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문학]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정의에 대하여
글 입력 2017.08.1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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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의를 말할 때 행위에 대한 논의를 할 수 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법에 대한 논의를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가 정의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될 것이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우리사회가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심심치 않게 우리는 뉴스화면에서 정치인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숨과 자조 섞인 말을 내뱉기 전에, 그들은 왜 싸우는 걸까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정말 멱살을 잡고 싸우기 위해 저 자리에 서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정치인에 대해, 그들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 비난을 할 때, 그들의 주장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이 그들의 이념을 지지하는 이유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념이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것이든, 사회주의를 표방한 것이든, 그것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정의로울 수 있는지, 행복해 질 수 있는 지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결론일 것이다.

분배를 강조하고 약자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얼핏 생각해 보았을 때도 이것이 도의적으로 옳은 것 같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남 먼저 생각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도덕 시간마다 배워왔다. 부자와 강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욕심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상위층을 키우는 것이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능력이 되는 만큼, 내가 사회에 기여한 만큼 이익을 차지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정의로운 사회 일 수 있다. 사회에 기여한 바가 미미한 사회적 소수자는 그만큼 이익을 못 받는 것이 어쩌면 정당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경제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다.

경제 성장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일 때가 있었다. 그때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수만 있다면 나 하나의 희생쯤이야 감수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빠르게 성장을 하려면 경제적으로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계층에 대해 자유를 주는 것이 빠른 성장률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하위계층에 대한 소홀함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라, 속물적이라 비난 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우리는 경제력이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말에 부정할 수는 없다. 기득권층이 강해질수록 국가 전반이 강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학창시절 때, 전교 권 안의 친구들만 우등반을 만들어 학교가 그 학생들에게 지원을 해줬을 때, 우등반이 아닌 아이들은 차별이라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결국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스카이를 몇 명 배출했는가는 우등생이 아니었던 아이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되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겐 그만큼의 지원을 해주고, 결국은 다 같이 명문고라는 자부심을 얻게 하는 시스템에 감히 나는 손가락질 하지 못하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 해 보았을 때, 분배보단 성장을 목표로 삼는 것도 결국은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 행복한 사회의 실현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년시절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지니, 적어도 이념에 대한 입장은 정해질 줄 알았건만, 해가 지나고 배우는 것이 더 많아 질수록 나는 아직 무엇이 정말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이 정말 최선인지 아닌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이념이든 결국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라는 것이다.

결국 뉴스에서 정치인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격투기 못지않은 싸움을 벌이는 것을 나는 어쩌면 순진하고 무조건적인 낙관일 수 있겠지만, 결국 다 행복해지자고 벌이는 싸움이라고 보고 싶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정의란 다수의 희생과 부당함이 불가피한 것이라 할지언정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모두의 행복이요 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이 무엇이 정의인지 우린 알 수 없으니 모든 사회의 문제와 이슈들에 대해 ‘저건 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런 거다’ 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것은 아니다. 분노할 줄 아는 힘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 이념이 내가 생각하는 이념과 정 반대라고 그것이 정의가 아님을 못 박아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 이게 내가 생각한 정의였다라고 말을 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가 옳을 수 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진정으로 도덕적인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우리의 사회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분노하는 힘도 잃어버린 듯이 보인다. 경제 성장률이 매해 10프로를 치던 때와 달리 경제 침체기인 지금, 내 코가 석잔데 예전처럼 제 할 일 제쳐두고 분노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무책임한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정의란 행복해 지기 위한 답을 내는 것이다. 혼자 가는 길의 끝에 있는 행복은 순간적인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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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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