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 연극 < 하이젠버그 >

글 입력 2018.05.0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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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 종종 ‘아무것도 없음’을 상상합니다. 내 옆에 누워 잠이 든 연인이나 엄마의 살결을 만지면서도 말이죠. 부드럽고, 연약하고, 따뜻한 냄새가 나는 몸을 쓰다듬으며 엄연히 앞에 존재하고 내일도 내 앞에 존재할 거라 말하는 그들을 굳이 지워내요. 잠들기 직전에 보이는 창문에 스민 빛, 내 곁의 사람,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내가 감각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라고 상상하는 겁니다. 우주의 실수로 내일이라는 하루만 사라지고 모레가 바로 오는 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늘 뱉는 ‘언젠가’, ‘내일은’, ‘주말에’ 같은 모든 다음이 사라지는 거예요.
  
많은 경우에 나는 남겨질 사람들을 가여워 해요. 그리고 어떤 날은 미발표인 채로 버려질 내 시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나 애정 같은 것들이 생각나 눈물을 훔칠 때도 있어요. 내가 다치게 한 얼굴들도 자주 걸리죠. 후회 없이 쉽게 회상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정말 가끔이긴 한데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순간들도 있어요. 물론 그런 편안하고 충만한 밤은 드물죠. 그래도 분명히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믿음이 들 때요.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말이에요.
그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해요.”

얼마 전에 본 연극 <하이젠버그>에서 만난 대사, 죠지번스의 대사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짝 고쳐 말하고 싶어요.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말입니다. 그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판단하지 않음’을 신조로 밀고 살까 봐요.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두려움은 뭘까, 왜 불안한 예측을 해야만 하는 걸까. 질문들을 발목에 묶고 매일 밤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일. 적당히만 하려고요. 삶이 내게 ‘내일’을 선사하는 자비를 언제 그만 둘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거나 지금 난 그 자비 안에 있어요. 이 폭력적인 자비 안에 있어요. 그래서 연극을 보는 내내 부러웠어요. 우연하게 만났지만 연인 같은, 부모 자식 같은, 남매 같은 관계에 이른 죠지와 알렉스처럼 살고 싶어요. 아, 오해 말아요. 그들은 내일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충동에만 의지해서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 사람들은 서로를 책임지거든요. 당장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인데 (심지어 알렉스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입니다)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든, 연민이든, 배신감이든, 모멸감이든 거리낌 없이 나눠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자기 자신을 믿지 상대방을 멋대로 믿어버리거나 판단하지 않거든요. 재미없는 사람이라거나, 돈 보고 접근한 사람이라거나, 마음도 늙은 노인네라던가, 행실이 바르지 못한 계집이라고 판단하지 않거든요. 정말로 어려운 일이죠. 좀 더 크게 볼까요. 죠지와 알렉스처럼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내 삶과 나와의 관계를 더 이상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도 복잡하고 어려울까요. 맞아요. 어렵죠. 분명히 쉽진 않겠지만 ‘알 수 없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횟수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고 넌지시 말해보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를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내일을 궁금해 할 이유도 없겠죠. 오늘 하루가 반드시 어떤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도 없겠죠. 하루 단 한 번의 모험만으로도 충분하다면요. 죠지와 알렉스 각각에게 하룻밤의 섹스, 미국행 표가 너무 귀중했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하루하루의 선택들이 가장 컸으면 해요. 어디로, 어떤 속도로 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저 사는 일.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아니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주는 사람 한 명만 곁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럼 나는 그 순간을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만들 수 있어요. 아무 시름없이 눈을 감았던 편안한 밤처럼, 꼭 그 밤처럼 꿈꾸듯 살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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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버그
- HEISENBERG -


일자 : 2018.04.24(화) ~ 05.20(일)

시간
화-금요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3시, 6시
일요일 오후 4시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5,000원

주최/제작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90분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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