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안정한 미래를 사는 현시를 그린 현실드라마,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연극]

글 입력 2018.01.14 13: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rrrdfff.jpg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 극단 산수유 제 11회 정기공연 -

이주원   김선영   주인영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
원작 <오버외스터라이히>를 각색.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1.21)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욱신거려서 괴로웠다. 어느 한 장면이 아니라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그러니까 그리 좋지는 않은 기분으로 무대 위 두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지금껏 본 연극 중 가장 많이 소리 내서 웃은 연극이라는 거다. 어떤 대사에서는 웃음이 쉽게 그치지 않아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훔쳐내야 했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격동하는 마음을 붙잡으며 보고나니 이 연극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너무나도 인상 깊게 보았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그 자체고, 삶 그 자체다. 선인도, 악인도, 위인도 없다. 잘한 사람도 잘못한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 편을 들 수도 없다. 그래서 괴로웠다. 어느 인물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다른 인물이 눈에 밟히고, 질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과 생각을 어디에도 기대어 고정시키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그들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슬퍼지더라. 어떤 (어쩌면 내가 그간 보아왔던) 서사와 서사 속 사건은 보통 아쉬움이 남거나, 감히 아는 체하며 인물에게 조언하고 싶거나, 혹은 다른 방향의 결말은 어땠을지 가정하기 마련인데, 그러면서 조여 오는 희비극의 숨구멍을 찾기 마련인데 이 극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최선인 거다. 그러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볼 수밖에. 지극히 있을 법한 남편과 아내와 그들이 맞닥뜨린 상황에서 오는 당혹감. 결코 비극적이라 할 순 없지만 그들에게만큼은 최악인 상황 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행복한 상상, 혹은 몽상. 그 사이에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과 비죽이다 끝내 삼키고 마는 울음. 그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극이라기엔 우리의 나날과 너무도 닮아있지 않은가.


2017-12-11 18;11;16.jpg
    

  볕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물류배달부 남편과 비정규직 판매직원 아내는 하와이 반짝이는 해변과 불 붙여 요리하는 식당 어느 메뉴를 마음껏 상상하며 언젠가 하게 되리라 행복해하는, 그러나 본인들의 처지를 무서우리만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 부부다. 그들에게 아이는 예고 없이 찾아왔고 두 사람은 아이를 낳을지 지울 것인지를 두고 갈등한다. 이성적인 모습으로 단칼에 아이를 지우자 말하는 남편과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지켜내 보려는 아내의 다툼은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맹렬하다가 한순간 참담해진다. 머리를 맞대고 일상을 돈으로 계산해보는, 계산해야만 하는 장면이 바로 그 순간이다. 만족이나 행복에서 오는 가치는 환산할 수 없고 그들에겐 그럴 여유도 없어 보인다. 보험료, 부모님 용돈, 화장품 값, 담배 값, 가스 비, 특별할 거 없는 일상적인 것들을 적어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서로를 원하고 ‘우리’의 행복을 원하고 자신의 인생을 원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데 시린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저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내가 아직 이런 묵직한 이야기들을 담아낼 그릇이 못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만 반복해야 했다.

*
   
  사회를 그득하게 담아낸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독일 극작가 프란츠 크사버 그뢰츠의 <오버외스터라이히>를 각색한 극이다. 한국 극처럼 설정하고 각색하여 전혀 외국작품 같지 않게 흐름이 유연했다. 또, 각색 덕분인지 원작부터인지 대사가 너무 좋았다. 곧 원작을 읽어봐야겠다. 그걸 전달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했다. 아마 유쾌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데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입담이 팔할일 것이다. 이 연극의 강점은 끔찍한 현실을 담아냈는데 신파적이지 않고, 잔뜩 슬프게 만들면서 그 방식이 과장과 해학이 아니라 덤덤한 인물들의 대화로 이루어진다는 거다.

  짤막한 장면들을 잇는 극중 시계초침소리가 시간의 흐름에서 압박처럼 느껴졌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이 때문에 과연 이게 극서사가 맞나 싶어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조각 낸 침대와 작지만 중요한 소품 활용도 인상적이었다. 제목이 주는 반전 역시 놀랐다. 매력적이지 않은 부분이 없다.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떠올릴수록 뜨겁게 목이 메는 극이다.


산수유_경남_웹전단.jpg


[김지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