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리 로랑생의 삶을 거니는 시간- 마리 로랑생展

글 입력 2017.12.3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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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기쁨 등의 인생의 굴곡, 나아가 삶 그 자체가 작품으로 나타나는 것만큼 예술가다운 일이 또 있을까. 전시장을 걷는 내내 마리 로랑생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리의 작품엔 그 순간 그가 고뇌하고 있는 것과, 그의 심정,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모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마리는 삶을 예술로 드러내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천상 예술가라는 것과, 그의 예술은 그와 함께 발전해왔다는 것이었다. 작품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는 화가, 마리 로랑생. 그의 일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미숙함의 또 다른 이름,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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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1908년경/ 캔버스에 유채/ 41.4x33.3/ Musée Marie Laurencin


청춘의 시대는 단지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림의 세계에 막 뛰어들어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마리 로랑생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스타일의 유화는 물론,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받아 마치 피라미드에서 볼법한 느낌의 작품까지. 청춘의 시대에 걸려있는 그림들엔 아직 로랑생만의 스타일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뿐이다. 말 그대로 여기 저기 부딪혀보며 성장하는 청춘, 그 불안정했던 시기처럼 말이다.



아픔 속에 성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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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ée Marie Laurencin


열애의 시대는 점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춰가는 로랑생의 모습이 담겨있다. 청춘의 시대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그의 그림 스타일이 점점 구체화돼 갔다. 검은색 윤곽선이 존재하긴 하지만, 유화임에도 마치 수채화처럼 윤곽은 배경에 흐릿하게 녹아들어있었다. 인간의 눈을 그리는 방식도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그가 사랑해마지 않았고 평생을 사용해왔던 파란색과 분홍색도 눈에 띠기 시작했다.


책읽는 여인, 1913년경, 캔버스에 유채, 91.5x72, Musee Marie Laurencin.jpg
책읽는 여인/ 1913년경/ 캔버스에 유채/ 91.5x72/ Musée Marie Laurencin


열애의 시대는 그에게 있어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다. 영혼의 연인이던 아폴리네르와의 결별, 평생의 멘토였던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이 사생아라는 깨달음, 독일 남작이었던 오토와의 결혼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일들을 겪어서일까. 이 시기 그의 그림은 이전 시기의 그림보다 훨씬 깊이가 생겨있었다. 특히 ‘책 읽는 여인’은 삶에 대한 그의 고뇌 없이는 나올 수 없던 작품이었다. 또 이 시기에 마리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앎과 동시에 ‘남성’이란 존재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게 돼 자신의 작품들 속에 남성들을 모두 여성으로 바꾸게 된다. 여러모로 열애의 시대는 우리가 기억하는 ‘마리 로랑생’을 만든 시기였던 것이다.

망명의 시대는 그의 삶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다. 독일 남자인 오토와 프랑스 여자인 마리의 결혼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상황으로는 최악이었다. 하필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전쟁이 발발해 마리부부는 프랑스로 돌아갈 수도, 독일로 갈 수도 없었다. 스페인 망명생활 동안 남편은 술과 여자에 빠져살았고 설상가상으로 아폴리네르는 전쟁 도중 얻은 부상과 스페인 감기 때문에 사망했다. 여러모로 마리에게 있어 망명의 시대는 끔찍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망명의 시대의 그림엔 전반적으로 검은색과 회색이 자주 쓰였고, 이전 그의 작품에서도 지배적인 정서였던 ‘우울’의 정서는 한층 강화됐다.  무표정 속에서도 작게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더 이상 미소 짓지 않았다. 회색 베이스임에도 생기를 띠던 피부엔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여전히 파란색과 분홍색을 자주 쓴 것이다. 이는 ‘프랑스에 대한 그리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타포로 사용됐다. 그리고, 그 꿈은 이뤄져 그는 마침내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마침내 완성 되다


키스, 1927년경, 캔버스에 유채, 81.2x65.1, Musee Marie Laurencin.jpg
키스/ 1927년경/ 캔버스에 유채/ 81.2x65.1/ Musée Marie Laurencin


오토 남작과의 이혼 후, 성공적으로 프랑스로 복귀한 마리 로랑생은 예술가로서 전성기를 맞는다. 바로 열정의 시대다. 프랑스 예술계는 그를 두팔 벌려 환영했다. 성대한 개인전을 치르는가 하면,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하나쯤은 소장하는 게 미덕처럼 여기지기도 했다.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의 입가엔 다시 미소가 돌아왔고, 피부엔 생기가 돈다. 피부톤만 보더라도 사랑스러움이 묻어나올 정도다. 열애의 시대 때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던 색상은 이 시기에 더욱 다채로워진다. 윤곽선이 아예 사라지고,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둥근 그의 그림 스타일이 완성된다. 화려하고, 밝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의 초상화에서도 드러나는 그 행복이, 그림 전체로 전달돼 온다.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캔버스에 유채, 97.3x131, Musee Marie Laurencin.jpg
세명의 젊은 여인들/ 1953년경/ 캔버스에 유채/ 97.3x131/ Musée Marie Laurencin


이후 그는 발레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맡거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이윽고 성숙의 시대, 즉 나이가 꽤 들었음에도 그의 그림엔 여전히 열정이 묻어났다. 그 열정은 10년을 그렸다는 ‘세명의 젊은 여인들’에서 극에 달한다. 구도는 이전보다 단순화됐지만 그의 그림에선 이제 화가의 노련함마저 느껴졌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잘 쓰지 않던 빨간색과 노란색도 쓰게 돼 색채는 더욱 화려해졌다. 하지만 그의 그림 스타일이 열정의 시대와 같지는 않다. 다시 윤곽선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인이 풍겨내는 분위기도 이전보단 성숙해졌다. 완성에 가까운 상태임에도 마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 손엔 장미를, 한 손엔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쥐고 죽었다는 그는. 그 세기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사랑 없이 그 스스로만으로도 온전히 완성되고,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또 다시, 마리 로랑생


2시간여의 전시 관람동안, 청춘의 시대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 청년은 어느새 관록과 노련함을 자랑하는 노인이 돼 있었다. 그 시간동안 마리는 많이 슬펐고, 또 아팠으며, 수없이 많은 고뇌를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사랑스럽다’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그 모든 아픔들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기어코 이겨냈기 때문이리라. 마리의 속에서 예술은 때론 그를 가장 괴롭히는 고민 그 자체이기도 했으며, 그를 지탱하는 원동력이기도 했고, 그 아픔을 표현해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예술은 결국 마리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연인임과 동시에, 마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마리의 그림을 보면서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그 속에 녹아들어있는 우울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나는. 마리 로랑생이라는 한 여인에게, 아니 한 화가에게.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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