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유가 선물인 나라 괌, 하파데이 [여행]

느긋함에 의미가 있는 괌 여행기
글 입력 2017.08.2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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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괌 여행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자면 ‘여유’라고 말할 수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빨라야 하는 것이 미덕인 한국에서의 생활과 느림이 당연한 나라 괌에서의 생활은 아주 달랐다. 오늘은 괌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느림에서 오는 남모를 여유와 위로에 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여유가 선물인 나라 괌, 하파데이
* Hafa Adai! - 괌에 거주하는 차모로 원주민 말로 안녕이라는 뜻


  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낯설지만 설레는 동남아의 향기가 느껴졌다. 향긋하면서도 비릿한 꽃의 향, 물 먹은 습기의 냄새가 괌 공항에 퍼져있었다. 하지만 이런 설렘도 잠시 우리는 괌에 입국하기 위해 긴 대기 줄을 기다려야 했다. 엄마와 함께한 여행이었는데, 엄마는 이미 조금 지친 상태였다. 비행기를 타는 그날따라 유난히 엄마의 업무가 바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비행기를 타기 5분 전까지도 업무에 관련된 쏟아지는 문의를 받으며 분 단위로 울리는 전화, 카톡을 감당해야 했다. 너무 바쁜 업무로 두통을 느끼는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 졸인 나 또한 약간은 피곤한 상태였다. 그런 우리에게 빠른 것 같으면서도 느릿한, 함정 같은 괌 공항은 반가우면서도 조금 답답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느릿하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있는 괌 공항 직원들 덕에 긴장은 조금 풀린 상태로 입국할 수 있었다.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업무를 하면서도 저렇게 느릿할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즐거워보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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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유롭게 비행기 사진을 찍을 때도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완벽히 ‘휴식’이었다. 그래서 따로 차를 빌리지도 않았고 미리 가보고 싶은 곳 일정도 짜지 않았다. 나도 사전에 괌에 대한 기본적 정보는 알아갔지만, 일부러 더 많은 정보는 찾지 않았다. 현지의 분위기도 직접 가본 후 경험하고 싶었다. 기대치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지, 괌은 업무와 일상에 지친 엄마와 나에게 꽤 큰 여유를 가져다줬다. 조식을 먹으러 가는 동안 만나는 호텔 직원들의 웃음, 고된 청소를 하면서도 눈만 마주쳐도 인사하는 하우스 키퍼들. 그들은 ‘하파데이’라며 인사하곤 했는데, 하파데이는 괌에 거주하는 차모로 원주민 말로 안녕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와이로 치면 알로하와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 어쨌든 헬로우와 다를 것 없는 이 인사는 괌에 머무는 내내 귀로 들려오기도, 또 내 입으로 가장 많이 말하기도 했던 말이었다.

  이렇게 매일 매일 반가운 인사를 외치며 엄마와 나는 조금 늦은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산책하듯 걸어서 호텔 주변을 구경하고 또 심심하면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냈다. 정해진 시간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불안하기도 했던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활에 적응해 갔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뭐하지?’였는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그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놀 것 없이 그저 단순해 보였던 수영장은 밤이 되면 달력 표지 사진처럼 멋진 야경을 보여주기도 하고, 미끄럼틀이나 튜브 같은 부가 시설이 없어도 당장 빠져서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국적으로 살랑거리는 야자수가 나를 더 유혹했을지도 모른다. 피부가 예민해 평소에는 수영장 물은 되도록 피하는 나인데, 한국에서 미리 처방받은 약을 매일 먹으면서 잘 못 하는 수영도 했다. 삼촌이 가르쳐준 개헤엄을 치기도 하고, 엄마와 수영장 안에서 둥둥 걸으며 대화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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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왜 짠하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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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밤 수영도 하게 만든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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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를 벗어나 산책하는 길,
저 멀리 보이는 공룡 같은 캐릭터는
괌의 마스코트 '괌질라(GuamZilla)'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만들어놓은 포토북을 보지 않으면 나와 엄마가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위의 패턴이 계속되어서 다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유일하게 했던 건 돌핀 투어였는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돌고래도 보고 스노쿨링도 하는 거였다. 대부분 돌고래를 본다는데 우리는 돌고래를 보지 못했다. 대신 스노쿨링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수 많은 물고기들을 봤다. 엄마는 아기도 아니고 돌고래를 못봤다고 서운해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아쉬웠다. 그래도 내가 태어나서 봤던 것 중에서 가장 많은 열대어를 봤다는 것에 만족했고, 그 순간을 엄마와 함께했다는 것도 좋았다.

  이렇게 괌은 우리에게 느긋한 휴식을 주기도 하면서 반대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압박받으며 살았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유난히 괌 여행에서는 내가 받았던 그동안의 압박감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또 비행기가 이륙하기 바로 전까지 업무에 시달리던 엄마와 느긋한 웃음을 짓는 엄마의 얼굴이 겹치기도 했다. 고생한, 고생할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어지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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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핀 투어, 돌고래 대신 열대어를 많이 본 것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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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지막 괌의 모습, 여유도 안녕.


  마지막 날, 괌에서 픽업을 담당했던 가이드분께 물었다. 우리는 괌에서 지내는 동안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적이 없다고. 혹시 급한 일이 생길까 싶어 한국에서 빌린 와이파이 기계도 거의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지냈다고. 원래 괌이 이렇게 여유롭냐고 물었다. 가이드분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괌 은행에 업무 보러 가면 얼굴이 빨개져서 나와요.” 무슨 말인가 하니, 괌은 워낙 여유로운 곳이라 한국처럼 빨리 업무처리를 해주지 않아, 괌 은행에 업무를 보러 간 한국 사람들은 화가 나서 나온다는 말이었다. 밥도 교대로 먹는 한국은행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전화도 다 받고, 처리할 일 있으면 느긋하게 해결하면서 업무를 봐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식당 예약을 하고도 20분이나 더 기다려 약간 화가 났던 전날의 내가 생각나 공감이 갔다.

  아쉽게 괌을 떠나와 한국에 도착했다. 지방행 버스 승차장이 헷갈렸던 엄마는 나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공항 버스표 부스 안내원에게 길을 물었다. 두 번이나 못 들은 척을 하던 그 안내원은 “왼쪽으로 가세요.”라는 말만 했다. 직원의 왼쪽인지, 엄마의 왼쪽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버스에 앉아 확인한 핸드폰에는 잘 도착했냐는 아빠의 카톡이 와 있었다. 아빠는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해 한국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충전을 끝내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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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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