 그에겐 납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즉 "사랑해"는 그가 생각하는 만큼의 사랑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들기 어쩐지 부족하게 느껴졌고, 그는 자신의 기준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시를 썼다. 결과적으로 그는 표현에 서툰 사람이 아니다. 단지 표현할 시기를 잠시 유보했을 뿐.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체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제작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진심을 단순하게 전달하기 힘들었던 자들에 의해 예술은 더욱 발전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아내를 화폭에 담아낸 예술가 샤갈, 모네까지 갈 필요도 없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만큼 흔한 경우가 아니던가. 우리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하고, 꽃다발을 산다. 모두 사랑의 이미지다.
 


이미지 실천 ②평화 : 사랑만큼 간절해서  


필자가 구태여 '사랑'의 예를 끌어들인 이유는 사실 우리는 보편적으로 평화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평화라는 개념을 사랑만큼 일상적이고 가깝게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되뇌어보면 사랑과 평화 사이에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두 단어를 붙여보면 실감이 난다. '사랑과 평화', 꽤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소 첨예하게 다뤄야 하는 주제이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평화를 좇는다는 명제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평화를 실천하는 방식이 완전한 합일이냐, 어느 정도의 거리를 허락한 공존이냐, 역시 지금으로선 논외의 주제다.

중요한 건 '평화' 역시 사랑만큼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평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평화하지 않았을 때 안게 될 위험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이룩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낀다. 이 '느낌'은 단순한 개개인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역사가 가르친 결과일지도 모른다. '평화'라는 단어가 지녀야 할 것 같은 완전성, 그것이 품은 환상과 책임 등. 아마 이 무거운 무게를 배분하는 방법은 단계적 실천, 즉 징검다리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인 이미지는 각각의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
 

“인간 존재의 잃어버린 원천을 다시 찾으려 했다.
말이 한때 가졌던 신비한 역할이 사라진 오늘날,
이미지는 말보다 그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상징이 여럿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남북 정상이 백두산과 한라산 흙을 섞어 남북이 갈라져 있던 세월만큼 자란 소나무를 심고 한강과 대동강 물을 합쳐 뿌린 일, 2차 정상회담 이후 흐른 11년과 같은 나이의 어린이들이 두 정상을 맞은 일, 그 어린이들이 들고 있던 ‘평화’라는 꽃말의 꽃다발 등. 단적으로 말해서 굳이 이같은 의식을 치르지 않았어도 남북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목표하는 곳에 다다르는 동안 밟은 징검다리를 잊을 셈인가? 아니, 그럴 수 없다. 상징은, 이미지는, 예술은 그래서 실천이다.
 


이미지에 응답하라 : 두 개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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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평화의집 대기실에 걸린 두 개의 시계보고 가슴 아파"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
"우리가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

- 2018. 04. 27 김정은 위원장


예상하건대 회담장으로 향하는 곳곳에 ‘하나’, ‘평화’ 등을 의미하는 여러 이미지를 맛보고 온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의집 대기실에 걸린 두 개의 시계를 보고 가슴이 아팠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두 개의 시계’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질적인 이미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맥락에 맞지 않는 이미지는 불편했을 것이다.
 
아마 김 위원장에게 평화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이 이미지는 아무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지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지에 담긴 뜻을 알아봐주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을 통해 예술의 가치는 빛을 발하게 된다. 묘하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이미지를 보고 행동하는 대상 또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에 제대로 응답한 인간들을 통해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 목사 A. J. 무스트
 

지난 2일 DMZ 확성기 철거가 시작되었다. 뉴스를 보며 어느 순간 헷갈렸다. 눈으로 보는 이 장면이 평화를 향한 실천인지, 평화라는 상징적인 이미지인지.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뒤섞이는 이 과정은 평화라는 길이 될 것이다. 일각에선 제3차 정상회담 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1992년 발표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래 남북사이의 발표문에 비핵화가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아직 '가는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평화에 조금씩 응답하는 중이다.



가을에 만납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라는 말, 이 말은 오랜만에 지인을 우연히 마주치거나 연락이 닿았을 때, 가장 무난하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는 방패이다. '언제'라는 기약 없는 시기를 말해야 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곧바로 '밥 한번 먹자'라는 의지의 표현이 붙는 바람에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지금까지 남과 북도 그랬다. "다시 만나자"는 선언은 1,2차 남북정상회담에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명 '비핵화 프로세스'는 정전협정 65주년인 다가오는 7월 27일 전후, 남북미 3개국 혹은 남북미중 4개국을 중심으로 종전을 선언할 수 있도록, '그 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 2018. 05. 02 한겨레 신문

 
앞으로 한중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거쳐야 할 단계가 여럿 남아있다. 계속 주시하되 판문점 본래의 상징적 의미도 바뀌어버린 지금, 평화라는 길에 대한 기대를 조금은 더 품어도 될 것 같다. 예술은 이 길의 후방에서 많은 이들의 염원을 담아내는 지지대로, 때론 적극적인 실천을 운반하는 계기와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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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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