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udinos, 우리는 듣는다 -2

2 -자연과 풍경
글 입력 2017.08.2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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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음악과 풍경


  첫곡 'Chant'는 크로아티아에 있는 Omis라는 도시에서 쓰여진 곡이었는데, 앞으로는 터키옥색의 투명한 바다가, 뒤로는 가파른 산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도시는 오랫동안 해적들의 은신처였다고 하는데요, 이야기를 읽고 들으니 해적들이 바닷가에 배를 정박하고, 육지쪽으로 은신처를 짓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도 같았습니다. 해적 중에서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본 익살스럽고 열정적인 느낌보다는, 바이킹에 가까운, 조금 더 차분하고 어두우며, 날카로운 느낌의 해적들이 떠오르는 곡이었습니다.

  짙은 회색과 검은색의 천, 깊은 남색 바다, 은회색의 물안개가 둘러싼 고요한 마을. 후에 인터넷에서 찾아본 Omis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밝고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어째서 해적들이 이곳을 은신처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가파른 바위산이 요새처럼 등을 감싸고 있고, 도시는 안락하며 앞으로는 만처럼 둥글게 산에 둘러싸인 형태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안전한 도시였습니다. 언젠가 이곳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번에 들었던 음악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여행중에는 날씨가 화창해야 좋겠지만, 이곳에서는 날씨가 흐리더라도 오히려 이 음악이 떠올라 그 나름대로 즐겁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곡은 마찬가지로 바다와 산이 둘러싼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른, 그리스 코린트만의 해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폴 에릭 연주자는 1월의 어느 날, 사람이 거의 없이 텅 빈 마을을 거닐다 해변가에서 기타를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해지지 않은 선율을 연주하다보니 어느순간, 한 테마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후반부는 핀란드에 돌아와서 쓰여졌지만, 초반부를 비롯한 대부분은 그날의 바닷가에서 즉흥적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해설을 들은 후 곡을 들었기 때문인지, 회색 자갈들이 깔린 쓸쓸한 해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떠오른 것 같았습니다. 'Somewhere', 어딘가. 목적없이 걷던 해변 어딘가에서 마주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이름이 'Somewhere'일까요?





  개인적으로 폴 에릭 연주자의 곡들 중에서 가장 집중했던 곡은 세 번째 곡이었던 'Too late to say goodbye'였습니다. 이 곡은 프로그램에 쓰인 설명이 가장 짧은 곡입니다.

Too late to say goodbye는 2013년 여름에 쓰여졌다. 이 곡은 우리가 무엇인가 읽어버리고, 떠나 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슬픔, 그러나 또한 그로부터 얻게 되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는 'Goodbye'에 대한 슬픔의 감정이 많이 담긴 곡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더 부드러웠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조금씩 더 명랑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실로부터 얻게 되는 자유'. 상실의 아픔 이후에도 자유가 있을 수 있을까.

  저는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다녀 초등학교만 세 군데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고, 연락이 닿는 어린시절 친구가 많지 않습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완전히 연락이 끊어질 때 내심 아쉬워하면서도, 이별 자체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헤어짐에 무던한 편이었습니다.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순간부터인지 좋아했던 사람과 자연스레 멀어지거나, 애정을 주었던 것들이 사라질 때에 상실감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제가 이별에서 그런 상실감을 느낀다는 걸 성인이 되고서야 제대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있다고 하죠. 하지만 새로운 인연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작별인사를 하고 나면 그 인연 안에 있던 소중한 추억들까지 모두 놓아버리고 잊어버리는 게 되어버릴까 두려워 쉽게 작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Too late to say goodbye는 그런 의미였을까요. 마지막까지 꼭 쥐고 있던 것을 놓아주고, 상실감이 주는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늦었지만 당신을 보내줄게요,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을 나는 믿습니다. 작별은 아직 너무나 어렵지만, 명랑하게 마무리되는 '때늦은 작별인사'를 알게 된 덕분에 이제부터는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Angel's Lament', 천사의 애도. 앞선 곡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나머지, 제대로 듣지 못해 아쉬웠던 곡입니다. 하지만 심란한 마음을 달래주듯 부드럽고 잔잔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은 생각했던 그대로이면서도, 기대와 전혀 다른 공연이었습니다. 상상했던 분위기 그대로의 공연장, 그대로의 잔잔한 음악들, 조용한 관객들. 그러나 기대 이상으로 아늑했던 분위기와,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아름다운 음악들, 공연장 특유의 들뜬 어수선함이 없이 조용하고 다정다감했던 관객들까지. 따로 소리 증폭을 위한 장치 없이 날것 그대로의 기타 선율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공연이었습니다. 또한, 음악 안에서 작곡가가 담으려 했던 자연의 풍경들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펼쳐지는 그런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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